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로 어제(10일) 오후 산행해 힘을 뺀 탓에 오늘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을 찾았다. 해운대 장산으로 갈까, 승학산으로 다시 가볼까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결정했다가 뒤집었다가 하다가 결국 장산도 승학산도 아닌 영축산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영축산은 지난 2월에 갔는데 차가운 칼바람에 식겁한 산이다. 지난번에는 양산시 배내골 청수골 산장을 들머리로 해서 등반했는데, 이번 산행은 양산 통도사 옆 지산리 마을에서부터 영축산을 오르기로 했다.

 

64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가 자리한 영축산(1,081미터)은 원래 축서산이라 이름하였으나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꾼 것이라 한다. 영축산의 지명은 '영취산'과 '취서산' '축서산 등 4가지로 쓰여 혼선을 빚어오던 중 2001년 1월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여 지금은 영축산으로 부르고 있다.

 

양산 통도사는 지금껏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영축산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것 같고 이름만 듣던 양산 통도사도 볼 겸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제 산행을 한 탓일까. 오늘은 몸이 좀 무겁고 산행을 하기도 전에 올라갈 것이 꿈만 같게 느껴진다.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행하는 즐거움이 있어 어쨌든 산행길을 나섰다.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지산마을 버스 종점 앞에 차를 주차해 놓고 산 들머리에 들어섰다.

 

길이 거미줄처럼 갈래 갈래 많이 나 있을 때,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길이 많아 그 길마다 다 가 본다면 필시 길을 잃을 게 분명하다. 길이 많이 나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땐 한 눈 팔지 않고 가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어떤 산이든 갈림길이며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동안 산행해 온 경험으로 보아서는 이곳 영축산 가는 길만큼 사방팔방으로 많이 난 길을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다.

 

통도사 근처 지산리 마을에서 영축산 오르는 등산로엔 길도 많기도 하다. 조금 올라가다가 함부로 탄 가르마 같은 옆길이 보이고 또 보인다. 영축산 솔뫼(<산속에서 만나는 몸에 좋은 식물>의 저자)가 영축산자락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토굴을 짓고 이곳에 살았다고 하는데, 약초를 많이 캔 것이 알려져서 약초산행을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솔뫼가 약초와 자연생태를 연구하느라 온 산을 밟느라 길을 낸 것일까. 하여튼 여느 산과 달리 유난히 길이 많기도 했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자주 옆으로 새는 샛길들이 유혹하듯 사방으로 나 있다. 호기심에 그 길을 걸어가고 싶기도 하지만 묵묵히 가던 길을 계속 걷는다. 들머리서부터 얼마쯤은 완만한 산길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지점부터는 직각으로 솟은 오르막길이 바로 앞에 엎드려 있어 조망은 없고 계속 오르고 또 올라야 했다. 이 길은 바람 길이 아닌가 보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라도 있으면 등을 적신 땀을 씻기라도 하련만.

 

약초로 유명한 산이어서 그럴까. 오늘따라 산길에 둥굴레가 많이 보인다. 둥굴레와 유사종인 애기나리라는 것이 있는데 실제로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지만 하도 비슷하게 생겨서 착각을 하기 쉬웠다.

 

뿌리를 보면 또 정확히 알 수 있는데 둥굴레는 뿌리가 한 방향으로 나 있지만, 유사종인 큰 애기나리는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알 수 있었다.  몸도 피곤하고 지쳐 있어 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면서 둥굴레를 몇 뿌리 캐기도 하면서 걷는다.

 

처음엔 둥굴레와 유사종을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자꾸 유사종과 진짜 둥굴레를 보면서 나중엔 정확하게 터득해 알 수 있었다. 양산을 쓰고 온 두 아주머니가 보인다. 보아하니 영축산 정상까지 가는 폼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는 약초가 들려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모두 다른 것을 본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다.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 모두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느낀다.

 

산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오직 목표지점을 향해 돌진하듯 숨 가쁘게 우리를 앞질러 가는 사람도 있고, 정상까지 가지 않고 약초를 캐면서 산보하듯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처럼 느릿느릿 걸음 옮기며 낮은 들풀과 들꽃들에도 눈인사를 하면서 산을 느끼고, 그 산이 들려주는 소리와 감성을 느끼며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똑 같은 사물을 보아도 모두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며 다른 것을 생각한다.

 

얼마나 더 가야할까. 가도 가도 오르막만 계속된다. 통도사 지산마을에서 영축산 가는 산행길은 비로암으로 가는 길 외엔 최단 코스다. 그만큼 거칠고 가파른 힘겨운 산행로임을 감수해야만 했다.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긴 시간 동안 걷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원래 우리 산행의 특징이 느릿느릿이지만 힘에 부쳐서 오늘은 더 느리게 걷는다.

 

우리 뒤에 오던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은 축지법이라도 쓴 것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앞질러 가더니 얼마쯤 올라간 것일까. 어느새 길에선 그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땀을 이리 많이 흘리고! 밭을 매도 몇 고랑은 맸을 텐데!” 계속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지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저만치 아래쪽에서 비 오듯 땀 흘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중년을 훨씬 넘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힘든 산행길에 대한 표현을 그렇게 했다.

 

오르막길의 전망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취서 산장을 얼마 앞두고 결국 직각으로 뻗은 등산로를 버리고 조금 완만하게 이어지는 임도를 탔다. 취서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마당 앞에 놓인 나무의자에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히며 휴식했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취서 산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이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곳까지 온 것일까 궁금했지만 그냥 나왔다.

