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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5일 한미 쇠고기 업체간 자율협의를 통해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는 쪽으로 미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신 정부는 미국과 쇠고기 재협상은 하지 않고, 30개월 미만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부위 수입 제한이나 검역 주권 등도 아예 협의 내용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통상라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과 추가협의를 진행 중이며, 늦어도 이 번달 안으로 최종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방침은 실효성도 의문이지만,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해 온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정부 스스로 국민 건강권을 미 육류수출업체들에게 맡겨 버렸다는 비판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만 수입제한 협의중"

 

정부 고위 관계자는 5일 오후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 수입 금지를 위해서 미국쪽과 통상라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며, 최종 협의가 마무리되면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 "'재협상'이라는 말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무엇을 얻는 것이 중요하며, 현재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재협상은 없는 것이냐'는 추가 질문에, 그는 짧게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 양국 사이에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재협상은 아니지만 그만한 내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재협상을 통해 수입위생조건 내용 자체를 바꾸는 것보다는 육류업계의 자율적인 협의를 정부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적인 협의는 미국쪽에서 미 쇠고기의 나이를 표시(라벨링)하고, 국내 수입업체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미 수출업체들도 30개월 이상은 수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공식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쪽에서 30개월 미만을 알 수 있도록 표시하고, 수입·수출업자들 자율적으로 30개월 이상에 대해 수입과 수출 중단을 결의하게 되면 국민 입장에선 그동안의 우려가 크게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쇠고기 연령 표시 등도 한시적으로... 법적 구속력도 없어

 

하지만 이같은 민간업자들 사이의 자율적 결의는 말 그대로 '자율'에 따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나 정부가 강제할 수단이 거의 없다.

 

당장은 국민적 반발 여론 때문에 30개월 미만 쇠고기에 대해 나이 표시를 하거나,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 수출과 수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한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운천 장관도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 육류수출업계가 자율적으로 나이 표시를 해서 수출하는 기간이 1년을 넘을지, 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 정부 스스로도 한시적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실제 카길과 타이스푸드 등 미 대형축산업체들은 정부가 예상하는 1년보다 훨씬 적인 120일 동안만 쇠고기의 나이를 구분해 표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개월 이후부터는 월령 구분 표시를 하지 않고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과 수입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양국 업체들끼리 자율적으로 결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가운데 이를 어겨 수출하거나 수입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마땅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1년이 됐든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미 수출업체나, 국내 수입업자가 현행 수입위생고시를 들며,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들여올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 자율 결의를 통해 30개월 이상 미 쇠고기의 국내 유통은 막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그럼에도 나중에 30개월 이상을 들여올 경우에 대비해서는 현재 대책 마련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새 수입위생조건 변경없는 미봉책은 국민 저항만 키울 수도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같은 민간 자율 결의를 통한 미 쇠고기 수입 제한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민변)는 "민간업체들이 자율 협의를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겠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새 수입위생조건 내용 가운데 여러 독소조항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도 "부실하고 졸속으로 쇠고기 협상을 해놓고, 이제와서 정부가 미 육류업계에 애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미 법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데, 언제까지 자신들에게 거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시장을 포기하겠는가"라며, "정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정부가 여전히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전면적인 재협상을 거부한 채 단순히 한미 육류업자들의 자율 의지 결의 내용만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산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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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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