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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위 시는 문정희의 '꿈' 일부다. '내 친구 연이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는데 남편은 실업자 문학 청년이었고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고 시는 시작했다. 그렇게도 아끼던 김찬삼 세계 여행기를 잃고 연이는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단다. 그런 책이 바로 김찬삼 세계여행기였다.

 

 

 

우리 겨레가 세계에 눈 뜨는 계기가 됐던 세계여행기를 쓴 김찬삼 선생은 지난 2003년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를 잊을 만하던 5년 뒤 2008년 7월 1일 오후 1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김찬삼추모사업회(회장 안병욱) 주최, 이지출판 후원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출판기념회 및 제1회 '김찬삼여행상'' 시상식이 열렸다.

 

안병욱 김찬삼추모사업회장은 변우량 교수가 대신 읽은 기념사를 통해 "김찬삼 선생은 우리에게 '미소'가 얼마나 큰 자산인가를 가르쳐준 분이었습니다"라며 "여행 중에 수없이 부딪히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불소통'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오직 미소만이 그 위험에서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큰 교훈으로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라며 앞으로 김찬삼 선생을 기리는 데 온 정성을 쏟을 것을 다짐했다.

 

이후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축사에서 '김찬삼기념관'을 빨리 세워야 함을 강조했으며, 김찬삼 선생의 큰딸 김을라 여사는 경과보고를 했다. 그리고 김찬삼 선생의 제자들은 문집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증정했다.

 

 

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행가 김찬삼 전 세종대 교수 추모사업의 하나로 제정한 제1회 '김찬삼여행상'은 윤명철(54)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받았다. 윤 교수는 2003년 중국 저장성-인천-제주-일본 규슈의 나루시마를 잇는 장보고 해상무역 항로를 추적하는 등 수차례 뗏목 탐사를 했다. 또 그는 고구려를 해양사 관점에서 조명하는 등 고조선 해양사. 고대 항로 탐사에 다양한 탐험과 학술활동을 해왔다.

 

윤명철 교수는 "40대 이후 사람들은 고 김찬삼 선생에게서 빚을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 그는 세계의 영역에서 당시 시대정신을 구현한 분으로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선생의 뒤를 이을 것을 다짐했다.

 

김찬삼 그는 나라가 어려움에 헤매고 있을 때 세계로 향한 꿈을 실현하여 국민에게 빛을 준 분이다. 어쩌면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영웅의 하나이지 않을까? 이제 그 김찬삼 선생을 잊는 일 없이 모두가 기리며, 또 다른 세상으로의 꿈을 꾸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찬삼, #김찬삼추모사업회, #세계의 나그네, #출판기념회, #김찬삼여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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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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