 
 

이제 다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곧 영축산 정상이 가까이 있다고 하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 가파른 급경사길이 역시 계속된다. 1시 40분, 정상을 얼마 앞두고 전망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높은 암봉이 맨 먼저 앞을 가렸다. 우뚝 솟아오른 높은 바위산 그 주변에는 역시 크고 작은 암봉들이 높이 솟아 있다. 전망이 서서히 드러나자 힘이 난다. 힘들게 긴 시간을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온 보람이 있다.

 

드디어 영축산 정상이다. 높은 산을 힘들게 올라온 보람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을 만회시켜주는 탁 트인 전망과 높고 푸른 산 빛들, 영축산의 또 다른 면모를 보는 순간이다. 신불산을 비롯해 영남 알프스의 산들이 희미하게 드러나 보인다. 지난 2월에도 영축산에 올랐지만 그땐 영축산이 이토록 압도적인 위용과 웅장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2월의 칼바람을 맞으며 청수골 산장에서부터 올라온 초원길엔 비록 칼바람이 몰아치고 흰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지만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넉넉함을 느꼈다면, 이번에 지산리에서 오른 영축산은 완전히 다른 모습, 급경사에 높은 암릉들로 이루어져 있고 급하고 강한 위엄과 준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배내골에서 보는 영축산이 그 뒷모습이라면 통도사나 지산마을에서 올라온 영축산은 앞 얼굴인 셈이다.

 

영축산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우리를 반겼다. 2시 10분이다. 푸르게 물든 초원은 산에서 내려가기가 싫을 정도로 마음을 끌었다. 어린 목동이 양떼를 이끌고 멀리서 피리라도 불면서 이 푸른 초원 위로 올 것만 같다. 산은 고요하다. 벌이 이따금 앵앵거리고 새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고 그 속에 꿩 소리가 섞여 든다. 영축산 평원은 아늑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저 멀리 능선을 타고 이곳 영축산으로 올라오는 무리들이 보인다.

 

영축산 정상에 잠시 섰다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저들은 무엇을 보고 가는 것일까. 이 높은 산정에 어렵게 올라와서 잠시 섰다가 가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그토록 긴 시간을 올라와서는 잠시 섰거나 앉았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참 궁금해진다. 저만치 실낱같은 길을 따라 산정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이 좋아 산에 오는 사람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반갑기만 하다.

 

고요하고 높은 이 산정에 오르는 사람들은 고요한 이곳에 올라 몸과 마음을 씻고 가고, 또 산을 마음에 담아가기도 할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 앉아 있고 싶지만 올라 온 거리만큼 또 먼 거리에 험로를 따라 가야 할 길이 멀어 이젠 하산한다. 오후 2시 40분이다.

 

백운암 쪽으로 내려간다. 능선길을 따라 걷는 길에서 순간순간 아찔한 위기의 순간을 만난다. 높고 가파른 암릉 구간이 계속되어 정신이 번쩍 든다. 비로암 갈림길을 지나고 또 능선 길을 따라 걷는다. 계속되는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현기증이 난다.

 
 

방심은 금물이다. 발을 헛딛기라도 한다면 저 끝도 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거대한 암릉 구간이다. 4시 15분 통도사 백운암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재이등 함박등 바로 앞 함박재에서 백운암 가는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턴 내리막길이다. 올라오는 길이 급경사에 그만큼 힘들었다면 내려가는 길 역시 만만찮다. 한번 넘어져서 구르기 시작하면 맨 밑에까지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직각으로 내리뻗은 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몇 번이고 미끄러워 넘어질 뻔한 나는 더 조심조심 걸었다.

 

요즘은 비가 자주 온 탓인지 땅은 아직도 축축하고 높은 경사에 더 미끄러웠다. 백운암에 도착했다. 4시 55분이다. 백운암에서는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먼저 반겼다.

 

 

백운암은 산 높은 곳 고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쉼 없이 계곡이 흐르고 새소리, 바람소리,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판기 커피가 있어 목마른 사슴이 냇물을 만난 듯 나는 반가웠다.

 

이런 높은 산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아주 좋았다. 커피는 무료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었다. 그 맛과 향이 그윽하여 두 잔을 마시고 만다. 넓지 않은 백운암의 깨끗한 마당과 돌담이 운치가 있다. 여기서 마신 커피 맛은 그 향기로 오래 남을 듯하다.

 

백운암을 거쳐 계속되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다시 걷는다. 얼마 동안은 힘든 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넓은 흙길이 나왔다. 점점 길은 완만해지고 넉넉해진다. 백운암으로 해서 내려오니 통도사 경내에 바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극락암을 거쳐 한참을 내려가도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통도사 경내는 아주 넓어서 지친 다리로 끝까지 걷기엔 무리였다. 안되겠다 싶어 지친 다리를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차가 있어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세상에, 차를 타고도 한참을 내려간다. 영취산 문 입구까지 꽤 먼 거리였다. 영취산문 입구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산마을 종점에 겨우 도착했다. 영축산 높은 산봉우리들이 멀리 보이는 지산마을에서 다시 와도 실망치 않을 영축산에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꽉 찬 하루였다.

 

산행수첩

산행기점: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지산마을버스 종점

산행시간: 총 8시간 05분

진행: 통도사산문 위 지산리 지산마을버스종점(10:25)-취서산장(1:05)-조망바위(1:40)-암봉(2:00)-영축산 정상(2:10)-식사후 하산(2:55)-비로암 갈림길(3:00)-암봉(함박등 4:05)-백운암 갈림길(함박재 4:15)-백운암(4:55)-너덜지대(5:30)-비로암.백운암 갈림길(5:55)-극락암(6:05)-통도사 영취산문(6:30)

 

특징: 지산마을 마을버스 종점-영축산 등산로(임도)=급경사

      통도사-극락암-백운암=급경사

      영축산 정상에서 백운암 위 암릉구간=오르막 내리막 능선

 

 


태그:#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