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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촛불미사 진행에 앞서 공고사항을 말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촛불미사 진행에 앞서 공고사항을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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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서에 관심은 있으나 교회는 다니지 않는다. 진정 이 나라에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드물어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도하는 촛불미사를 보면서 그런 분들이 계신 것이 반가웠다.

신부님들 말씀을 듣고 보니 요한복음 1장 1절이 떠올랐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공동번역)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이를 요약하면 "태초에 (참)말이 있었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선언문 같은 짧은 문장이 내게 엄청난 전율과 충격을 주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하느님의 말 혹은 진리가 오래전부터 무수히 왜곡되고 변질되었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모든 말의 주인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그의 말을 빌려 쓰는 것뿐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라면 누구나 하느님의 결재를 받는 심정으로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을 빌려주는 이유는 바로 '사람을 살려내는 말'을 하라고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말은 '사람을 살리는 참말(참언론)'과 '사람을 죽이는 거짓말(거짓 언론)'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 위로와 평화를 주는 말이라면, 후자는 사람에게 공포와 분열, 절망과 좌절을 주는 말이리라.

태초의 말로 촛불을 살려내다

2008년 6월 10일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촛불시민들이 감격해 하는 모습
 2008년 6월 10일 서울광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촛불시민들이 감격해 하는 모습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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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거의 두 달 정도 이어오는데 국민들은 지쳤고 이들을 갈라놓기를 좋아하는 조중동을 비롯하여 보수언론은 촛불의 본질을 호도하고 총력전으로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몰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하고 그들을 살려내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사제들이 수세에 몰린 예쁜 촛불을 지켜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태초의 말 혹은 하늘의 참뜻이 담긴 진리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살려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일성(一聲)은 지치고 아프고 힘든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그리고 촛불의 순수한 뜻을 제대로 회복시켜주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신부님들의 강론이나 덕담이나 인터뷰를 들어보면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그 비유 또한 예수 못지 않다. 사제로서 위엄과 품격을 갖춘 말을 하면서도 "뇌물 먹은 놈 뇌는 구멍이 숭숭", "질긴 놈이 이긴다" 등의 유머와 위트도 섞어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원인보다 큰 결과는 없다"

신부님들이 쓰는 말의 수준을 가늠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이번 정의구현사제단의 전종훈 대표신부는 모 인터넷신문과 인터뷰에서 "원인보다 큰 결과는 없다"라는 말을 했다.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촛불의 책임과 배후를 국민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말이다. 이 말을 더 풀면 "어떤 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그런 결과에 대해서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말은 정부에서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그가 언론의 왜곡에 대해 한 말을 들어보자.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고 권력이 됐다. 권력은 속성상 더 움켜쥐려 하지 뺏기려 하지 않는다. 뺏길 위기가 닥치니,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것을 언론이라고 얘기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요즘 언론이 이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더라. 이성이 있으면 이렇게 하나? 그들은 하이에나다. 그저 자기 먹이만 물어뜯는다."

그는 또한 권력의 실체에 대해서 이렇게 풍자하고 있다.

"우리는 헌법 1조를 통해 내가 주인이고 저 사람은 종임을 깨닫는다. 마침 대통령이 섬기겠다고 했다. 종의 역할은 주인을 따르면 되는 거다. 그게 종이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주인이 부당한 것을 종에게 요구했다면 안 따를 수 있지만, 이건 부당한 게 아니지 않나. 이것이 이뤄질 때 평화다. 촛불의 의미만 깨달으면 된다"

국민과 정부의 역할과 위치, 그 정체성을 이렇게 쉽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폭력의 본질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

2차 촛불시국미사를 마친 후 인사말을 하는 김인국신부
 2차 촛불시국미사를 마친 후 인사말을 하는 김인국신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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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 진중권 교수 이상 각광을 받는 정의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의 말도 누구 못지않게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 관료의 말에 식상한 시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첫날 촛불미사를 마친 후 그가 연 말은 어찌 이리도 지혜롭고 겸손한가.

"사실 사제들로서 많은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것은 부담스럽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 사제들에게는 겸손의 덕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은 국민들의 상처와 자존심이 너무 짓밟혔고 촛불에 담긴 뜻이 왜곡되었습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불행입니다. 그래서 난국을 타개하고 활로를 개척하고 작은 숨통에 구멍을 여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국민들 곁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3차 촛불시국미사의 마무리 발언도 또한 놀랍다.

