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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난 4월 고향을 떠난 지 두 달여 만에 고향집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두 달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 다가왔다.

 

그것은 삭막함이라고나 할까? 예전의 따뜻함이라는 고향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왜일까? 정답은 마을에 들어와 보니 금세 알 수 있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고향을 떠난 가구가 몇 가구 없었고, 100여 가구 이상이 동요 없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다 떠나고 이제 고작 8가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삭막할 수밖에 없었다.

 

8가구밖에 남아있지 않다 보니 마을에는 인기척조차 없었고, 인기척이라고 해봤자 이사간 집에 들어가 창문 새시와 쇠, 가전제품 등을 트럭에 싣는 고물장수들 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가족의 흔적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 집앞 마당에 도착해서 집주변을 둘러보니 내 키보다 더 큰 풀들 하며, 집 담벼락을 휘감은 넝쿨장미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임을 알려주는 듯 했다. 하지만 집앞의 조그만 텃밭에 가지런히 심어있는 토란과 옥수수, 땅콩 등 농작물들은 최근에 누군가의 손길을 받은 듯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고향집을 떠나면서 매우 아깝게 생각했던 도라지는 보라색, 하얀색 등 각양각색의 꽃을 피우며 자라고 있다.

 

집주변을 살펴본 뒤 집안을 둘러보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건물은 가족들이 고향집을 떠난 뒤에 곧바로 고물상에 넘겨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최근 자재값의 인상으로 고가에 거래되는 창문에 설치되어 있던 새시는 당연히 온데간데 없고 철문이었던 대문 하며, 문고리는 물론 심지어는 개집에 묶여있던 쇠로 된 개목걸이까지, 쇠로 된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쓸어가 버려 집안에 남은 거라고는 나무로 된 장롱과 책상, 유리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집안 이쪽저쪽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그것은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책상서랍. 난 나도 모르게 그 서랍 앞에 앉았다. 뒤적뒤적 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동생이 한마디 한다.

 

"엉아! 거기 예전 사진 많던데?"

"그래? 다 챙긴다고 챙겼는데?"

 

서랍을 뒤적거리다 보니 대학생일 때쯤 찍은 증명사진이 여러 장 나왔다. 그리고 여러 장의 가족사진들도 보였다.

 

"이거 어쩌지? 가져갈까?"

"그냥 태워. 앨범에도 있는 사진이던데."

 

서랍 속에 있던 한 웅큼의 사진을 들고 다시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이사한 뒤에도 한두 번 정도 집에 다녀갔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이사한 후 처음으로 고향집에 들른 터라 폐가가 되버린 고향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고물이 비싸다해도 양심적으로 해야지

 

안방, 부엌, 건넌방을 살펴보고는 집에서 나와 밖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던 쇠로 된 것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특히나 놀랐던 것은 병풍, 목기, 그릇 등 종중의 물건을 보관해 놓았던 창고 하나가 문고리가 뜯긴 채로 안에 있던 물건이 모두 털렸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잠가 놓았던 덴데 왜 문고리가 뜯겼냐?"

"누가 털어갔대. 누가 했는지 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안했다고 그러더래."

"고물상들이 그런 거 아녀?"

"아니라잖어. 보는 사람 없다구 아무 집이나 털어가믄 안되는데."

"그렇지. 양심이 있어야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 마을을 둘러보니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물론 개 한 마리도 없었으니 말이다.

 

마을을 둘러보다 내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 집 앞에는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그 집안에서는 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트럭에 싣고 있었다. 자세하게 살펴보니 고물장수들이 막 이사한 집에서 고물을 골라 싣고 있는 모습이었다.

 

요즘 행복도시 내에서 가장 잘 나는 직업이 두 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고향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삿짐센터, 다른 하나는 바로 고물상. 최근에는 시골에도 좋은 집들이 많이 생겨 고물상에서 가져갈 고물도 종류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고물값을 계산하고 떠나는 게 아니라 고물장수들이 대충 부르는 값에 고물을 넘기기 때문에 아마도 고물장수들에게 남는 게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물장수들에게 물어보면 '남는 게 없다'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많이 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요즘 행복도시 내에서는 고물상도 할 만한 직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양심적으로 했을 때 말이다.

 

곧 사라질 고향집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 있을 터

 

ⓒ 김동이

고향집의 안팎을 다 둘러보고 난 뒤 다시 동생과 함께 텃밭이 있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나비와 벌이 부지런히 꽃가루를 나르고 있는 도라지 밭 앞에 동생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집이다. 그치?"

"그렇지. 어머니가 힘들게 짓고 얼마 못 살고 간 집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우리가 이사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강제로 간건데."

"사진이나 실컷 찍어둬야겠다."

"지난번에도 많이 찍어놨잖아? 또 찍어?"

 

동생은 같은 집을 계속해서 사진기에 담는 게 거슬리나보다. 하지만 난 이상하게도 고향집에만 가면 자꾸 사진기를 꺼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사간 뒤에는 왠지 올 때마다 그 모습이 변해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라고나 할까. 아직까지는 주인만 떠났을 뿐 비록 문은 뜯겼지만 고향집은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향집이 지금의 모습을 잃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고향집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고향집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 모습을 담기 위한 내 카메라 셔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태그:#행복도시,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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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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