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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3월초), 동네를 한 바퀴 돌아 걷다가 우연히 버려진 화초를 발견하였다. 녀석은 ‘인도고무나무’였다. 전체 20센티 정도 되었는데 뿌리는 떨어져 나가고 없고 뿌리 쪽 줄기 대부분 또한 썩었고 윗부분만 간신히 살아있었다. 화초에 따라 뿌리부터 썩는 게 있는가 하면 잎이나 줄기부터 마르는 것이 있는데 보아하니 인도고무나무는 뿌리부터 병이 드나 보았다.

아무튼, 누군가가 ‘도저히 가망 없다, 니는 이제 죽은 목숨. 어쩌겠니’하며 버렸나 본데 내 눈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르면 그냥 지나 쳤을 것인데 한때 화초에 미친 전력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안 봤다면 몰라도 내 눈에 띈 이상 분명 살릴 수도 있는 것을 그대로 죽게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줄기 중 썩은 부분을 손으로 잘라내고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와서는 다시 가위로 썩은 부위를 확실하게 잘라냈다. 그런 다음 컵에 물을 담고 녀석을 꽂았다. 이유는? 그렇게 물에 담가두고 두어 달 있으면 줄기에서 뿌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화초들 중에는 줄기를 뚝딱 잘라 흙에 묻거나 물에 담그면 그 줄기에서 뿌리가 나는 것이 많다. 이 인도고무나무의 경우, 몇 년 전에 분양을 시도할 때는 줄기를 잘라서 바로 흙에 묻었다가 뿌리가 썩어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날의 과오를 발판삼아 치료법을 달리하여 물에 담그게 된 것이다.

언제 형님 고무나무처럼 크지?

컵에 담가둔 초창기에는 이제나 저제나 뿌리가 나왔나 수시로 살폈다. 그러나 조급증을 낸다고 빨리 나올 리도 없고 해서 제풀에 지친 나는 가끔 물이나 더 부어주면서 녀석에게 시큰둥해졌다.

그러다 지난 5월 말쯤 투명 컵 안쪽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이는 듯했다. ‘옳거니,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나.’ 갑자기 달뜬 기분이 되어 녀석을 물에서 빼내어 보니 줄기에서 뽀얀 뿌리가 여러 개 나있었다. 당장 흙에 심어도 될 만큼 뿌리도 오동통했다.

하얀 껍질속에서 새잎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인도고무나무 잎은 도르르 말려 있다가 겉 껍질이 떨어지면 스스르 점점 풀리면서 펴진다.
 하얀 껍질속에서 새잎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인도고무나무 잎은 도르르 말려 있다가 겉 껍질이 떨어지면 스스르 점점 풀리면서 펴진다.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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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놀고 있는 빈 화분에다 녀석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며칠을 살폈다. 혹 잎이 시들지 않나, 여차하면 다시 물속으로 보내 뿌리를 좀더 키워서 심어야지 생각했다. 그랬는데 한 일주일이 지나도 별 이상 증상이 없는 것 같아서 다시 안도와 함께 무덤덤한 평상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무심함 속에서 세월은 흘러 계절은 어느새 7월, 게다가 오늘 아침엔 안개가 자욱하니 아침부터 후덥지근했고 안 봐도 비디오로 오늘 낮 기온이 어떨지 눈에 선했다. 마침 화초들을 둘러보니 화초들 또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호수로 시원하게 물을 뿌리는데 얼마 전 독립한 녀석과 기존의 큰 인도고무나무를 비교하자니 녀석은 전봇대 앞의 이쑤시개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형님 고무나무.
 형님 고무나무.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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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매, 형님 너무 부러워요. 고개가 아파 제대로 처다 볼 수가 없어요.’

나는 오늘에야 녀석의 그런 낌새를 느꼈지만 어쩌면 녀석은 매순간 형님 고무나무의 키를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걱정마라. 국방부 시계도 돌아간다는데, 우리 집 베란다 시계쯤이야. 우리집 베란다 시계는 그보다 두 배는 빠르게 돌 것이야. 무럭무럭 자라렴.

이로써 내 버려진 고무나무 수술(?)은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태그:#인도고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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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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