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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높은 기대를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자세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벌써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논란과 '강부자 내각' 시비에 이어 주특기로 내세웠던 경제정책도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졸속 협상에 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민심은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출범 100일 밖에 안 되는 정권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문가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내가 운전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내가 운전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해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6·15, 10·4 선언, 의붓자식 취급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갑자기 부각된 것이 남북기본합의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통일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기본 정신을 우리가 정리해야 한다"라며 "가장 중요한 남북정신은 1991년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이 서로 만나서 얘기하는데 나도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어쩌면 새 정부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더 적극적일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나온 이 대통령의 말 "과거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지난 100일 동안 현 정부 통일·외교 정책을 관통하는 '정신'이자 거의 '유일한 정책'이다. 보수 정권이었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나온 남북기본합의서가 제일 중요하게 되면서 이른바 좌파 정권에서 탄생한 6·15와 10·4 선언은 의붓자식 취급을 받게 됐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 정책을 완전히 부정하면서 나온 말 ABC(Anything But Clinton : 클린턴이 한 것만 아니면 다 좋다) 정책에 빗대 ABR(Anything But 노무현) 또는 ABKR (Anything But 김대중·노무현) 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북미 관계는 순조로운데 남북 대화는 끊겨

 

결과적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의 '과거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별 성과가 없다. 북미 관계는 순조로운데 남북 대화는 끊겼다. 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남한은 줄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 형국이 됐다. 

 

이 대통령의 가장 핵심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대해 북한이 "민족의 이익을 외세에 팔아먹고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며 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반통일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혜택을 받을 당사자가 싫다는데 비핵·개방 3000구상이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을 복원했다고 자랑했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역시 캠프데이비드의 숙박료는 비쌌다"는 비아냥거림이 보수진영 안에서도 나올 지경이 됐다.

 

일본 방문 때는 "나는 일본에 대해 만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라며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선언했으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본에 뒤통수 맞았다"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난주 중국 방문 때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한미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라는 발언에 신정승 주중 대사의 신임장 제정 지연 사건까지 터지면서 '푸대접' 논란이 일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전략이 없다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라며 "비핵·개방 3000구상은 북한이 반발하고 있고, 준비 없이 서두른 미국·일본·중국과의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 자신부터 관심이 부족하고 통일·외교·국방·국정원 등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일종의 코디네이터(조정자)가 안 보인다"라며 "과거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이런 구실을 했는데 지금은 없다, 통일부가 지나치게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본 지식이 없다는 것은 맨 앞에서 인용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난다. 이 대통령 말대로라면 남북기본합의서는 6·15나 10·4 선언과는 그 정신이 전혀 다른 문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탄생의 산파'라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지적했듯이 이 문서는 노태우 정부가 '점진적 변화론'에 입각해 대북 포용정책을 채택하고, '선 북핵문제 해결'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병행하여 해결한다는 '병행전략'을 채택한 결과물이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물론이고 상당수 보수진영 인사들은 남북기본합의서는 선 북핵폐기론에 입각한 문서고 6·15와 10·4 선언은 병행론에 입각한 문서인 양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연 20% 성장해야 가능한 비핵·개방 3000구상

 

구체성 역시 문제다. 비핵·개방 3000구상의 경우 궁극적 '목표'인 북한 핵 폐기를 '전제'로 설정해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원천적으로 남북관계를 진행하기 힘들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2일 참여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비핵·개방·3000 구상은 '선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이는 9·19공동성명이나 2·13합의 등에서 '동시행동 원칙'에 기반을 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현재 북한의 1인당 GNI는 300달러다. 10년 안에 3000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연간 성장률이 20%가 넘어야 한다. 1970년대 고도성장을 했던 한국이나 90년대 높은 성장을 한 중국을 봐도 20%대 성장률이 나온 전례가 없다.

 

"지난 정권처럼 찔끔찔금 주는 게 아니라 조건만 맞으면 화끈하게 지원하기 때문에 되레 북한도 뒤로는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라고 하던 비핵·개방 3000구상은 구체성이나 현실성 없는 구호성 공약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두른 3강외교 성과보다 부작용 커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27일 오후 인민대회당 접대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27일 오후 인민대회당 접대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초기 야심있게 추진했던 4강 외교도 비슷하다. 취임 3개월 만에 러시아를 제외한 한반도 주변 3강과 정상회담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급박하게 추진하다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쇠고기 파동으로 완전히 덮여버리게 된 한미 정상회담, 독도 문제로 엉뚱하게 번진 한일 정상회담은 차치하고라도 5월 27~30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심각하게 볼 점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복원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주요 목표였다. 그리고 청와대는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승격시켰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구호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주장환 동서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서 한·미·일 관계 심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하고 우리 외교정책에 대해 중국의 동의를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적이었다"라며 "그렇다면 핵심 가운데 하나가 대북정책인데 중국측으로부터 '이해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쳤고, 되레 '남북화합과 협력이 진전을 이룰 것을 기대한다' '대화협상의 방식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몇몇 '레토릭'으로 주변국의 불신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라며 "따라서 미국 편승 정책이 가져올 실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더 유연한 실용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방문 일정을 잡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 방문 때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일정이 겹쳤다. 이번 중국 방문 때는 우보슝 대만 국민당 주석과 일정이 겹쳤다.

 

아무리 실무적으로 잡힌 일정이라고 해도 해당 당국자들의 대책없는 아마추어리즘은 비판받을 만하다. 마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할 때 다른 나라 국가 원수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용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이념'에 불과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과거 10년동안 남북관계뿐 아니라 한미관계도 이념으로 덧칠됐다고 공격하면서 '실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100일간 이명박 정부가 통일·외교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용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이념'에 불과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등에서는 국민의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명박 정부가 정작 장기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 할 남북관계는 '국민 합의'를 내세우다가 미국이 대북 식량 50만t 지원을 결정하자 부랴부랴 옥수수 5만t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청개구리'와 비슷하다는 조롱을 받을 만하다.

 

 4월 21일 방일중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일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4월 21일 방일중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일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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