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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책임진다'고 했는데 유죄를 인정하는 것인가?"

이건희 전 회장 : "책임진다고 해서 유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죄가 되면 책임지는 것이고 죄가 안 되면 책임 안 지는 것 아니겠나."

 

12일 저녁 7시 20분경,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6시간 전 법정에 들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13년 만에 법정 출두한 이건희, 겉으로만 긴장했나?

 

13년 만에 법원에 출두하는 이건희 전 회장을 처음 맞은 것은 "이건희를 감옥으로"라는 구호였다.

 

진보신당 당원 대여섯 명은 이 전 회장의 출두 시간에 맞춰 법원 정문 앞에서 "이건희를 구속하라. 불법경영 이건희를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 전 회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국민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라며 몸을 낮추는 태도를 보였다.

 

법정에 들어선 뒤에도 이 전 회장은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피고인석 2번째 자리에 앉자 마자 안경을 쓰고 변호인과 함께 서류를 검토하며 변론 내용을 살폈다.

 

민병훈 부장판사가 피고인 인정신문 절차에 따라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물을 때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보다 앞서 출석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사장, 현명관 전 회장, 김홍기 전 사장, 최광해 전 부사장 등이 피고인 인정신문에 답할 때는 슬쩍 이들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조준웅 특별검사가 모두 진술에서 사건의 성격과 본질을 발언할 때 조 특검을 뚫어져라 쳐다 보거나 물을 마셨다. 증거 조사 절차에서는 재판부가 재판진행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한 대형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특히 공판 모두진술에서 "모두 제 불찰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제가 다 지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20년간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달려와 제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데 소홀했던 것 같다"며 "저와 함께 법정에 선 사람들은 모두 제 책임 하의 사람이니 선처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자, 그를 비롯한 삼성측 변호인단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이 전 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를 지시했는지, 자신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거래로 양도차익이 난 것은 알고 있었는지 등 재판부 질문에 모두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변호인단 "사적자치질서에 검찰권 개입은 기업자유 제한"

 

삼성측 변호인단은 가장 가벼운 죄목인 증권거래법 위반행위만 인정하고 중죄인 배임과 조세포탈은 모두 부인했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과 관련해 "이 사건의 실질적 고발인은 참여연대"라며 "이 사건은 배임 문제가 아닌 구 주주와 신 주주 간 부의 이전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사실 사적 경제활동 영역으로 국가가 어느 정도나 관여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매각 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10년 이상 적자가 누적됐고 IMF 이후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자금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며 "그를 위해 BW 발행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는 핵심적인 경제질서 중 하나인 자본형성행위이며 사적 자치질서"라며 "이에 검찰권이 개입하는 것은 기업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세포탈혐의에 대해서도 "차명계좌 장기 보유로 주가가 폭등하면서 양도 차익이 생긴 것 뿐"이라며 "차명 계좌를 이용해 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단 포탈액은 이미 납부했거나 납부할 뜻을 밝혔다.

 

재판부 "소수주주 재산권 침해 명백... 변호인단 주장 동의 안해"

 

그러나 민병훈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며 직접 삼성측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향후 논의를 하겠지만 적어도 에버랜드 CB나 삼성SDS BW를 실권한 삼성 계열사의 소수주주 혹은 외부주주의 재산권 침해가 명백하다"며 "이는 경영권 승계, 기업 지배구조변경을 통한 재산범죄적 성격이지 (변호인 측이 주장하는) 세금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 진술이 끝나고 이뤄진 증거 조사 절차에서도 재판부는 "계열사 경영지원실과 구조본(비서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 CB나 BW 발행을 계열사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냐" "이 회장 일가의 재산현황 보고는 언제, 어떻게 이뤄졌나" 등등을 심문하는 등 특검이 제출한 증거들을 빈틈없이 짚어나갔다.

 

공판 시간이 6시간에 다다르자, 이 전 회장은 피곤한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한편, 오는 18일과 20일로 예정된 공판에서는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구조본 지시 하에 에버랜드 CB를 헐값발행 사건에 대해 증인 신문 등을 위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 24일 공판에서는 차명계좌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그에 따른 양도차익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를 다루고 27일에는 삼성SDS BW 헐값발행 사건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다.


태그:#삼성특검,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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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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