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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국에서는 서구 배척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해한 사람을 척살하자는 구호가 난무하는가 하면, 티베트 독립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중국인을 인터넷상에서 집단 암매장하는 민족주의 움직임이 고조되기도 했다. 반(反)서구, 반티베트 물결의 선두에 선 80후 세대를 다각적으로 진단하는 시리즈 4편을 모종혁 통신원이 전한다. [편집자말]
충칭시 카이라이시모델학교에서 표정 연습에 몰두하는 모델 지망생들. 왼쪽에서 첫 번째가 왕징원이다.
 충칭시 카이라이시모델학교에서 표정 연습에 몰두하는 모델 지망생들. 왼쪽에서 첫 번째가 왕징원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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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한 직업이었어요.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왕징원(여)의 꿈은 모델이다. 올해 23살인 왕은 작지만 견실한 의류가게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매장에서 끼니까지 때우면서 장사에 매달리는 그이지만, 주말 오후 2시면 꼭 세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 충칭(重慶)시 유일의 정규 모델학교인 카이라이시(凱萊希).

왕은 "작년 3개월간의 입문과정과 올해 두 달간의 심화과정을 거쳐 지금은 카이라이시와 계약까지 해서 작은 이벤트 행사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왕은 모델로 나서면서 버는 수입은 밝히기 힘들 정도로 적다면서도 "장사해서 거둬들이는 돈보다 무대에서 모델로 일해 버는 돈이 더 소중하다"고 밝혔다.

미스 월드 선발대회 중국 충칭시 예선에서 만난 리하오(22·여)는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마친 재원이다. 기자와 만난 리는 온몸에 명품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가방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있었다. 1만 위안(한화 약 150만원)이 넘는 최고급 휴대폰을 사용하고 최신 외제차를 모는 리의 부모는 충칭에서 내로라하는 부동산 재벌이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이 유복한 리지만, 그에겐 남모를 꿈이 있다. 미인대회 입상을 발판으로 연예계에 진출하여 배우가 되는 것이다. 리는 "부모님은 전공을 살려 기업 경영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시지만 배우는 내 오랜 꿈이었다"면서 "영화든 TV든 인정받는 배우가 꼭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행과 패션에 민감하고 스타가 되고픈 80후 세대

미스 월드 선발대회 중국 충칭시 예선 워크숍에서 심리 문답지를 작성 중인 한 참가자.
 미스 월드 선발대회 중국 충칭시 예선 워크숍에서 심리 문답지를 작성 중인 한 참가자.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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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태어난 80후 세대는 중국 기성세대의 기존 사고체계를 뒤엎고 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와 달리, 80후 세대는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한국 및 일본의 최신 코드에 민감하다. 한때 중국을 휩쓸었던 '한류'(韓流)를 일으키고 확산시킨 주역도 유행과 패션에 관심 많은 80후 세대였다.

80후 세대는 합리적 사고로 무장하고 자기주장도 강해 직업 선택에 있어서 이상과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이들은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도록 한 계획생육(計劃生育) 정책으로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랐다. 이에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 사고에 물들었으며 소비지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왕징원과 리하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아래 급속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자라난 80후 세대의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열렬한 한류광인 이들은 "시간을 내서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면서 한국에 대한 강한 동경을 드러냈다. 왕은 "요즘 중국 젊은 여성들에게 패션과 메이크업은 최고의 관심사이다"면서 "자신을 가꾸는 데 월수입의 60~80%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는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내 꿈과 미래가 더 중요하다"면서 "딱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내 뜻대로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는 특별한 직업 없이 모든 소비 지출을 가족에게 의지한다면서 "부모님께서 하나뿐인 자식의 목표와 이상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당당히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갓 찍은 예술사진을 살펴보는 한 젊은 여성. 연예계에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찍어 연예기획사에 보내는 80후 세대 여성들도 적지 않다.
 남자친구와 함께 갓 찍은 예술사진을 살펴보는 한 젊은 여성. 연예계에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찍어 연예기획사에 보내는 80후 세대 여성들도 적지 않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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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투표로 탄생한 차오지뉘성이 일으킨 연예계 진출 열풍

