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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6일 밤 11시 10분]

 

"유가보조금도 못받는 건설노동자들은 오죽 하겠나"

 

"가장 불쌍한 노동자들, 제일 못 사는 노동자들…."

 

덤프트럭 운전사 조형수(63)씨가 자신과 동료들을 가리키며 내뱉은 말이다. 조씨는 "1971년부터 트럭을 운전했는데, 여태껏 33㎡짜리 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소리쳤다. 그의 붉게 탄 얼굴에서 깊게 팬 주름이 눈에 띄었다.

 

그와의 만남은 16일 오후 2시 대학로에서였다. 이곳에서는 이날 0시부터 총파업을 선언한 전국건설노동조합 건설기계분과 노동자 2만5000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이들은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라고 외치며 청계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들의 요구는 기름 값 인하와, 표준임대차 계약서 현장 적용이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1만명의 비조합원이 참가했다. 말 그대로 '생계형' 파업이다.

 

"유가보조 받는 이들도 죽겠다는데, 못 받는 우린 어떻겠느냐"

 

조씨는 "덤프트럭 운전자를 포함한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산재·고용보험 등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덤프트럭은 화물차량 운전자처럼 유가보조도 받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조씨는 "정부는 덤프트럭을 유가보조 못 받는 포클레인과 같은 중기에 묶어 놓았다"며 "유가 보조를 받는 화물연대도 파업할 정도니, 우린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덤프트럭 운전자들의 가장 큰 고통은 화물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급격히 오른 기름 값에서 비롯됐다. 김남수(40)씨는 "10년 전 리터당 500원이었던 경유 값이 현재 2000원대로 4배가량 올랐지만, 우리가 받는 운반단가는 25만원에서 35만원으로, 얼마 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똥쟁이'라 부르는 중간착취자 때문에 제대로 돈을 못 받는다"고 밝혔다. "재작년 판교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주택공사에선 원청 기업에 운반단가로 6만8000원을 지급했는데, 우리가 받은 건 2만8000원이었다"고 지적했다.

 

덤프트럭 운전자에게 불리한 계약 관행도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김씨는 "건설업체 때문에 과적해 단속에 걸려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벌금을 내가 낸다"며 "또한 업체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일하지 말라고 하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경제발전 기여 자부심, 지금은 참담"

 

윤여충(47)씨는 기자에게 "참담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윤씨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며 "덤프트럭 운전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달라"고 말했다.

 

24톤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그는 요즘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한 달에 20일정도 일한다. 하루 10~12시간씩 일해 30만원을 받으니, 한 달 수입은 600만원이다.

 

기름 값은 하루 20만원씩 월 400만원이 든다. 2억원짜리 그의 스카니아 덤프트럭의 한 달 할부금액은 320만원이다. 유지비 80만원, 보험료 15만원, 관리비 5만원까지 더하면, 적자다. 생활이 불가능하다.

 

광주에 살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 6000~7000만원하던 24평 아파트를 팔고, 보증금 200만원, 월 30만원짜리 20평 사글세로 집을 옮겼다. 그에게는 8000만원의 빚만 남았다.

 

윤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예전에는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비노릇도 못하는 것 같아 얼굴을 들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1신 : 16일 오후 4시 45분]

 

"건설장비 돌릴수록 적자, 차라리 우릴 죽여라"

 

"표준임대차 계약서와 운반단가 현실화가 현장에서 이뤄질 때까지 무기한 파업하겠다."

 

16일 새벽 0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건설노동조합 건설기계분과가 이날 오후 대학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노동자 2만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고유가 해결,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서 현장 안착화를 위한 건설기계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 직전에 열렸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못살겠다,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백석근 건설노조 위원장은 "파업의 핵심적 이유는 고유가로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라며 "우린 건설기계 장비를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면서 운반단가 현실화를 요구했다.

 

그는 "1992년 182원이었던 경유가 현재 2000원에 육박하는 등 11배가 올랐지만, 덤프 장비 임대료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50%밖에 안 올랐다"며 "현 정권은 이에 대한 대책을 빨리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건설노조와 정부는 전체의 40%에 이르는 관급 공사현장의 경우, 오른 기름값을 지급하고 운반단가를 현실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건설노조는 "나머지 60%에 이르는 민간 공사 현장에서의 정부 대책은 전무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단 한 곳도 표준임대차 계약서 사용 안 해

 

건설노조의 또 다른 요구사항은 표준임대차 계약서의 안착이다.

 

백 위원장은 "2005년부터 2006년에 거쳐 노예계약을 끝내고 정상적이고 투명한 계약서의 법제화를 요구해, 지난해 7월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표준임대차 계약서의 내용은 기름 값은 실질적으로 장비를 사용하는 건설회사가 낼 수 있게 하고, 1일 가동시간은 8시간, 1달 가동시간은 20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표준계약서가 정착되면 건설 기계장비 종사자 30만명의 사정은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표준임대차 계약서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백 위원장은 "6월 11~13일 건설노조와 정부가 현장 조사를 했지만, 단 한 곳도 표준임대차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파업에는 전체 조합원 1만 8천명과 함께 비조합원 3만명이 동참했고, 전국 토목건설현장의 90% 이상 작업이 중단됐다. 특히, 판교신도시·은평뉴타운·인천대교·서울-용인 고속도로 등의 대형 건설 공사 현장도 멈춰버렸다.  

 

건설노조는 이날 저녁 7시부터 여의도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 문화제를 열고, 17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는 과천정부종합청사와 대방동에서 잇달아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이후 18일부터는 각 현장에서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태그:#건설노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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