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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KBS본관 앞에서 극우단체들이 공영방송을 사수하기 위한 촛불집회 참가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맞불집회'의 성격을 띠고 열리는 보수극우단체들의 집회가 시작되면서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촛불집회의 비폭력은 기적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이어진 촛불집회는 한껏 성숙한 시위문화를 보여주었으며 80년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지난 10일, 100만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했을 때에도 폭력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그곳에서도 말다툼은 있었을지언정 폭력행사는 없었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주도했던 측은 단연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시민들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비폭력 평화시위로 이어졌다는 것, 그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맞불집회 형식으로 열리는 보수단체와 극우단체들의 집회가 열리면서 그 양상이 사뭇 달라지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비폭력'을 고수하지만 보수단체와 극우단체의 행태는 시비를 걸어서라도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폭력행사를 고대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행위는 촛불집회를 폭력집회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행동들이다.

 

지난 6일, 난데없이 서울광장을 점거하다시피한 한국특수임무수행자회가 추모행사를 열더니 10일에는 뉴라이트연합 및 국민운동본부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때에도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인내로 폭력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만일 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촛불집회의 당위성들이 위협당할 수도 있었기에 참가자들은 인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맞불집회는 얼마나 되었다고 폭력을 휘두르는가?

 

그러나 후발주자(?)로 맞불집회를 연 극우단체들은 급기야 23일, 촛불집회 참가시민들을 각목으로 폭행하기까지 했으며, 그들의 집회를 돕는 차량에서는 다량의 각목들이 들어있어 폭력시위를 하기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이들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음에도 그들을 풀어주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폭력을 방조하고, 촛불집회에서 폭력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듯하다고 느끼는 것이 과한 것일까?

 

어떤 집회든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서 장기화되면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과정에는 언제나 폭력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잠재되어 있다. 이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아무리 정당한 집회도 그 정당성을 훼손당할 수밖에 없고, 그 집회를 반대하는 쪽에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폭력은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지금, 극우단체들의 폭력행위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당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촛불집회에서 배우라. 50여일 가깝게 이어지는 촛불집회를 하면서도 평화로운 축제성 시위문화를 정착해가는 성숙한 시위문화를 배워라. 그러면 단순한 감정적인 싸움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이 나라의 역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야 당신들도 '진보'할 수 있다

 

'레드컴플렉스'는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오죽하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촛불집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보수언론, 보수논객과 극우에서는 '좌파'라는 딱지를 붙인다. 좌파는 곧 친북세력이며 타도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며,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 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에 진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연 우리의 식탁을 지키고,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겠다고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좌파고, 이 나라의 교육현실에 분개한 청소년들이 빨갱인지,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겠다고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 나라를 뒤흔드는 일인지 묻고 싶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촛불집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추진한 쇠고기 추가협상, 단서가 달리긴 했지만 경부운하 포기, 의료보험 민영화 포기 등을 추진한 정부는 좌파의 선동에 놀아나는 정권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빨갱이니, 좌파니, 사탄이니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쓰고 있는 붉은 선글라스를 벗어라. 그래야, 당신들에게도 진정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정권에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보일 것이다.

 

폭력을 쓰지 말고 사투를 벌여라

 

언론을 통해서도 보수와 진보 간의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 토론을 보는 이들은 분노하고, 긍정하면서 어느 쪽이 옳은지 선택하게 된다. 의견이 끝내 합일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토론을 통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해 갈 수 있는 것이며,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토론문화의 모범은 촛불집회에서 보여줬다. 감정싸움이 아니라, 무조건 빨갱이라고 빨간칠을 할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각목을 싣고 다닐 것이 아니라 왜 당신들의 주장이 옳고, 상대편의 주장이 허구인지를 토론을 통해서 주장하라. 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밤샘 토론을 했던 촛불집회 참석자들에게, 밤새워 모니터 앞에 앉아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아고라에서 토론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당신들만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당신들만 이 나라를 지켰다고 착각하지 마라. 촛불을 들고 나온 이들 한 사람 한 사람도 모두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안위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뜨거워서 그곳에서 외치는 것이다.

 

"칼을 드는 자, 칼로 망한다." 그것은 결코 경전에나 있는 그런 말이 아니다. 맞불집회를 하는 극우단체들이여, 촛불집회에서 시위문화의 기초를 배우고 현장으로 나오라.


태그:#촛불집회, #레드컴플렉스, #극우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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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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