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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의 섬 여행…. 왠지 문명과는 멀어지고, 단절된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별 것 아닌데도 섬으로 들어가는 첫 느낌은 요란스럽습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라는 행정구역명을 가지고 있는 삽시도… 이번 섬 여행의 첫 여정은 삽시도입니다.

 

5월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도착한 대천은 아직까지 안개가 자욱합니다. 맑은 날씨에 점점히 흩뿌려진 듯한 안개는 도시 전체를 묘한 색감에 빠뜨립니다. 사방의 시야를 막아 답답한 느낌이 드는 안개 속 도시 대천에서는 삽시도로 떠나는 배편이 출발 30분 전인데도 출항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의 첫 배는 이미 결항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삽시도로 떠나는 두번째 배는 출항했고, 40여분 남짓만에 삽시도 술뚱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삽시도를 둘러보기 앞서 삽시도 안내표지판 앞에 섰습니다. 충남 앞바다에 떠 있는 섬중 안면도와 원산도에 이어 3.8㎢의 세번째로 큰 섬이며, 섬의 모양이 마치  화살이 꽂힌 활의 모양과 같다하여 붙여진 섬입니다.

 

안내표지판에는 토속적인 섬의 지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114m로 삽시도에서 가장 높은 붕구뎅이산, 고기 이름 같은 차돌백이산도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지명은 술뚱입니다. 술뚱은 파도에 의해서 모래와 자갈 등이 밀려와 육지가 된 지역으로 여기서 유래된 지명이라 하는데 선뜻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삽시도에는 당너머(집너머), 거멀너머, 밤섬 해수욕장 등의 세 군데의 큰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삽시도는 차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섬입니다. 딱히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도, 안가져가기도 뭐한 '계륵(鷄肋)'같습니다. 좀 더 여유롭게 섬을 둘러보기 위해서라면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게 나을 듯 싶습니다. 삽시도 서쪽을 바라고 술뚱 선착장을 떠났습니다. 농사를 짓는 바쁜 일상이 펼쳐 집니다. 작은 섬인데도 모내기를 끝낸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은 풍경입니다.

 

서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짙은 해무가 논 위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입니다. 해무와 함께 비옷을 걸쳐입은 허수아비도 덩달아 춤을 춥니다. 심어진 모들도 뒤질세라 가녀린 몸을 파르르 떨어가며 춤판을 거듭니다. 사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어촌 속에 비친 농촌의 풍경은 사뭇 특이하기만 합니다.

 

태창민박이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 숲 아래로 제법 넓은 해변이 나타납니다. 서편 바다로부터 소나무 숲을 스치며 해무가 소리없이 밀려듭니다. 자욱한 해무는 경이로움을 너머 외경심까지 들게 합니다. 소나무 숲 아래의 당너머 해변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합니다. 저 멀리서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소리가 들리지만 바다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눅눅한 느낌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흐릅니다. 밤새 파도와 함께 일렁이던 흔적이 발 아래로 가득합니다. 파도가 다녀갔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바라고 천천히 다가가는 사람들은 정적에 휩싸여 있습니다. 해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발자국 소리뿐 입니다. 당너머 해변에는 앞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미스테리한 풍경만이 가득합니다.

 

거멀너머 해수욕장은 당너머 해수욕장과 이웃해 있습니다. 거친 바위군락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해변의 1.5km정도 되는 거멀너머 해수욕장 역시 당너머 해수욕장처럼 길고 완만한 해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송림도 제법 인상적입니다. 송림은 마치 사람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는 듯 합니다. 마치 밀려오는 파도를 두 팔 가득 포근히 안아주는 것처럼….

 

인적 드문 해변의 주인은 작은 바다 게들입니다. 물빠진 고운 해변 위에는 파도가 만들어낸 자신의 흔적과 함께 게들의 흔적이 요란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작은 몸짓으로 구멍을 내고, 파낸 흙을 가슴으로 안아 바깥에 던져 둡니다. 마실을 다녀갔는지 구멍과 구멍사이에는 발빠른 옆 걸음질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낯선 이방인에 놀랐는지 녀석들은 구멍 깊숙히 몸을 숨기고 거대한 발걸음이 멀어져 가기만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발아래의 미묘한 생명의 몸짓을 짓밟기 미안해 구멍들을 피해 저만치 휘돌아 갑니다.

