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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장마'를 기다리는 것일까?

 

정부가 미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요청하는 등 '광우병 쇠고기' 파동 수습에 나섰지만, 촛불시위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당초 9일로 예정돼 있던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무기한 연기하는 한편 말만 무성했던 국정쇄신책의 폭과 시기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여 '시간 끌기'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들끓고 있는 민심이 한 풀 꺾일 때까지 기다리렸다가 다음 '카드'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5~7일을 '국민 집중행동의 날'로 정하고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72시간 철야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또 6월항쟁 기념일인 10일에는 시민 100만명 참여를 목표로 전국에서 '촛불대행진'을 열 계획이다. 이번 주 들어 내린 비로 시위대의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촛불은 전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심기일전"하자던 이 대통령, 국회 핑계로 '국민과의 대화' 연기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발표된 3일 저녁에도 서울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 4만여명이 참가한 촛불문화제와 가두시위가 계속됐다. 서울에서는 2만여명의 시민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여했고, 이들 중 일부는 4일 새벽까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그래서일까?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비서관 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참석자들의 얘기를 듣기만 할 뿐 눈에 띄게 말수가 없었다. 비서관들로부터 언론에서 지적했던 여러가지 얘기들을 듣고 있던 이 대통령이 한 말은 "심기일전하자"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오는 9일 TV 생중계로 예정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연기한다는 것. 이동관 대변인은 "원래 '국민과의 대화'를 취임 100일이 되는 3일에 하려다 국회 개원연설이 5일이어서 일정을 뒤로 미뤘다"며 "그런데 국회 개원 협상도 불투명하고, 언제 열릴지 몰라서 다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청사진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친 뒤에 '국민과의 대화'를 하려는 게 당초의 계획이었다"는 것이 이 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당초 '국민과의 대화'를 하겠다고 비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달 20일경이었다. 야권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추진하는 등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정치권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터라, 이미 6월 초 국회 개원 일정이 불투명했다. 특히 청와대는 '국민과의 대화' 앞에 '취임 100일 기념'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국회 일정보다 취임 100일에 초점을 맞춘 행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국회 개원 일정을 문제삼아 '국민과의 대화' 일정을 연기한 것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국민과의 대화'를 언제까지 연기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등이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장외투쟁에 나섰기 때문에 국회 개원 일정이 불확실한데도, "국회 개원 연설 뒤에 하는 게 온당한 순서"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쇄신안 발표 시점도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대변인은 "'국민과의 대화'는 국정쇄신안 발표와 연동된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국정쇄신안도 발표하지 않은 채 국민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발상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연기한 것은 마땅한 정국 수습책을 찾지 못한 가운데, 이 대통령이 등돌린 국민들과 직접 공개 토론에 나섰다가 '낭패'를 볼 것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단 들끓는 민심이 잦아들 때를 기다려보자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국민들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 있기 때문에 어떤 처방전을 내놔도 안 먹힌다"며 "수습안은 상황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 때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마지막 카드를 내놓고도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게 된다면 이후에는 속수무책이 되기 때문에 쇄신안 발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방향조차 못잡은 국정쇄신책... "이 대통령이 장마를 기다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정쇄신책의 핵심인 인적쇄신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전면적이고 대폭적인 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스타일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노출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쓰던 사람을 막 쉽게 바꾸고 그러진 않는다"며 "(서울시장 재직 시절) 교통체제 개편할 때 생각해 보라. 처음에 불편하다고 여기저기서 책임자를 사퇴시키라고 했는데도 안 시켰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렇다고 일체 (인적쇄신) 계획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언론에 거론되듯이 일괄사표나 조각 수준의 개각이 이뤄질 것이란 보도는 너무 앞서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쇄신'이라는 게 사람을 정리하는 것이라면, 그 상황의 가장 마지막에 되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인적쇄신으로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수습되면 소폭의 인사조치 내지는 조직 정비안을 내놓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인사 문제라는 여당의 지적조차 개의치 않는 행보다.

 

국정쇄신안 발표 시점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이번주는 내일 밖에 안 남았다. 그 뒤에는 휴일 아니냐"며 "지난번 (이 대통령의) 말씀처럼 각계 원로들 만나서 의견 수렴도 필요하고…"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강재섭 대표의 요청에 '마지못해' 수용한 원로들과의 회동은 아직 계획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정부의 '쇠고기 자율규제' 요청에 대한 미국 측의 부정적인 반응과 국민들의 불신 여론에 대해서도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3일)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재협상 불가 발언에 대해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결과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재협상'이라는) 단어에 매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질적인 위험이 제거돼서, 국민들의 우려가 정리될 수 있다면 당연히 납득할 수 있으리라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자율규제' 요청은 지난 2일 미국 쇠고기 생산업체들이 한국에 수출하는 쇠고기에 대해 당분간 '30개월령 초과 여부를 표시하는 라벨'을 붙이기로 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검역 주권 등 강제력을 가질 수도 없고, 미국측에 요청하겠다는 것도 사실상 미국 업자들이 이미 밝힌 내용의 재탕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율규제'가 이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한미FTA'를 위반한 편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청와대로서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을 들고나와 오히려 미국과의 통상마찰 우려와 함께 국민들로부터 불신까지 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속수무책' 상황에 놓인 청와대가 하늘만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촛불시위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어제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이) 1만명으로 파악됐다. 전전날은 훨씬 많지 않았느냐"며 "내일도 한 번 보자"고 말했다. 최근 촛불 시위대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 은근히 기대감을 나타낸 셈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장마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탓이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광우병 쇠고기, #국민과의 대화,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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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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