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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샀습니다
▲ 한눈에 오래된 무입니다. 남편이 샀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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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에 가면 노점에 채소를 놓고 파는 할머니가 보이고는 합니다. 무심히 지나가는데 노점을 벌인 할머니가 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한무더기에 이천 원이라구, 떨이라 싸니까 좀 사요."

누런 종이상자를 접어 깔고 앉은 체구가 작은 할머니 앞에는 무우가 서너 개씩 무더기 지어져 있는데 한눈에 봐도 오래된 무우들입니다. 무이파리들은커녕 이파리들이 달렸던 흔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구른 것같이 흠집들이며 꺼먹점들 투성이입니다. 보나마나 속이 비었을 것입니다.

줄지어 있는 싱싱한 채소들 사이에서 그런 무우들을 놓고 파는 할머니가 이상해서 나는 한번 더 할머니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도 무우 무더기와 할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 갑니다. 어쩌다가 그런 무우를 놓고 파는 것인지 할머니가 참 딱하다는 눈빛들입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행색은 그리 초라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나는 싱싱한 쪽파 한 단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지나갑니다.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 걸음을 빨리 합니다.

먼저 과일 상점들을 지나왔던 터라 승용차에는 오렌지와 토마토 상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쪽파가 든 비닐봉지를 두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풋고추며 양배추 당근 상추등이 담긴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뒤따라 오던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감대로 남편은 그 할머니 앞에 서 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에게 뭐라고 하다가 나를 쳐다 봅니다. 그 눈빛이 안쓰러워 한달음에 쫓아갔던 기세와 다르게 가만히 남편의 팔을 잡아 당겼습니다. 남편은 꿈쩍도 안 합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속이 상한 나는 할머니가 눈치를 채거나 말거나 더 강하게 남편의 팔을 잡아 당깁니다. 그러나 늦었습니다. 남편의 손가락이 무우 한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걸로 주세요."

할머니가 마른 가지처럼 뻣뻣하고 쭈글한 손으로 얼른 검은 비닐봉지에 무우 한무더기를 주워 담았습니다. 두 무더기가 더 남았습니다.   

남편이 내 얼굴은 쳐다도 안 보고 돈을 내고 무우 봉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나는 약이 오릅니다.

"겉은 그래두 무우 속은 말여 괜찮은 거라구우. 싸게 산 줄이나 알라구우."
"네, 네--"

할머니는 곱지않은 내 눈을 보고 말을 했는데, 남편이 대답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씩씩한 어린이처럼 대답을 합니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으면서 슬슬 내 눈치를 봅니다. 그러다가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무우 속은 괜찮다구 하셨잖아."
"난 안 믿어. 사방팔방 다 봐, 그런 무우가 어딨어?"
"그 어르신은 거짓말 못하실 걸. 눈이 유순하시잖아."
"글쎄 속이 비었다구, 그걸 왜 사!"

나는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다가 그만 둡니다. '눈이 유순하시잖아' 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 남편은 또 그 옛날 어렸을 적에 텃밭을 가꾸던 할머니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부지런도 하셨지만 눈빛이나 마음이 유순해서 이웃들이 모두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언젠가 남편이 말했습니다.

"시금치나 쑥갓 아욱 같은 걸 뽑으면 지스러기들이 많이 나온다구. 할머닌 그걸 하나두 안 버리구 하나 하나 꼼꼼히 흙을 털어 다듬으셨지. '이것두 다 먹어야 해'라구 하시면서. 허리두 아프고 눈도 안좋으신 데 말야."

남편이 할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 파는 야채 노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텃밭머리에 쭈그리고 앉아 지스러기들을 다듬던 그 옛날 할머니의 모습 때문입니다. 지스러기들을 다듬는 할머니의 모습과 싱싱한 시기를 놓친 무우를 싸게 파는 할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남편의 눈에는 같아 보였나 봅니다.

