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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락 계곡 초입의 맑은 계류 비가 온 뒤 맑은 날에 조무락계곡에는 차고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조무락 계곡 초입의 맑은 계류비가 온 뒤 맑은 날에 조무락계곡에는 차고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 문일식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며칠새 비가 오락가락 내리더니 오랜만에 반가운 햇살이 창을 들이칩니다. 일기예보에는 비 내리는 아이콘인 우산과 짙은 회색 구름 일색이더니 갑작스레 쨍쨍한 날씨는 더없이 반갑기만 합니다.

지난 20일 그새 비도 왔고 날씨도 좋으니 오늘같은 날 맑은 계곡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집을 나섰습니다. 찾아가는 곳은 경기도 가평의 조무락 계곡입니다. 새들도 즐거워 춤을 춘다는 이름도 아름다운 계곡입니다.

 계곡 주변 바위에 낀 이끼가 상쾌해 보입니다.
계곡 주변 바위에 낀 이끼가 상쾌해 보입니다. ⓒ 문일식

팔당대교를 건너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속력을 내봅니다. 다가오는 주말이 맑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이 차창을 스칩니다. 산 속에 숨어있는 수종사도 지나고, 영화의 산실인 남양주 종합촬영소도 지납니다.

서울 시내를 통과해 가뿐 쉼을 몰아쉬며 비로소 북한강의 넉넉한 품에 안겨드는 46번 국도와 만납니다. 북한강의 물줄기를 저버리고 가평읍내에 이르러 가평과 화천을 잇는 75번 국도를 만나 다시 북면으로 오릅니다. 가평을 에워싸 듯 1천m가 넘는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은 수려한 계곡을 만들고, 낮은 곳으로부터 가평천이 되어 북한강과 합류합니다. 75번 국도는 가평천을 따라 사이좋게 나란히 달립니다.

 유명한 가평 잣으로 만든 잣국수
유명한 가평 잣으로 만든 잣국수 ⓒ 문일식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선 곳은 가평잣국수 집입니다. 가평은 잣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잣으로 만든 국수를 특허까지 낸 곳입니다. 생김은 콩국수와 비슷하지만 국수와 국물에 잣의 구수함이 그대로 베어 있습니다.

잣국수는 어떻게 만드느 냐고 여쭤보니 빙그레 웃으실 뿐 대답을 안 해주십니다. 특허를 낸 국수다 보니 비법이 조금이라도 내비칠까 내심 걱정이 되신 모양입니다. 대신 불잣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잣을 통째로 불에 그을리면 송진의 향이 잣으로 스며들어 그 고소한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합니다. 잣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며 잣이 수확되는 처서 이후에 한 번 들러보라 십니다.

75번 국도는 가평에서 시작하여 화천에 이르는 77km 남짓 되는 짧은 국도입니다.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이어진 75번 국도는 가평천과 나란하게 달려 조무락골 입구에 도착합니다. 조무락골을 만드는 석룡천은 1,468m의 화악산에서 발원하고, 1,153m의 석룡산이  화악산과 한데 이어져 있습니다.

차 한대 간신히 지나는 좁은 비포장도입니다. 조무락 계곡을 지나 석룡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복호동 폭포의 경유 여부에 따라 2개 코스로 나뉘는데 복호동 폭포를 들러 가는 석룡산 코스는 다른 코스보다 약 1km정도 깁니다.

 조무락 계곡을 따라 석룡산 오르는 길. 이 등산로는 오붓한 숲길입니다.
조무락 계곡을 따라 석룡산 오르는 길. 이 등산로는 오붓한 숲길입니다. ⓒ 문일식

지난 며칠 비가 내린 덕분에 계곡은 청정하고, 수려한 물줄기가 쉴 새없이 가평천을 향해 흐릅니다. 조무락이라는 이름처럼 산새들의 수많은 지저귐이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바람을 타고 귓가를 맴돕니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재잘거림이 가는 길 발걸음과 함께 합니다. 이따금 직박구리의 수다스러운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자신도 어울린다 생각하지 않는지 금세 저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꿀풀 군락지에서 꿀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꿀풀 군락지에서 꿀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 문일식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 속살을 드러내지 않은 조무락 계곡을 만납니다. 한사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숲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양쪽으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의 가녀린 잎들이 길을 지나는 종아리를 간지럽힙니다. 

꽃을 찾아 휘청거리듯 나비가 날아다니고, 벌은 보랏빛 꿀풀 군락에서 낯선 이방인의 접근에도 굴하지 않고 꿀을 따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조무락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작은 물길이 소리없이 흐르고, 이끼 낀 암반 위로 잔잔한 햇빛이 쏟아집니다.
조무락 계곡에 발을 담그고…작은 물길이 소리없이 흐르고, 이끼 낀 암반 위로 잔잔한 햇빛이 쏟아집니다. ⓒ 문일식

햇빛을 모두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길로 들어섭니다. 마치 어두운 동굴속으로 들어가는 두근거리는 느낌입니다. 폭포소리가 가까워지면 새소리는 멀어지고, 폭포소리가 멀어지면 새소리가 사방을 휘젓습니다.

