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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이 다 각각이듯이 음식이라는 것도 제 각각이어서 취향도 다르고 호불호가 있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홍어에 대한 취향은 극명하게 갈린다 할 것이다. 사실 홍어가 가지고 있는 냄새가 향기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끌리지 않는 것이지만 애찬론자가 '코가 뻥 뚫리는', '입천장을 델' 정도라고 한다면 '한 번 먹어 볼까?' 하는 호기심도 일어날 터이다.

종로5가 전철역 5번출구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묘목상이 밀집해있는 도로변 첫 번째 골목에 '전통보양음식'이라고 간판을 붙인 음식점을 볼 수 있다. 이곳도 근방의 다른 식당처럼 자그마한 곳인데 쌈밥정식, 고등어조림, 도토리묵밥 등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보인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토끼탕, 꿩탕, 엄나무 닭, 옻나무 닭까지 오면 그제서야 왜 이런 상호를 붙여놓았는지 끄덕여진다.

 종로 5가역 근처는 묘목상, 종묘상, 산악장비점, 약국들이 밀집해 있고 사이사이에 실비집들이 박혀있어 술래잡기하듯 찾아가야 한다.
종로 5가역 근처는 묘목상, 종묘상, 산악장비점, 약국들이 밀집해 있고 사이사이에 실비집들이 박혀있어 술래잡기하듯 찾아가야 한다. ⓒ 이덕은

이 집은 원래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던 곳인데 다른 곳에서는 2인분 아니면 팔지 않는 갈치조림을 1인분도 팔아서 좋은 인상을 가졌던 집이다. 밥을 먹으며 메뉴판을 보니 홍어삼합에 홍어애탕(국)이 있다.

홍어애국은 오래 전 길음시장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홍어를 먹다 곁자리에 앉은 어느 부부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맛에 반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먹은 홍어애국은 도통 그 맛이 나질 않아서 내가 입맛이 변했나 혼자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마침 나와 식성이 비슷한 털털한 지인이 내 병원에 찾아 온 길에 같이 시식해보기로 했다.
김치, 개두릅, 총각김치, 부추무침이 기본으로 차려지고 펄펄 끓는 홍어애국이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숟가락을 집어넣어 휘휘 저으며 식히니 그제서야 내용물이 보이는데 살점이 붙은 뼈, 애(내장), 콩나물이 보인다. 같이 온 지인은 '보리싹이 들어가야 제 맛인데…' 한다.

펄펄 끓는 홍어애국.    그 자체로도 허물이 벗겨질만 한데 끓기까지 하니 성격이 급하신 분들은 주의해야할 듯.
펄펄 끓는 홍어애국. 그 자체로도 허물이 벗겨질만 한데 끓기까지 하니 성격이 급하신 분들은 주의해야할 듯. ⓒ 이덕은

지난 번에 멋모르고 한 수저 입 안에 넣었다가 톡 쏘는 기운에 기침과 함께 입안이 벗겨진 적이 있어 일단 좀 식힌 후 뼈부터 한 점 건진다. 살이 많이 붙진 않았지만, 쏘는 냄새는 삼합보다 더 세다.

보들한 살을 한 점 혀로 문드러뜨리며 국물을 훌훌 불어 한 수저 떠 넣으니 코 막힐 때 박하 향을 맡으면 코가 뚫리는 것처럼 개운해진다. 연이어 추어탕 국물처럼 꺼륵하면서 부드러운 감촉과 구수한 된장 맛이 뒤질세라 뒤쫓아온다. 근무시간만 아니라면 소주 한 잔 털어 넣어 식도 위치를 파악하면 좋을텐데….

메뉴판   저기에 종로구 국회의원 1장짜리 달력이 붙어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메뉴판 저기에 종로구 국회의원 1장짜리 달력이 붙어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 이덕은

홍어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니 창동역 골목에서 4인용 테이블 3개를 놓고 장사하는 작고 허름한 홍어집 주인 아줌마이다. 술 약속한 어느 날 나 혼자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홍어를 시켜놓고 혼자 멀뚱하니 앉아서 먹자니 처량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마침 손님이 없어 아줌마를 술친구 삼아 넋두리를 듣다보니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에 숨은 재주꾼이었다.

고향이 고흥인데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하는지 젊어서 고생한 이야기로 눈시울이 축축해질 만도 한데, 아줌마가 얘기를 하면 배꼽 잡고 자빠질 정도이니 그것만 해도 술맛이 난다. 거기에 기분이 좋아져서 뽁뽁이(손바닥을 서로 겹쳐 소리나게 하는 것을 우리들이 붙인 이름)와 손가락 장단에 맞추어 노래까지 한 가닥 하면 엔돌핀이 최고치로 상승한다.

창동목포홍탁집 삼합차림    이제는 없어진 목포홍탁집. 홍어 먹을때면 구수한 사투리와 뽁뽁이가 생각난다.
창동목포홍탁집 삼합차림 이제는 없어진 목포홍탁집. 홍어 먹을때면 구수한 사투리와 뽁뽁이가 생각난다. ⓒ 이덕은

옆집에서 잡곡밥했다고 가져다 준 밥 한 숟갈에 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서 맛있게 먹으며 혼자 웃어가며 연속극을 보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수더분하고 친근한 촌아낙네여서 더욱 정이 가던 술집이었다.

장사 수완이 없었는지 단골이 되어갈 즈음 문을 닫아버려 요즘처럼 쇠고기 먹기 께름칙할 때 홍어를 찾으면 아줌마의 걸죽한 사투리와 홍어삼합과 동동주가 그리워지곤 한다.

아! 아니다. 반복되는 거짓말에 신물이 나고 무책임에 화가 나고 우이독경에 기가 막힐 때 홍어애국이 소통이 잘되도록 팍팍 뚫어주니 대통령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어애국#종로5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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