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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표현이 참 도발적이다. 게다가 '병역거부' 앞에 붙은 '양심적'이란 표현도 설명하려면 복잡하다. 그 양심이라는 것이 선한 마음이 아닌 헌법이 규정하는 '양심의 자유' 즉 개개인이 가진 내면의 확신을 의미한다.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는 질문이 여전히 나오는 이유다.

 

낙후된 군대의 인권상황. 병역의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부재.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와 안보제일주의가 지배했던 한국 현대사.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종교적·평화주의적인 이유로 총을 들 수 없다는 병역거부자들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1만3000명이 넘는 이들이 지난 60여 년 동안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행을 택해왔다. 어떤 이들은 10년에 가까운 징역을 살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총을 잡지 않겠다는 이유로 맞아 죽었다. 이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병역거부자

 

나는 평화주의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구치소와 충주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지난 2006년 5월 출소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관련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감옥에서 논쟁을 하면서, 나는 한국사회에서 군대가 얼마나 신성시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특권이나 면제가 아닙니다. 신념만 존중받을 수 있다면 복무기간의 2배든 3배든 기꺼이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 시행만 되면 지금까지의 우려가 기우임이 확인될 것입니다. 한 해에 700여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감옥행을 이어가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됩니까."

 

진심을 담아서 건넨 이야기였지만 여전히 어떤 이는 "너 같은 놈은 징역 10년을 살게 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보내야 된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부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영역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그들은 이미 수많은 해외 사례와 국제규약의 권고들, 안정적인 시행방식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일부 국민적인 의견을 '면피'용으로 내놓으면서, 결국 이전의 합의를 흔들고 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인권유린을 방치하는 것이다. 이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7월 4일 국방부에서 "작년 9월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기로 한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국방부 행태를 보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언론사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문의하자 "결정된 것은 없다, 단지 연구용역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고 여론수렴이 중요하다"와 같은 모호한 이야기로 정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법원은 국방부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허용' 결정을 신뢰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1년 6월의 형을 언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5분이다. 찍어내듯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는 판결을 하면서 판사들이라고 마음이 편했을까. 그렇기에 법원은 2009년 1월에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다는 국방부의 계획을 근거로 관련 재판을 연기해왔다. 미결로 구치소에 수용된 사람들에게는 보석을 허가하기도 했다.

 

만약 국방부가 작년 9월의 결정을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결정하면, 연기되었던 재판은 재개되고 보석은 취소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감옥이다. 1000여명의 구속자가 순식간에 생길 수 있다. 2008년 촛불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이들을 이렇게까지 감옥에 넣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적 공감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

 

국방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국방부의 결정은 그 해 7월 KBS 여론조사에서 50.2%가 '대체복무제에 찬성했다'는 것을 근거로 했다. 그 이후 정권이 바뀐 것 말고, 국방부 장관이 바뀐 것 말고, 이 문제에 관해서 큰 변화가 있었나? 진전된 여론을 근거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던 국방부가 불쑥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국민적 공감대라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련 주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책임지는 국방부는 작년에 발표한 안에 대한 홍보와 대국민적 여론 환기의 작업을 진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없었다. 10개월 동안 손을 놓고 있던 국방부가 왜 시행예정일 6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난색을 표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병역거부자에게 허용하는 대체복무가 특권이 아니라 현역 복무보다 더 길고 힘들다는 것을 국방부가 성의를 가지고 알려나갔다면 국민적 공감대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뀌니까 안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길 바란다.

 

국방부는 새롭게 연구용역을 발주해서 여론수렴과 제도적 대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연구는 더 이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을 다루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 2001년부터 논의된 이 문제는 이미 사회적 의제로서 수많은 국가기관에서 의견을 제출한 사안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함을 이야기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있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래서 국방부가 사회적 합의로 작년 9월 종교적 신념에 한정된, 2배의 합숙복무의 조건으로 사회복무 중에서 최고 난이도의 업무를 병역거부자가 택할 수 있는 대체복무로 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 아닌가.

 

따라서 연구는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존재한다고 본다. 국방부는 이 전제 위에서 해결방안을 조속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에 들어가는 젊은이들과 가족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의 특수성? 이미 우리는 대체복무제도 선진국

 

OECD 국가 중에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 중에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터키 정도다. 이러한 해외의 사례를 이야기하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국방부의 논리라면 분단의 특수성은 이 문제를 반대하는 분들의 주된 근거이다.

 

그러나 현재 8만명의 젊은이들이 이미 대체복무를 통해서 병역을 이행하고 있다. 요즘 한참 말이 많은 전·의경 제도가 한 예이다. 병역거부자들은 계속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어찌 수만명의 병력자원을 돌려서 국방과 상관없는 시위진압을 시키는지 의문이다.

 

의무소방관은 다른 나라에서 병역거부자들이 택하는 대체복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방관의 임무는 전통적인 국방영역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왜 의무소방관제도가 만들어질 때는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며, 분단된 조국에서 이러한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걱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의무소방관으로 의무를 마친 이들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의무소방관을 하려고 몰려서, 병력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는 의무소방관의 일이 현역복무와 형평성이 맞으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대체복무에는 4주의 군사훈련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4주의 군사훈련을 배제한 대체복무, 그 대신 훨씬 길고 힘든 일이라고 기꺼이 하겠다고 이들은 간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앞선 여러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안감이 크다면 제도시행 초기에 인원수를 제안하는 '쿼터제'를 시행해보자는 제안까지 했었다.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가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국방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현재 구속자가 연 700여명 수준인 만큼 연 인원 1000명으로 쿼터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이미 8만명 수준의 대체복무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지 않는가.

 

이제 국방부는 한 발을 뺀 상황에서 "연구 중"이라는 답변으로 지난 60년 동안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는 이제 명확하게 시안을 정하고 구체적인 제도적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아왔다. 여기서 그 고통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정한 공감대는 "감옥행을 멈춰야 한다"이다. 국방부의 전향적인 입장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국방부#대체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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