물길따라 휘굽는 소리, 돌틈을 비집고 흐르는 소리,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 조무락골 계곡에는 계곡이 만들어내는 물소리로 가득 합니다. 때론 눈 앞에 있는 듯 가까이 들리기도 하고, 타는 목마름에 보이는 신기루처럼 멀리서 들려오기도 합니다.

 조무락 계곡의 숲길에 누워버려 길을 막아버린 고목입니다.
조무락 계곡의 숲길에 누워버려 길을 막아버린 고목입니다. ⓒ 문일식

석룡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그리 어렵지 않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림으로 이루어진 조무락골의 숲은 원시림에 가까울 정도로 울창합니다. 한 뼘의 햇빛이 숲 속으로 들라치면 바람과 나무가 힘을 합쳐 가지를 흔들어 방해를 하곤 합니다.

밑둥이 끊어진 고목들이 쓰러지면 쓰러진 대로 남아 있고, 습기가 많은 주변에는 머리털이 난 것처럼 녹색 이끼를 가득이고 있는 바위들이 가득 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소나무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온몸에 덩굴을 잔뜩 지니고 있습니다. 석룡산으로 향하는 길,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기품을 지닌 자연이 그렇게 천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조무락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 복호동 폭포로 가는 길. 큰 계곡을 두 번 지납니다.
조무락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복호동 폭포로 가는 길. 큰 계곡을 두 번 지납니다. ⓒ 문일식

복호동 폭포까지 가는 길에도 적어도 2-3번 정도 물을 건너야 합니다. 오름에 잠시 지쳐 쉬고 싶을 때 나타나는 반가운 물줄기입니다. 텀벙텀벙 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건너는 물줄기도 있고, 가는 길의 흐름을 끊고 건너볼테면 건너보라는 식으로 바위와 물줄기로 가로 막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작은 흐름이건 큰 흐름이건 간에 나타나는대로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염없이 쉬고 맙니다. 바위에 앉아 쉼없이 떨어지는 물줄기에 시름을 던져 두기도 하고, 시원한 물줄기에 발을 담가 더위를 씻어내기도 합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줄기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내려오는지 고마울 따름입니다.

 복호동 폭포 삼거리에서 만난 물줄기. 복호동 폭포를 못 찾고 헤매기도 했습니다.
복호동 폭포 삼거리에서 만난 물줄기. 복호동 폭포를 못 찾고 헤매기도 했습니다. ⓒ 문일식

복호동 폭포 삼거리에도 한차례 물줄기가 가로 지릅니다. '복호동 폭포 50m'라는 안내표지판을 보고,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50m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잘못 왔나 싶기도 하고, 물소리가 나는 저 아래로 폭포가 있나 싶기도 해 없는 길 찾아 내려가보기도 했지만, 폭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고, 복호동 폭포 삼거리에 이르러 안내 표지판을 보니, 화살표 방향을 잘못 읽고 석룡산으로 오른 것이었습니다.

복호동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음침한 물줄기를 따라 조그만 올라가면 복호동 폭포를 만납니다.
복호동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음침한 물줄기를 따라 조그만 올라가면 복호동 폭포를 만납니다. ⓒ 문일식

복호동 폭포는 길 옆으로 움푹 들어간 작은 계곡안 절벽으로 떨어지는 3단 직폭입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고, 폭포라고 하기도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지만, 폭포 안쪽으로 울창한 숲이 더욱 깊어지고, 햇볕마저도 차단되어 다소 음산한 기운도 느껴집니다. 돗자리를 깔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풍류라도 즐겨볼 만한데, 복호동 폭포 주변은 떨어지는 계곡수가 모이고 흐르는 물길이라 여유를 부리며 쉬어가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지 내려가는 동안 숲속은 조금씩 어두지기 시작합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은 더없이 그윽하고, 가끔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나무들이 뿜어내 던져주는 피톤치드 속에 머리만큼은 맑아지는 듯 합니다.

좁은 숲길에서는 잔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몸에 와 닿습니다. 가녀린 잎들이 얼굴을 부비며 아쉬움을 쏟아 붓고, 옷자락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잘 가라는 것인지, 떠나는 아쉬움에 나를 붙잡는 것인지….

깊어가는 오후, 기운 펄펄하던 물소리도 올라가던 때에 비해 약간 잦아진 듯 하고, 즐거워야 할 산새소리조차 서서히 잦아듭니다. 모든 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숲속을 메아리칩니다. 너희도 아쉽냐? 나도 아쉽다…. 긴 오후 햇살속으로 늘어지는 걸음을 바라보며 산새들이 조무락 조무락거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무락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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