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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5일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위해 찾아왔던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개목항을 5개월여 만인 5월 9일 찾았다. 원유 덩어리로 뒤범벅이었던 검은 해변은 기적의 손들에 의해 말끔하게 닦여지면서 원초의 푸른빛을 되찾았다. 코끝을 간질이는 해풍이 싱그럽다.

 

"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햐아~ 햐아~ 물고기다! 물고기!!!"

 

해변가에서 갑자기 깡충깡충 뛰던 샘이 능숙한 한국말로 탄성을 지른다. 샘이 가리킨 바다를 유심히 보았다. 숭어 몇 마리가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다가 바다에 자맥질한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검은 재앙이 걷혀지면서 물고기들이 생명의 고향으로 차츰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세 청년 태안과 사랑에 빠지다

 

서른 넷 '꼬빌', 스물여덟 '샘', 스물여섯 '나주물'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다. 가난한 고향, 허기진 부모 곁을 떠나 낯선 한국에 온 이들 또한 여느 이주노동자들처럼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타국살이의 설움을 꾹꾹 눌러 참으며 산다.

 

한국에 온 지 어언 6년에서 8년째가 되는 이들의 한국 사랑은 숭늉처럼 구수하다. 8년째 한국 생활 중인 샘의 한국어 능력은 매우 능수능란해서 방글라데시 말이 아닌 한국말로 잠꼬대를 할 정도이다. 심성이 고운 탓인지 아니면 방글라데시 음률이 그런지 모르겠으나 샘의 한국말은 감미로운 음악처럼 부드럽기조차 하다.

 

언어뿐이 아니다. '샘'이 직접 조리한 미역국을 먹어 보니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미역국에 밥을 만 뒤 한술 크게 뜨고는 총각김치를 '척' 허니 얹어 먹는 '샘'의 모습은 농촌총각처럼 정겨울 뿐이다.

 

이들이 한국에 온 것은 '코리안드림'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울 리 있겠는가? 그래서 '드림'이라고 칭하는 것일 것이다. 이들 방글라데시 세 청년의 '코리안드림' 또한 눈물과 아픔으로 일그러졌다. 하루에 12시간씩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해야 했던 이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야단맞아야 했고, 기계에 손가락을 다쳤지만 산재처리는커녕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게다가 체류기간을 어긴 뒤로는 단속과 강제추방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안 어떤 사업자들은 임금체불을 하고도 큰소리를 쳤다. '임금을 달라고 계속 귀찮게 하면 출입국에 신고해서 강제추방 시키겠다'고….

 

가난한 아시아인들에게 '코리안드림'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코리안드림'은 꿈은 꿈이되, 꿈꿀수록 식은땀 나는 '코리안악몽'이었던 것이다.

 

저 많은 기름들을 사람 손으로 닦을 수 있을까?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지난해 12월 15일, 7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기름유출 사고로 초토화가 된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개목항을 찾았다. 검은 재앙에 휩싸인 태안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코리안악몽'으로 지친 샘, 꼬빌, 나주물도 그렇게 잠시 잠깐 태안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테러와 전쟁, 쓰나미와 가뭄 등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재앙,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만이 전쟁터가 아니었다. 여기, 원유 폭탄에 처참해진 태안반도에는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참혹함은 없었지만 생명과 풍요의 갯벌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태안의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투입된 중장비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검은 갯벌! 세 명의 방글라데시 청년은 원유에 범벅이 된 갯돌을 닦고 닦으면서 이상한 나라 코리아를 목격했다. 정쟁이 끊일 새 없고, 이기주의와 반인권이 판을 치는 것 같지만 막상 위기 앞에서는 헌신적인 희생으로 하나가 되는, 나보다 이웃을 더 챙기는 '나눔의 코리아'를 목격한 것이다.

 

잠시 잠깐 왔다가려 했던 방글라데시 청년은 6개월째 태안에 머물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 배식을 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태안에 머물게 한 것일까요? 그 힘은 숭늉 같은 한국의 정(情)이었고, 재앙을 이겨내는 한민족에 대한 감동이었다. 이들은 태안의 기적을 이렇게 말한다.

 

"저 많은 기름들을 사람의 손으로 다 닦아낼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는데, 그 일을 해낸 자원봉사의 손길을 보면서 사람의 손이 정말로 위대함을 깨달았어요. 한국 민족은 정말 대단해요. 우리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돈 한 푼 받기는커녕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태안까지 찾아와 자원 봉사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들도 태안에서 이렇듯이 오래 머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물론 태안의 기적은 상상조차 못했다.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보름 또는 한 달 정도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자원봉사자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았다. 요즘도 토요일이면 400~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개목항을 찾는다고 한다.

 

기계처럼 살았는데... 따스한 눈빛과 미소에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들이 돈 받고 일하는 줄 알고 돈을 받던 태안버스 운전사들이 자원봉사로 일한다는 소문을 들은 뒤부터는 버스를 무료로 태워 주었어요. 주민과 자원봉사들이 따스한 눈빛과 친절한 미소로 대해 줄 때마다 너무 행복했어요."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면서 기계처럼 살았던 이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야단맞아야 했다.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의 감옥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상실했던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게 된 것이다.

 

"돈 벌기 위한 기계처럼 살았는데, 주민들에게 사람 대접을 받으며 함께 어울리며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다보니 가족들이 몹시 그리운데, 가족 같은 주민들과 이렇게 정을 나누고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사는 게 꿈만 같아요. 돈벌이를 떠나서 이렇게 살고 싶어요."

 

의항리 개목항 주민들은 이들을 가족같이 대한다. 밥을 차린 뒤 같이 먹자며 부르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농사일을 같이하면서 참도 나눈다. 주민들에게 이들은 도회지로 떠난 자식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아들 같고, 이들에게 개목항은 또 다른 고향 같은 곳이 됐다.

 

머물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는 이들을 자식처럼 여긴다. 빨래 감을 모아두면 슬며시 가져가서 빨래를 하고 차곡차곡 개서 방안에 넣어둔다. 이들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는 할머니는 도회지로 떠나는 자식에게 청하듯이 말끝을 잇지 못한다.

 

"여길 떠나지 말고 우리랑 같이 살았으면 좋을 텐데…."

"저희들도 할머니가 보고 싶을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번은 찾아올게요!"

 

이들은 이젠 '코리안드림'만을 꿈꾸지 않는다. 태안의 기적을 일구고 상처 입은 이주노동자의 마음을 치료해준 '태안의사랑'을 삶의 지표로 삼으려고 한다.

 

샘은 귀국해서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봉사단체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꼬빌은 노인과 고아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게 꿈이다. 심장 때문에 건강이 여의치 않은 나주물은 아버지 가게를 운영하면서 샘과 꼬빌의 봉사활동을 돕고 싶다고 했다.

 

"우리 나라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배운 봉사를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런 꿈과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요!"

덧붙이는 글 |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서해안 살리기 자원봉사 수기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글입니다. 


태그:#태안, #자원봉사, #이주노동자, #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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