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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보다 촛불 드는 일이 더 급해요

 

아침부터 어머니는 더덕을 까고 있었다. 사각사각, 더덕 까는 소리와 함께 더덕향이 집안에 진동한다. 감기 기운에다 몸까지 아파온 어머니. 어머니는 환자처럼 머리띠를 두른 채 핼쑥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머이, 오늘 서울 가야 하는데"

"또 가?"

"응, 볼 일이 있어서…."

 

아들의 말에 어머니 표정이 좋지 않다.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아진 터라 덜컥 겁이 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틀 전 어머니는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맞았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 때도 영양제를 맞았다.

 

"밭에 풀이 꼭 찾는데… 능쟁이도 뽑아야 하고… 비료도 줘야 하고…."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 5월부터 아들은 매주 서울로 갔다. 가서는 며칠씩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 집에 머물다 또 서울에 가곤 했다. 그러니 집에 있는 시간과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비슷했다.

 

어머니를 산촌에 혼자 있게 하고 집을 떠난 건 좀체 없던 일이었다. 어쩌다 행사가 있어 집을 떠나더라도 반드시 하룻밤 안에 돌아왔던 아들이 며칠씩 집을 비운 것은 순전히 촛불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서울 가는 이유를 촛불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늘 그랬듯 아들이 서울로 돈벌이 하러 간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들이 정신차리고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해 내심 좋아할 지도 모를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 두 달간 아들은 돈을 벌기보다 없는 돈 써가면서 서울 나들이를 부지런히 한 것이다. 아들은 서울에 있으면서 체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밤새 촛불 현장에 있다가 아침이 되면 피곤한 몸을 끌고 사우나에 가서 눈을 붙이거나 시청앞 광장에 신문을 깔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비싼 비료 값으로 농사 포기하는 농민들 많아

 

하루 두 끼 먹는 일이 버릇이라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한 끼만 사 먹고 나머지 식사는 단체에서 제공하는 김밥으로 끼니를 떼웠다. 그렇게 지난 두 달을 보냈다. 대통령 하나 잘 못 뽑아 그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어리석은 국민이 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풀은 그냥 두지 뭐… 능쟁이(명아주)는 서울 다녀와서 뽑을 게."

 

어머니는 며칠 전 밭에 있는 능쟁이를 뽑느라 더위를 덜컥 먹었다. 아들이 서울에 있던 날이었다.

 

"비료 값이 2만원이 넘어… 그러니 비료 값도 나오지 않아."

"비료 값이 그렇게 비싸냐?"

"응, 비료 값 때문에 자빠지는 농사꾼들이 많아."

"이젠 농사도 못 짓겠구나."

 

가격이 올랐다니 어머니도 비료를 포기한 듯했다. 옥수수와 고추에 비료를 주면 좋겠지만 비료 값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난 5월에 심은 옥수수는 풀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고추 모종 역시 꽃을 피우다 말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잘 살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어째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도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그럴 능력도 없이 거짓말을 쳤다며 난리가 났어."

"대통령이 거짓말로 속이면 국민이 살기 힘든 법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봐 오며 살아온 어머니. 말은 않지만 어머니가 역사의 산증인임은 분명했다. 그러하니 누가 대통령 짓을 잘했고 못했고를 어머니도 알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촛불 들기 위해 노모 홀로 두고 서울로 간다

 

어제 오후 밭을 둘러 보았다. 다른 집 옥수수는 옥수수 통이 나오는데 우리집 옥수수와 고추는 풀과 함께 야생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 두어서는 올해 옥수수와 고추는 하나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손을 쓸 상황도 아니었다. 손을 쓰려고 해도 너무 늦은 탓이라 올해 농사는 미련없이 포기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어제 아랫집 할머니 드릴 소주 사다 놓았어."

 

아들이 집을 비우면 아랫집 할머니가 어머니를 동무했다. 어머니와 주무시면서 한 잔씩 하시게 준비하는 소주인 것이다. 어머니와 한 살 차이인 할머니는 어머니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가끔 기울였다. 물론 어머니는 술을 마시진 않는다. 한 번 고생을 하고나선 술을 끊었고, 몇 해는 된다.

 

풀이 가득한 밭, 올해는 촛불 때문에 제대로 밭을 건사한 기억이 없다. 밭이야 내년에도 밭이겠지만 촛불은 한 번 꺼지면 다시 켜들기 힘든 일이니 농사를 망치더라도 촛불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무덥다. 잠시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한 날씨. 골짜기엔 매미소리만 들려온다. 해는 쨍하고 떴고 어머니는 그늘에서 더덕을 깐다. 하얗게 깐 더덕은 장날을 지나면서 어느 집의 식탁으로 오를 테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홀로 두고 촛불을 들기 위해 서울로 간다. 

   


#어머니#더덕향#농사#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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