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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인연이려니 하고 넘어가면 마음 편하련만, 원치 않게 문득 문득 떠오르며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인도네시아인 나르또는 쉼터에서 운동화를 잃어버리는 일을 당했습니다. 나르또에 의하면 자신의 신발은 아디다스라고 했습니다. 어릴적 고무신을 잃어버리고도 마음 상했던 기억이 새록한데,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값비싼 신발을 분실한 나르또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르또는 자신의 신발을 가져간 사람이 며칠 동안 쉼터를 이용했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제 운동화를 베트남 사람이 가져갔어요."
"그거 어떻게 알지요?"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신발이 없어졌는데, 그 사람의 헌 신발이 쉼터에 그대로 있어요."

나르또가 말한 베트남인은 한국에 온 지 두 달이 지날 때쯤 회사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쉼터에서 며칠 묵었던 쭝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마침 쭝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던 터라, 쉼터를 나갈 때 소리 소문 없이 나갔던 그의 그간 소식도 궁금하고 해서 통역을 통해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잘못 알고 남의 신발을 신고 가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돌아 온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셈.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어제(4일) 쭝이 난데없이 쉼터에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아디다스 신발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갈 곳이 없어지자 쉼터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검은색에 뒷굽이 높다
▲ 나르또의 신발 검은색에 뒷굽이 높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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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신발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나르또는 쭝에게 "왜, 남의 신발 가져갔어!"라고 한 번 따져 물었지만, 신발을 돌려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쉼터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같이 생활하는 사람의 물건을 훔쳤었고, 그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했던 사람을 비록 며칠이겠지만 다시 쉼터에 들이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들 형편이 어렵지만 서로 이해하고,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믿어왔던 입장에서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남의 신발을 가져갔었는지 재차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몰랐어요. 신발이 비슷해서. 전화가 왔을 때도 몰랐어요."

몇 번의 반복된 질문을 마치며 화가 더더욱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르또의 신발은 절반 이상이 검은색으로 뒷굽이 높은 신발이었던 반면, 쭝의 신발은 전체가 흰색으로 허름하고 굽이 낮은 신발이었기 때문에 헷갈릴래야 헷갈릴 수 없는 데다, 신발이란 것이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 해도 남의 신발이 처음부터 맞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쭝은 또 다른 신발을 신고 아디다스 신발은 들고 왔다는 점에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많은 신발들이 있지만, 제 것과 남의 것을 분간못할 정도는 아니다.
▲ 신발장의 신발들 많은 신발들이 있지만, 제 것과 남의 것을 분간못할 정도는 아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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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몰랐다는데 어찌하겠습니까? 뒤통수라도 몇 대 시원하게 때려주고 싶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일자리를 잃고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도 마음 편하지 않았습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던가요. 신발을 잃어버렸던 나르또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다신 물건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주의하라"고 훈계를 하는 수밖에요.

어쩌면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쭝은 불안하기만 한 한국생활을 시작하며 갑자기 바뀐 생활환경 속에서 손에 닿는 것은 뭐든 움켜쥐어야 맘이 편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쭝에게 "그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주고, 나르또에게 사과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신발 때문에 신의를 버렸던 쭝에게 속으로 물었습니다.

"쭝아, 나르또의 신발이 그렇게 탐나더냐."


태그:#신발,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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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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