배우·가수·모델 등 엔터테인먼트산업과 문화산업에 진출하려는 80후 세대의 욕망을 불러 일깨운 데에는 한류와 더불어 '차오지뉘성'(超级女生)의 공이 크다. 2004년에 시작된 차오지뉘성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후난(湖南)TV의 여자 가수 선발 쇼 프로그램. 중국에서는 최초로 선발 기준을 전문가 심사와 함께 시청자들이 휴대폰 문자서비스로 투표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차오지뉘성을 통해 선발된 여가수들은 일약 대중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자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80후 세대에게 심어주었다. 2007년부터는 기존 차오지뉘성을 남자로 바꿔 '콰이러난성'(快乐男生)으로 변경, 진행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시청자의 민주적 투표 속에 누구도 스타로 성공할 수 있는 차오지뉘성의 열풍은 중국 사회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수많은 80후 세대 사이에서 너나할 것 없이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열풍을 일으켰다.

유행과 패션에 민감한 80후 세대의 성향은 소비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작년 12월 중국 신친연구리서치(新奏硏究諮詢)의 시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80후 세대는 조사 대상자의 19.1%가 유행에 무척 민감하다고 답해 평균치인 16.8%를 웃돌았다. 유행에 비교적 민감하다고 답한 응답자도 54.4%에 달해, 80후 세대가 소비 코드에 있어 유행을 첫 번째로 손꼽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친연구리서치 보고서는 "20대 젊은 층은 타인으로부터 주목 받길 원하는 시기로 남과 차별화된 개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들은 상품 구입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패션 스타일을 추종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길 원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연령별 PC 및 관련제품 보급률(2007년 4분기). 80후 세대는 타 연령층에 비해 첨단IT제품에 대해 민감하고 구매욕도 강하다.
 중국 연령별 PC 및 관련제품 보급률(2007년 4분기). 80후 세대는 타 연령층에 비해 첨단IT제품에 대해 민감하고 구매욕도 강하다.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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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실업난에 로또복권 당첨과 다를 바 없는 길로 나서

80후 세대가 로또복권 당첨이나 다름없는 대중스타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는 배경에는 심각한 청년 실업난이 도사리고 있다. 올해 중국은 대학을 졸업한 10명 중 3명이 직장을 찾지 못할 정도로 취업난이 심각하다. 지난 1월 중국 교육부 왕쉬밍(王旭明) 대변인은 "작년 대졸자 500만 명 중 144만 명이 취업을 못했다"고 밝혔다. 2001년 대졸 미취업자는 34만 명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80만 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가는 80후 세대가 급증하면서 해외에서 돌아온 유학파까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11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가 452개 중국기업과 외국 유학파 12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해외 유학파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어 취업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2007년 12월 현재 중국의 해외 유학생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유학 후 중국으로 귀국한 수는 27만5000명에 달한다. 해외 유학파의 입사 초봉도 꾸준히 하락해 중국 일반대학 졸업생과 비슷한 수준인 월평균 3000위안(약 45만원)으로 떨어졌다.

리하오는 "싱가포르에서 유학한 친구들 가운데 번듯한 중국 대기업에 들어간 동창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연예인으로 성공하려는 데에는 경제적인 원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도 스타의 기업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스타가 단순히 연예인이 아닌 부를 쌓는 기업가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브랜드연구원이 발표한 2007년 '중국 개인브랜드가치 100위'에서 배우 중 1위를 차지한 판빙빙(范氷氷·27)의 작년 한 해 수입은 무려 2000만 위안(약 300억원)에 달해 스타의 경제적 파워를 입증했다.

일부 젊은 여성은 미인대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면 노동자의 몇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고, 능력과 끼를 인정받으면 연예계로부터 러브콜까지 받기 때문이다.

리는 "이번 미인대회 참가자들 중에는 우승 상금 뿐만 아니라 나처럼 연예계 진출을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우승자에게는 크고 작은 광고 출연 제안이 쏟아지고 연예계 진출도 용이해지니 미인대회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타인에게 주목 받길 원하는, 대중스타가 되고자 하는 중국 80후 세대의 꿈은 자신의 인생행로에까지 큰 변화를 주고 있다.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 화장하는 한 젊은 여성. 타인에게 주목 받길 원하는 80후 세대의 노력은 소비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 화장하는 한 젊은 여성. 타인에게 주목 받길 원하는 80후 세대의 노력은 소비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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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80후 세대, #대중스타, #한류, #개혁개방, #계획생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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