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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일)는 일주일 동안 먹을 겉절이를 사러 알뜰시장에 다녀오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나무를 보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탐스럽게 익어가는 파란색, 분홍색 빨간색의 앵두들이 앵두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앵두나무 옆에서 웃음을 머금고 있는 분홍색과 하얀색의 함박꽃은, 철부지 시절 사촌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 ‘병우’의 해맑은 얼굴을 연상시켰습니다. 병우네 집 앞마당 샘가 화단에 어른 키보다 큰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빨갛게 익은 앵두를 따 먹던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앵두나무는 주로 판자로 된 담이나 우물가에 심었는데요. 탐스럽게 익어가는 빨간 앵두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유행가 때문인지 동네 처녀들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는 표현의 영향도 있겠지만, 여름 문턱에 성큼 다가섰으니 시집가는 가을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설렜는지도 모르지요. 

 

사진을 찍으면서 몇 개 따먹어보니 아직 익지 않아서인지 맛이 별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어렸을 때는 새콤달콤한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맛도 맛이지만 친구들과 여럿이 어울려 따먹는 재미가 맛을 돋우었던 것 같습니다. 

 

병우네 집은 공차기를 할 정도로 마당이 넓었고 안채도 크게 지은 기와집이었는데, 기와지붕 사래 끝에 그려진 귀면 그림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무섭다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지요. 그래서인지 그 흉물스런 귀면 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문에서 오른편에는 사랑채가 있고, 왼편에는 병우네 외할아버지 재산목록 1호인 달구지를 끄는 소가 여물도 먹고 잠도 자는 마구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소에게 가까이 가면 왕방울처럼 큰 눈을 꾸벅거리며 하늘을 향해 ‘으~음매~’하고 울었는데, 목에 매달린 종의 딸랑거리는 소리와 하모니가 되어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툇마루를 따라 안채 뒤로 돌아가면 가을에 실컷 따 먹을 포도나무가 있고 초가로 된 뒤채도 있어 옆집에 사는 영철이와 완기를 데리고 자주 놀러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약장사 연극무대에서 마당쇠와 방자, 장쇠 역을 도맡아 했던 같은 반 친구가 뒤채에서 살았기 때문에 더 자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깊은 샘물과 바람이 무척 시원했는데 처마 밑 하얀 회벽에는 제비집이 있었습니다. 대청에 누워 먹이를 잡아 나르느라 바쁜 제비들과 노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새끼들이 그렇게 예쁘고 신기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기와집도 아니고 제비집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 선배가 된 병우와 ‘죽마고우’가 되다

 

저보다 2년 먼저 입학한 병우는 학교 선배가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어느 봄날 만화방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안중근>과 <삼국지> 만화를 권하더라고요. 안중근 의사가 태어났을 때 등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점이 박혔다는 내용과 군수물자를 실은 일본군 열차 폭파, 그리고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에서 희열을 느끼며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제가 철이 들었는지 형으로 불러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네가 형이라고 부르면 절대 만나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어렸을 때처럼 친구로 지내자.’라고 하는 바람에 ‘죽마고우’가 되었지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병우는 부산에 있는 해양대학교 항해 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항해사와 선장을 거쳐 40대 초반에 사법고시만큼이나 어렵다는 파일럿 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병우가 3학년 때인 70년대 초 실습선을 타고 외국의 유명 항구를 견학하고 돌아와 저에게 해준 얘기를 병우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뉴욕의 어느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흑마’ 표 와이셔츠에 붙은 ‘Made in Korea’ 마크를 보고 감격과 함께 전율을 느꼈다는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전남 여수에서 살고 있다고 하던데 확인은 못해봤습니다.  

 

연락이 끊겼다고 해서 코흘리개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까지 단절될 수는 없겠지요. 병우도 저처럼 앵두도 따 먹고, 포도도 따 먹고,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해안가 조선소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니까요.

 

글을 마치면서 생각해보니 올해가 병우 환갑이네요. 연락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소주잔이라도 마주치면서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나누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렸을 때는 환갑이 구만리처럼 느껴져 ‘나도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는 날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인생은 아침이슬 같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오늘도 여수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길잡이를 하느라 머리고생이 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최고의 파일럿 병우의 환갑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마음으로나마 빌어봅니다. 웃고 떠들며 앵두를 따 먹던 그때를 생각하면서요.


태그:#병우,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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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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