"흥겨울수록 승리가 가깝습니다. 신명의 크기가 승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이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요즘 촛불을 끄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축구에서 종료 10초 전 역전골을 얻어맞거나, 야구에서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놓고 홈런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어제 진보신당 당원들이 폭행을 당했는데, 이런 폭력의 본질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맙시다."

그는 국민뿐만이 아니라 정부 그리고 나라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도 염려하는 말로 가득 넘친다. 하여간 그는 많은 지식과 정보와 뉴스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에 여전히 참된 말과 거짓된 말을 구별하기 쉽지 않은데 그런 와중에서도 진위 여부를 가리는 눈을 뜨게 해준다.

'성서적 하느님'과 '종교적 하느님'의 구별

세계적 신학자 본회퍼 사진
 세계적 신학자 본회퍼 사진
ⓒ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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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본회퍼(1906~1945)도 하느님의 진위를 구별하기 힘들었던지 하느님을 '성서적 하느님(성서에서 말하는 참된 하느님)'과 '종교적 하느님(성서와 관련 없이 종교적 전통이나 교회적 제도로 만들어진 거짓 하느님)'로 구분하였다.

한국의 일부 보수목회자들은 '종교적 하느님'을 내세워 어린 촛불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호도하며 성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았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면 예수 당시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장 비판한 사람은 바로 '종교권력가'였다. 그들은 성구를 옷에 새기고 거룩한 척 했지만 아집과 독선과 편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신날하게 비판했다. 겉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 그럴 듯하게 보이나 속은 무덤처럼 썩었다는 뜻이다.

예수가 복음서에서 가장 화를 내는 장면도 그들 때문에 생겼다. 소위 '성전정화사건(요한복음 2장 13~22절)'으로 당시 예루살렘 성전체제는 종교권력가들의 돈줄 역할을 했다. 금이 가장 많은 곳은 성전이었고 이를 통제하면서 요즘 증권조작처럼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반면에 서민들은 경제적 파탄에 빠져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또한 여기에서 예수가 환전상의 탁자를 뒤집어엎는 장면이 나온다. 왜냐하면 당시 통용되는 돈은 로마 돈이지만 성전에서 헌금을 할 때는 히브리 돈을 썼는데 환전상은 이를 악용해 몇 배의 폭리를 취했고 또 이들과 결탁하여 자릿세 명목으로 50% 이상의 커미션을 받아 챙기는 것도 바로 종교권력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말과 정신은 바로 이런 예수의 의로운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고 또한 구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예언자전승'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구약에는 '예언자전승'과 '제사장전승'이 있는데 이에 따라 사가(史家)도 나뉜다. '신명기사가'는 '예언자전승'을, '역대기사가'는 '제사장전승'을 중시하며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가의 큰 차이점은 다윗의 부하 아내인 밧세바와 간통사건을 봐도 알 수 있다. '신명기사가'는 이 사실을 비판적 관점에서 사실대로 기록하지만 '역대기사가'는 다윗을 영웅화하기에 급급해 그냥 봐주기 식으로 넘어간다. 

종교는 한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등대

촛불미사를 마치고 십자가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
 촛불미사를 마치고 십자가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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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바로 이런 구약의 '신명기사가'나 예수의 '예언자전승'을 따르는 분들로 그 누구보다 하느님의 진리를 꿰뚫고 촛불의 참뜻을 깨달았기에 이를 분열시키고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려 했다.

그렇다. 종교는 한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다. 종교까지 타락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고려시대 불교도 귀족화되면서 민초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권력과 결탁하면서 그 본질을 상실한 적도 없지 않았다. 요즘 일부 개신교도 그런 징조를 보인다. 천주교도 너무 가부장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여간 사회를 혼탁하게 어지럽히는 일부 보수언론과의 전쟁 중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그 허위성을 들통 내고 국민들의 속을 확 풀어주면서 왜곡된 태초의 말 혹은 진리의 말씀을 되돌려놓았다. 하긴 참된 언어와 언론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등대 아닌가.


태그:#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신부, #김인국신부, #촛불시국미사,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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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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