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아침 산책 코스가 있는 계족산(423.6m)
 내 아침 산책 코스가 있는 계족산(423.6m)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날마다 새벽 5시면 아침 산책을 나선다. 늘 정해진 시간에 산책했다는 철학자 칸트처럼은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빠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집 뒤로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계족산(423.6m)이라는 산이 있다. 어찌 보면 귀찮기도 한 산책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상쾌한 기분이다. 각종 식물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이다. 걸음과 걸음 사이, 호흡과 호흡 사이에 생각이 끼어든다. 새벽 숲이 가진 고요함을 내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사색과 통찰이라는 선물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물과 만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냥 산만 타는 것보다 식물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갖추고 가면 산행이 훨씬 즐거운 것이다.

식물은 시시각각 자신을 변혁할 줄 안다. 절대 어제와 똑같은 모습을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익숙한 식물이라도 사람들은 때때로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잎이나 줄기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꽃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식물의 이름이나 존재를 알아챈다.

절화(折花)란  꽃이 가진 생명의 의지를 꺾는 것

번식력이 좋아서 한 번 밭에 퍼지기 시작하면 농사를 다 망친다는 뜻으로 이름 주어진 개망초(皆亡草). 북미 원산 식물이다.
 번식력이 좋아서 한 번 밭에 퍼지기 시작하면 농사를 다 망친다는 뜻으로 이름 주어진 개망초(皆亡草). 북미 원산 식물이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공작이국화, 각시꽃이라고도 부르는 금계국. 북아메리카 남부 원산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돼 버렸다.
 공작이국화, 각시꽃이라고도 부르는 금계국. 북아메리카 남부 원산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돼 버렸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계절이 어느덧 초여름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둘러보면 내 눈을 호사스럽게 해주는 꽃들은 아주 많다. 꽃들을 바라보면서 종종 생각하곤 한다. 꽃이란 무엇인가를. 사전은 꽃의 의미를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꽃의 중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꽃은 암술·수술·꽃잎·꽃받침의 순서로 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암술을 둘러싼 수술과 그 아래 작은 주머니처럼 달린 씨방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꽃의 형태가 더욱 잘 드러난다. 작가 김중만의 <네이키드 소울>이라는 책에 나오는 꽃 사진들을 보면 왜 꽃이 생식기관인지 알 수 있다. 그만큼 고혹적이고 섹시하다.

그러므로 꽃을 가지 채 꺾는 행위인 절화(折花)란  꽃이 가진 생명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꽃꽂이란 얼마나 커다란 인간의 독선인가. 

돌위에서 자라 석상채(石上菜)라고도 보르는 돌나물. 어린 줄기와 잎은 물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돌위에서 자라 석상채(石上菜)라고도 보르는 돌나물. 어린 줄기와 잎은 물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코딱지나물이라고도 부르는 꽃다지.
 코딱지나물이라고도 부르는 꽃다지.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요즘 길가에 피어난 꽃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개망초와 꽃다지다. 꽃다지하면 90년대 노래패 꽃다지가 불렀던 '꽃다지'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꽃다지는 <민들레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수많은 명곡을 탄생 시킨 노래패다.

"그리워도 뒤돌아 보지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아래/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김애영 글 '꽃다지' 부분)"

그리움이란 돌아볼 여유라도 있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호사스런 감정이다.

시절은 하수상하고 세상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떠들썩해도 꽃은 제가 피어날 때를 알아서 어김없이 피어난다. 어느 세월에나 베울 수 있으랴. 저 꽃들의 평상심을 잃지 않는 법을 ….

이름부터 아는 게 사랑 아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뻐꾹채. 원줄기 끝에 홍색빛을 띤 자주색 두상화가 1개가 달린다.
 국화과에 속하는 뻐꾹채. 원줄기 끝에 홍색빛을 띤 자주색 두상화가 1개가 달린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할미꽃. 처음엔 종 모양의 진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나중엔 잘게 갈라져 산발한 여인처럼 변한다. 사진은 할미꽃의 하얀 씨.
 할미꽃. 처음엔 종 모양의 진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나중엔 잘게 갈라져 산발한 여인처럼 변한다. 사진은 할미꽃의 하얀 씨.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에겐 본질보다는 본질을 감싼 껍질에 더 기우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옛 선사들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나?'라고 죽비를 내리쳤겠는가. 이름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껍질을 기억하기 위한 장치이다. 우리에겐 알게 모르게 본질이나 참모습은 뒷전인 채 이름부터 알려고 드는 습성이 있다. 경남 함안에서 과수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배인봉 시인은 그런 행태를 이렇게 꼬집는다.