 

마침 해무가 서서히 걷히고, 해변의 윤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구름도 멋지게 펼쳐 집니다. 오랫만에 햇빛을 머금은 해변은 서서히 밝은 느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해무는 전투에서 패해 물러가는 적군들처럼 스멀스멀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공중에서 모습을 감춥니다. 이제서야 삽시도 해변은 제 모습을 찾은 듯 합니다.

 

당너머, 거멀너머 해변에서 남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붕구뎅이산 너머에는 밤섬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삽시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남쪽으로 툭 튀어나온 모습이 밤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연하게도 밤섬 해수욕장 내려가는 길에 밤을 하나 주웠는데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밤섬을 이렇게 알려주는구나'하고….

 

해변에는 몇 분이 호미로 무언가 열심히 잡고 있습니다. 다가가 여쭤보니 바지락을 잡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날렵한 호미질에 파헤쳐진 모래밭 속에서 어김없이 조개가 딸려 나옵니다. 처음 자리잡기 시작해서 벌써 두 시간째 작업중이시라며 그새 한번도 뒤를 안돌아보셨던지 뒤돌아 보시며 멋적어 하십니다. 큼지막한 바지락을 손에 한가득 담아 보여주십니다.

 

시간날 때마다 해변에서 바지락을 잡으신다고 하는데 칠순이 넘은 어르신의 모습에는 삶의 여유가 잔잔히 묻어 납니다. 이제는 가야한다며 바지락이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반대편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르신의 뒷모습 뒤로는 두 시간여의 자취가 길게 남아 있습니다. 두시간이면 참 긴 시간이었는데, 과연 어르신의 시간은 어떨까? 던져진 질문 다 받아주시고, 멀찌기 떨어진 바닷가까지가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시는 너그러운 마음과 얼굴에 비쳐진 넉넉한 미소는 칠십 평생에서 얻은 가장 행복한 교훈이 아닐까요?

 

이른 아침, 사방은 또다시 안개로 가득합니다. 안개 가득한 주변은 몽환적인 느낌이 절로 밀려듭니다. 이제는 안개가 던져주는 어떤 느낌보다는 오늘 삽시도를 못떠날 수 있다는 현실이 앞섭니다. '오늘 못나가면 내일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잡을 때 즈음  삽시도의 몽환적인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었습니다.

 

어제 밀려드는 바닷물로 밤섬 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들르지 못했던 물망터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면삽지를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면삽지는 썰물때면 자갈길로 삽시도와 이어지고, 밀물이면 외딴 섬이 되는 곳입니다. 절경이 뛰어난 곳이라고 들었는데,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고 합니다. 밀물 때라 당너머 해수욕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웠고, 삽시도에서 가장 높은 붕구뎅이 산을 넘다가 아래로 나있는 산길을 이용해야 하기로 했습니다.

 

붕구뎅이산은 개발의 흔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숲을 밀어내고 거친 자갈길이 나 있습니다. 파헤쳐진 나무들을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간신히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을 피한 나무들은 깊은 뿌리를 드러낸 채 가뿐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아 보입니다. 면삽지와 가까운 해변으로 내려갔건만 역시 물때가 맞지 않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는 모래로 이뤄진 해변으로 파도가 찰랑거립니다. 마치 파도가 스크럼을 짜고 진입을 못하게 막고 있는 듯 합니다.

 

민박집에서 준비해준 따뜻한 밥 한끼의 점심에는 아주머니의 정성이 가득합니다. 아구로 끓여낸 맛깔스런 아구탕과 횟감으로 널리 알려진 놀래미로 만든 생선구이로 밥 한 공기가 금새 뚝딱 비워집니다. 다행히 안개가 많이 걷혔는지 대천에서 배가 출항을 했고, 원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정보 : 
대천항 여객선 시간 및 운임  
대천항-삽시도 7:30, 12:30, 16:00  

운행요금  
대천항-삽시도/9,550원  

차량 선적 가능합니다.  
기상 상태에 따라 출항안될 수도 있습니다.  
대천항에서 호도,녹도,외연도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8:10, 14:00)

추천민박 : 
당너머해수욕장 입구 태창민박(041-932-6925)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삽시도#당너머해수욕장#거멀너머해수욕장#밤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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