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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그 곳, 두물머리의 빈배
▲ 두물머리의 새벽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그 곳, 두물머리의 빈배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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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던 것들, 잠들었던 것들이 마침내 하나 둘 깨어나는 시간이다.
자연의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온다는 것은 섭리다. 역사의 어둠도 이렇게 자연의 섭리처럼 흘러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역사의 날들은 몸살을 앓는다.

어둠 속에서 활개를 쳐야할 어둠의 자식들이 백주대낮에 활개를 친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혼동스럽고, 그동안 믿고 살아온 삶의 원칙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체감한다. 그래서 간혹은 어둠의 자식들과 짝짓기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의 끝에 새벽이 동터오는 것처럼 새 날은 어둠이 깊을수록 가까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직은 희미하다.

아침햇살 가득한 숲, 빛기둥을 만들다.
▲ 숲 속의 아침 아침햇살 가득한 숲, 빛기둥을 만들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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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깨어나는 청년의 숲은 활기가 넘치고, 신선하다. 아직 뜨거운 여름의 태양도 대지를 차마 덥히지 못한 그 시간, 숲은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아침햇살이 숲에 들자 숲을 가리고 있던 안개 빛기둥을 만들며 빛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곧 저 빛과 깨어난 바람에 안개는 사라지고 빛은 그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진실이 이렇게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역사의 진실이 아침햇살에 드러난 숲과 같은 것이라면 타는 목마름으로 외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밤새 태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누구나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하게 본다면 어둠의 자식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진실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진실은 치장을 하지 않아 너무 소박하고, 작고, 별 볼일 없어 보이고 촌스러워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가장하고 다가온다.

빛의 조화가 신비롭다.
▲ 해질무렵의 구름 빛의 조화가 신비롭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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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다시 다른 어둠을 밝히기 위해 떠나가는 시간이면, 다시 햇살 뒤에 숨었던 어둠이 찾아온다. 이 어둠은 하루를 땀흘리며 살아간 이들에게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햇살 아래 숨었던 어둠의 자식들이 활개를 치려고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어둠보다 더 깊게 술렁거린다. 어서 일어나 욕심껏 양껏 먹어치우자고, 약탈하자고 작당을 한다.

어둠 속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해야 마땅한 이들이 일어나 촛불을 밝힌다. 촛불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이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이지만 불을 나눈다. 한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부르고, 한 목소리로 한 구호를 외친다.

희망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희망이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네가 희망이고, 지금 네 앞에 보이는 내가 희망이다. 그들의 함성에 어둠의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는 새벽이 오기도 전에 자기들의 세상이 종말을 고할 것 같아 똘똘 뭉쳐 하나가 된다.

붉은 빛 장엄한 어느 날 오후
▲ 황혼 붉은 빛 장엄한 어느 날 오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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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붉다. 촛불의 바다, 하늘도 촛불을 밝혔다. 이렇게 하늘이 붉은 날이면 하늘을 잊고 살아간 사람들도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발하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하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지난 60여 일, 촛불의 바다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하늘을 잊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저 붉은 하늘처럼, 그리고 미안함의 무게를 지고가지 않아도 될 만큼 오랜 시간 촛불의 바다가 이어졌다. 훗날, 누구나 '나도 그 곳에 있었지'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어둠의 자식들과 짝짓기를 하던 이들이 예수의 발에 눈물을 흘리며 향유를 붓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의 길이만큼.

인공의 빛도 아름다울 때가 있다.
▲ 광안대교의 밤 인공의 빛도 아름다울 때가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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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내의 시간은 지루하고 무료하리만큼 길지도 모른다. 어둠의 자식들이 쳐놓은 교활한 올무를 하나 둘 거둬내며 천천히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긴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작은 촛불 하나 둘 밝혀져 어느 누구도 올무에 걸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빛을 비춰줄 것이다.

이어진 빛들이 이어지는 길들을 보여주듯, 그렇게 희망의 불빛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빛이 다할 때, 그 때는 새벽이 올 것이다. 신새벽이 뚜벅뚜벅 걸어와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던 것들, 잠자고 있던 것들을 모두 깨어나게 할 것이다.

절반의 승리와 절반의 실패를 한 촛불이여, 이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내가 밝히는 빛 하나, 내가 걸어가는 한 걸음으로 절반의 실패를 몰아내고 새벽을 맞이하자. 그대와 함께 하는 이들이 거기에, 여기에, 저기에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자. 힘이 되자. 촛불이여!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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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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