지난 번에 장을 보러 왔을 때는 남편이 시든 시금치를 아주 싼 값에 다섯 단이나 샀습니다. 그 할머니는 초라한 모양새로 시든 시금치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겉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지만 속에 것들은 누렇게 짓물러 있기 마련입니다. 

짓물러 있는 것들을 가려내려면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이거  산 사람이 다듬어야 해'라고 하면서 시든 시금치를 거들떠도 안봤습니다. 내 딴에는 남편이 다시는 이런 시들은 채소를 사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하고 시금치단을 풀더니 짓물러 냄새나는 것들을 가려서 깨끗하게 다듬어 내는 것이었습니다.'이런 거 얼마든지 가져와 봐!' 하는 기세로 말입니다. 

어쨌든 나는 가락시장을 보러 갈 때는 남편과 같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남편이 기를 쓰고 따라 나섭니다. 승용차를 털고 닦고 부산을 떨기까지 합니다. 장을 보러 가서는 슬슬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을 사는 일이 재밌고 즐겁고 사는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무우 손질을 남편에게 떠 맡겼습니다. 남편은 무우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래도 흠집들이며 꺼먹점들은 여전합니다. 아니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나는 부지런히 쪽파를 다듬습니다. 쪽파 길이가 길지도 짧지도 않고 아주 파김치 감으로는 안성맞춤입니다.

"요렇게 예쁘고 싱싱한 걸 사야 파김치가 맛있다구."

나는 약을 올리려고 힘주어 말하면서 무 껍질을 벗기는 남편 쪽을 보았습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껍질을 벗은 무우가 티 하나 없이 말갛고 싱그럽고 얼마나 쏙 빠지게 예쁜지 모릅니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껍질을 벗기자 겉과 달리 깨끗합니다
▲ 껍질을 벗겼습니다. 껍질을 벗기자 겉과 달리 깨끗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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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베어물자 입안 가득 단물이 돌았습니다
▲ 속도 싱싱합니다 한입 베어물자 입안 가득 단물이 돌았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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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기해 하자 남편은 칼로 무우를 쪼갰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무우 속은 더 싱싱합니다. 금방 단물이 흐를 듯합니다. 남편이 한쪽을 베어 먹어 봅니다.

"야아 거 달다 달아!"

그러면서 내게 한쪽을 베어 줍니다. 정말 무우 맛이 달았습니다. 배 맛같은 가을 무우 맛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싱싱하고 달았습니다. 할머니에게 속기는커녕 아주 싸게 샀습니다. 요즘 웬만한 무우는 한 개에 천 원입니다. 무안해진 나는 무우를 어적어적 씹으면서 말했습니다.

"무생채 해도 좋겠네. 자기 무생채 좋아하잖아."
"거 정말 싸게 샀는 걸. 어르신들은 거짓말 안하신다구."

나는 바보같이 히이 웃었습니다. 겉은 그래도 무우 속은 괜찮다고 하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보관을 하였길래 겉과 달리 무우 속이 요렇게 깨끗할까.

"근데 왜 할머니들이 파는 채소들은 시든 것들이 많은가 몰라."
"뭐 안팔리니까 그리 됐겠지."

남은 두 무더기는 어떻게 됐을까. 다 팔렸을까. 잘 팔리지는 않는데 돈은 만들어야 하고 무우는 꺼먹점이 자꾸 생기니 얼마나 애가 타고 힘드셨을까. 시범으로 무우 한 개를 쪼개 속을 보이면서 팔면 금방 모두 팔릴 것 같은데.

나는 다듬은 쪽파들을 양푼에 담아들고 주방으로 갑니다. 뒤에서 전에 없이 양양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 뭐해? 생채두 날더러 하라는 건 아니겠지?"
"건 내가 해야지이이이---"

나는 또 히이 웃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남은 그 두 무더기의 무들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며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금쯤 다 팔렸으면 좋겠는데.  


태그:#오래된 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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