이름부터 아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장수풍뎅이, 각시붕어, 닭의장풀꽃
사는 법 알면 사랑하게 되는 줄 알았다
아이는 한 송이 풀꽃을 보고
갈길 잊고 앉아 예쁘네 너무 예뻐, 연발한다
이름 몰라도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어루만지지도 못하고 눈빛만 빛내고 있다
사랑은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임을
내게 가르쳐 주고 있다
헛것만 가득한 내게 봄을 열어주고 있다
깨닫느니, 느낌도 없이 이름부터 외우는 것은
아니다, 사랑 아니다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가 닿는 사랑
놀람과 신비와 경이가 나를 막막하게 하는 사랑
아름다움에 빠져 온몸 아프고
너를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때
사랑은 웅숭깊어 지는 것이다
이름도 사랑 속에 또렷이 새겨지는 것이다
 - 배한봉 시 '각인' 전문

분명히 이름부터 아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면서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름부터 아는 것"이란 껍데기만 알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사랑 속에서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야 순서가 맞다는 얘기다.

단조로운 비유를 탈피하기 위하여

운향과에 속하는 백선. 꽃이 난초처럼 아릅답지만 가까이 가면 냄새가 지독하다.
 운향과에 속하는 백선. 꽃이 난초처럼 아릅답지만 가까이 가면 냄새가 지독하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숲 속 약간 깊은 곳을 바라보면 백선이라는 꽃이 피어 있다. 백선은 늦은 봄이면 환상적인 하얀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겉이 아름답다고 해서 속까지 아름더울거라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이것은 삶을 꾸려가는데 있어 진정으로 유익한 정보인가? 아니면 미인을 '독과점'하려는 인간 시장의 음모가 개입된 속담인가.

나는 미인을 한사코 장미꽃 이미지에 묶어두려는 비유의 경직성이 식상하다. 삶이 가진 단조로움과 맹목성마저도 그토록 지겨운데 비유마저 그렇게 단조롭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미인에 대한 비유로부터 장미를 해방시켜주자.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라는 속담 대신 '아름다운 백선에는 악취가 있다"라고 바꾸는 건 어떨까.

물론 모든 식물은 나름대로 고착된 이미지가 있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인동덩굴 꽃, 순수를 잃어버린 나의 표상

덩굴 식물인 참으아리. 으아리는 꽃잎이 없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꽃받침이다.
 덩굴 식물인 참으아리. 으아리는 꽃잎이 없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꽃받침이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꽃이 처음엔 백색이었다가 나중엔 황색으로 되는 까닭에 금은화라고도 부르는 인동덩굴.
 꽃이 처음엔 백색이었다가 나중엔 황색으로 되는 까닭에 금은화라고도 부르는 인동덩굴.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숲길에서는 덩굴식물인 참으아리와 인동덩굴도 만난다. 인동덩굴은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인동덩굴의 인내가 줄기에 스며 있어서일까. 인동덩굴의 줄기를 끓여서 차로 마시면 몹시 쓰다.

난 인동덩굴 꽃을 볼 때마다 의문에 잠기곤 한다. 왜 인동덩굴의 꽃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 가는 것일까. 마치 나이들수록 순수를 잃고 색깔을 덧칠해가는 사람살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윽고 산책을 마칠 즈음이면 난 스스로에게 반문하곤 한다. 넌 삶이 그토록 아득한가. 주변에 골고루 눈길 한 번 줄 시간도 없이. 넌 그렇게 바쁜가. 봐봐. 삶을 누린다는 건 아주 긴 시간이 아닌 '잠시'를 누리는 거야. 그 '잠시'를 놓치면 삶을 누릴 기회를 내버리는 거야.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꽃 한 번 쳐다볼 틈도 없이.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최영미 시 '선운사에서' 부분)"


태그:#산책 , #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