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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막내 누님과 만나 "벌써 6월이네요"라며 놀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망종(芒種)도 지나고 단오(端午)입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분들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른 세월에 놀라며 안타까워하겠지만,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이니 겸손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농번기의 최고 절정기인 망종을 전후한 농촌 풍경을 맛깔스럽게 표현한 이문구의 동시 '오뉴월'입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농사일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는데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라는 말들에서 손으로 모 심고 김매던 시절의 농촌이 얼마나 바빴는지 짐작을 해봅니다.  

 

24절기 중에서 아홉 번째인 망종은 말 그대로 까끄라기 종자를 뜻하는데, 보리를 먹게 되고 볏모를 심는 시기를 말합니다. 밥을 굶어가며 소를 몰아 쟁기로 논밭을 갈던 농경사회에서 '보릿고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운동장 잔디밭에서 혁명공약을 외우고 논둑길을 걸어오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풋보리를 꺾어 그을음을 하여 손으로 비벼먹느라 해질녘에야 집에 도착했던 그때가 그립고요. 껌을 만든다며 입가가 하얘지도록 보리를 씹는 친구에게 손가락질하며 웃고 떠들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째보선창에서 쌀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군산시 나포면 철새도래지 ‘십자들녘’에서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농촌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가슴에 담고 있는데요. 강 건너 동네 닭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충청도와 마주한 ‘십자들녘’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손으로 모를 심던 시절의 농민들은,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고 늦게 들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차질 없이 논에 모를 심을 수 있고 밭에도 콩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비라도 내리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를 갓난아기 걱정하듯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앞에 선하네요.  

 

옛날 농부들은 망종을 넘기도록 논에 물이 고여 있으면 1년 농사를 망친 것으로 간주할 정도로 절기에 민감했습니다. 보리타작과 모내기를 마쳐야 하는 때였으니 1년 농사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시기로 생각했을 법합니다. 보리 베기가 늦어지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보리도 바람에 넘어져 수확하기가 어려웠을 터이니까요.

 

특히 논에 심는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라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이때쯤 농촌은 “발등에 오줌 싼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보리수확과 모내기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보리타작이 끝난 논에서 보릿대 태우는 냄새는 구수했고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가득히 솟는 연기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으니까요.  

 

모는 때를 잘 맞춰 심어야 뿌리도 쉽고 튼튼하게 내리고 생생한 연초록빛을 띠며 건강하게 자라는데요.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는 모들이 바람에 넘실대는 풍경이 우리 농촌의 상징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욱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단오'

 

단오(端午)는 우리말로 '고귀하다', '높고 신령스럽다'라는 뜻을 지닌 '수릿날'이라고도 부르며 24절기에 들지는 않지만,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4대 명절로 꼽힙니다. 

 

단오에는 쑥의 일종인 수리취를 짓이겨 멥쌀가루에 넣고 동글납작하게 만든 수리취떡을 해먹기도 합니다. 떡살이 수레바퀴처럼 둥글어 차륜 병이라고도 했는데 절편으로 색깔과 형태가 쑥떡과 비슷합니다. 한방에서 약재로도 쓰이는 수리취는 영양가치가 높아 더위를 막는 단오 음식에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단오는 24절기로 보면 양기가 가장 왕성한 무렵에 해당되고 하루 중의 시간으로 보면 오시에 해당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3월 3일, 5월 5일, 6월 6일, 7월 7일 등 월과 일이 겹치는 날을 양기(陽氣)가 가득 찬 길일로 쳐왔는데, 그 가운데 단오인 5월 5일을 가장 양기가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 명절로 지냈다고 합니다.

 

단오가 되면 남녘에서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씨름·탈춤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겼는데, 추위가 늦게까지 계속되는 북녘은 남녘과 달랐습니다. 북녘이 추석보다 단오를 더 중시해온 것을 생각하면 기후가 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일찍이 우주 만물의 섭리를 깨우친 선조들을 생각하면, 빼빼로 데이(11월 11일)나 삼겹살 먹는 날(3월 3일)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요즘은 3월 3짓 날을 제비가 돌아오는 날보다, 삼겹살 먹는 날이라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다니 예측할 수 없는 세태의 변화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옛날에는 단오에 약초를 캐고 창포를 문에 꽂아두기도 하며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창포주나 약주를 마셔 재액을 예방했다고 합니다. 또 쑥으로 인형이나 호랑이를 만들어 문에 거는 풍습이 있었는데, 약초·창포·쑥 등의 강한 향기로 재액을 쫓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단오를 쇠는 곳이 더러 있어 서쪽 해안지방에서는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등 탈놀이를 하며, 강릉지방에서는 남대천의 넓은 공터에서 단오 굿판이 전승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생전에 "나는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이 되는 것보다, 문화대국이 되는 것을 소원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경제 살리기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오#망종#수릿날#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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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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