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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하라 히토미의 두번째 장편소설
 가네하라 히토미의 두번째 장편소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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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고 말했다. 2004년 <뱀에게 피어싱>을 번역했던 옮긴이의 말이다. 가네하라의 작품이기에 다짜고짜 번역을 맡은 그녀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작품을 자신의 품에 껴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몇 번이고 책을 집어 던지고 몇 번이고 괴로워하며 몇 번이고 번역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나는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을 읽고 그 충격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나라에 출간 된 그녀의 나머지 책을 구입했다.

"내 앞을 걷던 애새끼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어 보였지만, 녀석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첫 문장부터 날이 선 글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가네하라 다웠다. 노골적이고 거만하게 늘어 선 글들을 바라보며, 처음엔 어떤 자극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내용은 스물 두 살의 넘버 쓰리 호스티스인 아야와 두 남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대학동기이자 유명 출판사에 다니는 호쿠토와 룸 셰어 형식으로 동거하고 있다. 아야는 호쿠토의 소개로 가게를 찾은 손이 아름답고 차가운 인상의 무라노씨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  특별한 삶의 이유도 목적도 없이 바보스러울 만큼 절박하게 그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하고, 나아가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만을 갈망하게 된다.

어느 날 호쿠토의 방에서 갓난아기를 발견한 아야는 그것이 호쿠토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디스트적인 무라노는 아야와의 성관계를 이어가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는 냉정함뿐이다. 그런 그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집착, 엄연히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호쿠토를 향한 경멸과 동질감 등이 혼란을 일으킨다. 아야는 그 속에서 자학과 원망을 반복한다.

도시별로 가장 비정상적인 세 사람을 선발해 팀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동성애와 자해, 아동 성애와 동물 학대…. 200페이지의 반 이상은 정상적이지 않은 섹스의 묘사와 절제하지 못하는 감정의 배설과도 같이 느껴지는 글들 뿐이다.

심하다. 가네하라의 글들은 쉽지 않다. 철저하게 바닥까지 내려간 인물들의 기괴함은 불쾌하다. 공기마저 어두운 잔인한 세계 속에 머무는 듯 멍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어느 페이지도 이해할 수도 공감 할 수도 없다.  누군가는 저속하다고 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 하는 지 통 알 수 없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무라까미 류는 말헀다."이 소설은 현대의 바로크다. 일그러져 있지만 아름답다" 라고. 나는 조금씩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애시 베이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과 진심어린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아야는 마음을 열어 보이는 관계를 혐오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주어도 너무 쉽게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아야는 오로지 습관적인 섹스만을 통해서 그 허기짐을 채우지만 그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몸을 나누어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깊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어도 소외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야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학대하고 더 나아가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어 한다.  그에게서 받는 가학적인 섹스를 통해서도, 법적인 혼인신고를 통해서도 무라노에게 받는 소외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도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 마음을 열고 싶으면서도 거부당할 것이 두려워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쪽으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에게 자신을 전부 드러내고, 모조리 까 보이고, 그러고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기괴하고 혐오스러움을 안겨주는 호토쿠 역시 결국엔 그 어떤 식으로도 사람과의 소통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데리고 온 아이에 성적인 집착을 보이고 아야는 비정상적인 그를 저주하게 되지만 결국 호토쿠도 아야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와의 진정한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애시 베이비란 종이박스 하우스에 담긴 아이를 뜻한다. 그것은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할 수없는 아이와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이 세 인물들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신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아야나 무라노, 호쿠토 이들이 사랑하고 싶은 상대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은 건조한 관계 속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소통의 부재에 의한 것이 아닐까.

<뱀에게 피어싱>을 대중적인 시각으로 쓰려고 했다면 <애시 베이비>는 자신이 쓰고 싶은 부분에 집중했다고 가네하라 히토미 말하고 있었다. 전작 <뱀에게 피어싱>의 출간 이후 오 개월도 안 돼서 출간된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지지하는 쪽은 기존 문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달아 파격적인 소재와 문장력을 높이 샀으며 주인공의 바보스러울 만큼 일방적이고 절박한 사랑에 공감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책의 모든 인물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나도 그들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즈음 잔인함은 슬픔으로 슬픔은 또 다른 공허를 안고 가슴에 남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심어린 소통이란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섹스이상의 그 어떤 관계의 절실함을 원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외로워하는 현대인의 단면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부드럽고 친절한 단어들로 감동을 받을 만한 책은 아니며 읽고 난 후에 쉽게 잊혀질 만한 책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책을 구입하기 전에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난 아마 그래도 <애시 베이비>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람은 때로 지독하게 절망적인 것에 위로받는 법이니까.


태그:#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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