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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지금 광주의 금남로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단순한 장맛비가 아닌 듯이 비가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예고하듯이, 비는 그렇게 내리면서 우리들의 분노를 더욱 흥건하게 흘러내리게 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에 모인 '미친 쇠고기 반대 촛불'을 결코 끌 수는 없다는 듯이 우리들의 오장육부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예고함인지 줄기차게, 줄기차게 그렇게 비는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구어낸 민주주의인가. 그리고 민족적 자존과 긍지, 통일의 그날을 대비코자 쑥물만을 삼키는 듯한 고통의 나날들이었던가.

 

아, 그래서 우리들은 기억한다. 할머니가 켜 둔 등잔불 혹은 촛불 밑에서 제발 이 나라가 평화스럽기를,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빌고 빌지 않았던가.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 히로히토 천황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들의 쓰라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하늘 저 멀리까지 빌면서, 우리들은 어느덧 이렇게도, 키가 훌쩍 커버리지 않았던가.

 

국군과 공산군의 몸이 무더기로 묻혀, 함께 썩어간 이 땅 삼천리 한반도. 한국전쟁 직후, 무밥과 해초밥만을 먹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의 경우도 이 땅 삼천리 한반도가 제발 폭력과 총소리가 없는 날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께 빌지 않았던가.

 

너무나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고향 사람들의 무덤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들의 유년시대(the Age of Korean Boys), 전후 반공시대의 흑막 속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에미 애비도 없던 우리들의 슬픈 유년'은 코밑수염이 시커먼 청년기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우리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어수룩하게 자라기만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땅의 역사발전에 나름대로 온몸을 던져가면서 피투성이와 같은 '암울한 청춘기'를 보내지 않았던가!

 

아아, 그리고 우리들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이다. "아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 미스 김도 잘 있거라 미스 리도 안녕히…." 그렇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면서 베트남으로 떠나갔던 10년 동안 연 병력 55만여 명의 따이한 병사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250억 달러를 벌어와 1960,70년대의 한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아아 그 시절의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 피의 냄새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지금도 큰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선물(?)로 만들어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우리들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들의 마지막 순간을 정말로 잊을 수는 없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랬다. 베트남전쟁에서 별을 달고 돌아온 일부 장군들은 1980년 5월, 자신들의 조국―한반도의 남녘땅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총소리, 총소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잿밥(정치)에 눈이 어두워 지키라는 최전방(DMZ)을 뒤로하고 후방인 '빛고을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모진 대가를 치르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과 전체국민들의 함성이 모아진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치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닌가. 신군부출신 전두환, 노태우를 '세기의 재판'을 통해 단죄코자 한 김영삼의 문민의 정부→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서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CEO출신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대권의 바통을 넘긴 참여정부의 노무현.  

 

아, 그런데 2008년 6월, 이른바 '이명박호(號)'는 어떤가. 과연 항해가 순조로운가. 우리가 볼 때는 아직 출항 직전인 것 같다. 아직 항로가 불투명하고 안개 속인 것 같다. 아니 어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개 속에서 좌초 직전에 놓인 듯이 보인다. "이래서는, 저래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틀리다는 것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고 애당초 잘못 낀 첫 단추를 다시 끼우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들의 역사를 더 이상 후퇴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난 역사를 되풀이하다가는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들이 피와 땀과 때로는 '죽음마저 불사'하며 가까스로 건져낸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일방적 공권력으로 밀어붙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갖가지 치졸한 묘수(?)로 언론을 위협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인터넷 민주주의'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 민주주의를 억압하면 21세기의 최대산업인 '지적 정보산업'('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도 추락한다는 것을 크게 귀담아 들어야 한다. 가령 싱크 탱크 산업도 위축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정부의 관련기관은 물론 집권자는 크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드린다. 이명박 정부에게 다시 말해드리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넘어가는 국민들이 아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죽음으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실천적 민주주의의 큰 체험'을 겪은 민족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 큰 체험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만큼이라도 성장시키면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경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프랑스 혁명 후기에 나타난 부르봉 왕조가,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보수반동체제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궤멸해갔는가를 상기해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익히 보아왔듯이 월드컵 4강국가 대한민국은 이제 '붉은 악마들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붉은 악마들의 순결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더욱 가속도가 붙어 '붉은 촛불을 밝게 켜려고 하는 나라'다.

 

붉은 악마들의 에너지+민주주의+통일한반도로 나아기 위한 21세기의 바로 이 시점에 와 있는 것이거늘, 이명박 정부(나는 아직은 '이명박 정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는데…)는 왜 물이 흐르듯이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좌충우돌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침이슬'을 부른 대통령께서 그동안의 우리나라 쓰라린 역사를 잊었단 말인가.

 

역사는 불도저나 굴착기로 밀어붙일 수는 없으며 또한 '컨테이너 명박산성'으로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홍준표 의원의 말 한쪽을 빌려다 쓴다면 '웃기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싶다.

 

노자가 말했다. 정치는 물 흐르듯이 하라고! 시대에 역행하면 그 앞날은 정말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시행착오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제는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뼈저린 체험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 광주의 금남로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단순한 장맛비가 아닌 듯이 비가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예고하듯이, 비는 그렇게 내리면서 우리들의 분노를 더욱 흥건하게 흘러내리게 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 그리고 전국의 거리 곳곳에 모여들어 켜는 '미친 쇠고기 반대 촛불'을 결코 끌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우리들의 오장육부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리하여 이윽고는 거리로 그득 쏟아져 내려가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님께 거듭 촉구한다. 비가 내리는 날, 어떤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비가 내리면 '공치는 날'이 되는 오늘, 공사판 '함바'집에서 한 잔의 막걸리를 올리며 말하듯이 간곡하게 말해드리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애국심이 강한 민족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며,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사랑한 민족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그 애국심과 그 민주주의로 '통일 Korea'를 향하여 밤낮으로 고민하는 나라의 국민들이라는 이 엄연한 운명과 사실을 감안해 '국민들의 촛불' 앞에서 제발 눈감지 말아 주십사 하고 두 손 모아 합장(合掌)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정말 21세기 위대한 '한반도 통일시대'의 대통령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무겁지만 발자국을 내딛어 나아가길 빈다.

 

그렇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출항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항로'를 계속하길 바란다. 민주정치와 민주경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같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두 레일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미국산 쇠고기'에 불이 당겨진 국민들의 분노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왔음을 명심하고 실천에 옮기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님께서도 세종로에 나와, 시민들과 함께 촛불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이 땅의 구성원들 모두를 ' 끝끝내 보낼 수 없는 님'으로 손잡아주면서 함께 일어서주길 바란다.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의 촛불을 주시하고 있다. 타는 촛불을!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오후

빗줄기가 줄기차게 쏟아지는―光州 금남로에서, 合掌!

덧붙이는 글 | 김준태 - 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을 거쳐 현재 한국문학평화포럼 상임고문이며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광주 금남로에 작은 학교 <금남로 리케이온Lykeion>을 마련, 활동 중이다. 


태그:#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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