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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마니산의 푸르름이 절정이다. 짙은 녹음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싱그럽다. 숲 속 어디선가 들리는 뻐꾸기소리가 구성지다. 한낮의 한가로움을 깨우는 듯싶다.

 

매실나무 밑에 자란 풀이 만만찮다. 요즘 같아서는 한 일주일만 한눈을 팔면 풀이 사람을 이기려 한다. 장마기간에는 볕만 나면 풀을 잡아야 한다.

 

낫을 들었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잎 사이에 숨은 푸른 매실이 탐스럽게 달렸다. 요 녀석들 언제 따지?

 

매실을 따는데도 적당한 시기가 있다

 

"매실이 꽤 달렸네. 잘 여문 것 같아. 술을 담그든지, 효소를 내리든지, 이젠 일을 내라구!"

 

옆집 아저씨가 당근 씨를 뿌리다 낫질하는 나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일하다 사람을 만나면 쉬고 간다.

 

"아저씬, 매실 여문지 어떻게 아시죠?"

"씨가 깡깡하면 잘 익은 거지!"

 

생뚱맞은 말씀이 우습다. 아저씨가 하던 일을 금세 마치고 내게 왔다. 매실 하나를 따서 깨물어본다. 몹시 시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찾는다. 뭐하려고 그러실까? 씨를 깨뜨려본다.

 

"지금이 딱이야! 죄다 따도 되겠어!"

"그래요? 우리 집사람은 누레질 때 따라던데! 익어야 제 맛이 난다면서요."

"그래도 청매실이 영양이 좋다잖아! 맛은 어쩔지 몰라도!"

 

아저씨는 바로 따라고 채근이다. 나는 아저씨 말을 믿고 매실을 따기로 했다.

 

매실은 따는 시기를 놓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아저씨는 씨알이 굵어지고, 표면에 솜털이 벗겨질 때쯤 따면 좋다고 한다. 유월 중순을 넘겨 따면 괜찮다는 것이다.

 

망종(芒種) 전에 따는 매실은 씨가 덜 여물어 별로다. 매실과육에는 청산배당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장내효소와 결합하면 독성의 시안산화합물을 형성하여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실과육에 있는 청산배당체는 자라면서 매실씨에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열매가 굵어지면 씨가 단단해지고, 과육에는 청산배당체가 남아있지 않게 되는 이치다. 또한 잘 여문 매실에는 구연산 함량이 풍부하다고 한다.

 

매실나무에서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리다

 

나는 집 뜰에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 심은 지 5년이 되었다. 이제 제법 나무 구실을 하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 대부분 나무에서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과, 배, 포도, 자두, 보리수, 앵두, 체리 그리고 살구, 매실 등의 수확이 기대된다.

 

유실수를 심고 소중한 열매를 언제 딸 수 있을까 노심초사 기다렸다. 역시 나무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무들은 재작년부터 꽃을 피워내기 시작하더니 올봄에는 더 많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그중 가장 기대를 갖게 한 나무가 매실나무와 살구나무였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 법. 사실, 작년에 꽃이 필 때도 나는 은근히 결실을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꽃은 예쁘게 피어놓고선 과실은 거의 맺지 못했다. 달린 열매도 아주 부실했다. 아마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작년 가을, 나무밑동에 구덩이를 파고 잘 썩은 깻묵을 듬뿍 주었다. 가지도 적당히 쳐주었다.

 

그래서 그럴까? 올해는 꽃 피는 게 작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살구나무나 매실나무는 이른 봄부터 하얀 꽃으로 기쁨을 주었다.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그리고 여름의 길목에서 탐스러운 열매는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있다.

 

첫 결실을 거두는 기쁨은 나무를 심어본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갖은 정성을 쏟으며 여러 해 기다린 보람이 있다.

 

보기도 아까운 매실로 뭘 하지?

 

나는 소쿠리를 챙겨왔다. 풀 벨 때의 짜증은 모두 달아난다. 신명나는 일은 힘 든 줄도 모른다. 수확의 기쁨이 가슴 가득 충만함을 채운다. 얼마나 딸 수 있을까?

 

녹색 잎 뒤에 열매들이 숨어있다. 요리저리 고개를 갸우뚱하여 들여다보면 매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하나 따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가 나를 찾는다. 좀 기다려 따자는데 일을 벌인 내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아직 익지도 않은 것을 따면 어떻게 해?"

"이 사람, 익기는 왜 안 익어? 씨가 탱글탱글한 것을 확인했다구."

 

아저씨 말씀을 듣고서는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내도 매실을 따본다. 아내와 함께 하니 일도 수월하고 기쁨이 더한 것 같다.

 

수확한 매실이 한 소쿠리 남짓 된다. 처음 수확치고는 수월찮은 양이다. 바구니를 두 개나 챙긴 욕심 많은 아내는 좀 서운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올부터 열리기 시작했으니 나무가 더 자라고,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양을 거둘 거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매실을 따며 즐거워하는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매실로 뭐하지? 술 담글까?"

"술보단 매실효소가 좋은데…."

"술 담그는 것은 쉽지만 매실효소 내리는 것은 힘 든 거 아냐?"

"매실주는 술 붓고, 매실효소는 설탕에 재워두면 되는데요."

 

아내는 매실주보다 매실효소 담그는 것이 좋다고 우긴다. 우리는 음료로 쓸 매실효소를 담기로 했다.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며 매실효소를 담글 준비를 한다. 매실 양만큼 황설탕이 필요하다. 용기는 자그마한 옹기항아리를 준비한다.

 

매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평상에 널어 말린다. 물기가 마르자 항아리에 매실과 설탕을 켜켜이 재우고, 나중 설탕으로 완전히 잠기도록 하면 일이 끝난다.

 

앞으로 100여일 숙성하고 매실을 분리하면 훌륭한 매실효소가 완성될 것이다. 매실효소는 물에 적당히 희석하여 얼음을 동동 띄어서 먹으면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매실음료는 피부미용과 원기회복에도 좋다고 한다. 또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는 갈증해소에 그만일 것이다.

 

일을 하는 내내 아내는 즐거운 표정이다. 집짓고 이사 오던 해 심은 매실나무에서 거둔 매실로 효소를 내려 훌륭한 음료수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더 잘 돌보아서 내년에 거두는 양이 많아지면 장아찌도 담고, 매실주도 담자고 한다.

 

아내는 매실효소를 담은 항아리를 닦고 또 닦는다.


태그:#매실, #매실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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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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