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리스 아테네의 언덕위에 있어야 할 파르테논 신전이 생뚱 맞게 영국에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언덕위에 있어야 할 파르테논 신전이 생뚱 맞게 영국에 있다.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원래는 그리스 아테네의 언덕 위에 있어야 할 파르테논 신전의 석조물들이 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엘긴이라는 영국의 터키 대사가 당시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석조물들을 수년에 거쳐 실어다 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조각품들을 엘긴의 이름을 따서 '엘긴마블'이라고 하며, 그런 식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의 문화재를 털어오는 행위를 '엘기니즘'이라고 한단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박물관 내부에서 팔고 있는 책자, 기특하게도 6파운드짜리 한국어판도 준비해 두신 그 책자에는, 자국민들이 자기네 나라에 이 거대한 도둑놈 소굴이 있다고 캥겨 할까 봐서인지, 딴에는 오밀조밀한 논리를 들어가며 도둑질의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다.

왜 남의 나라 유물들을 자기네가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질구질한 변명을 볼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귀두컷으로 인하여 금번에 한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 구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안내 책자. 왜 남의 나라 유물들을 자기네가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질구질한 변명을 볼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귀두컷으로 인하여 금번에 한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그 이유라는 것이 첫째로, 대영박물관은 단순히 영국 박물관이 아니라, 전 인류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세계의 박물관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식민지 사업을 벌이던 제국시대의 관점으로는 남의 문화재들을 빼앗아 오는 일이 합법적이었단다. 마지막으로는, 잘나신 자기네가 고이고이 모셔 두고 있는 문화재를, 제대로 보관할 능력이 없는 원소유국에게 반환된다면 파손될 우려가 크단다. 오직 자신들만이 최적의 조건에서 완벽하게 문화재들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저히 못 내놓겠단다.

문화재란 그 고유의 환경에 자리 잡고 있을 때 가장 가치를 발한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전체 인류의 업적을 보여주기 위한 세계의 박물관이라는 것이 꼭 잘 나가는 서양의 몇몇 국가에만 편중되어 있는 것도 웃긴 일이다. 또 그때 당시에 합법적이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뀐 지금도 오만한 민족 우월주의가 유효하다는 것은 당시의 강자침략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제국주의적 판단이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계박물관을 표방한다면, 대영박물관 지하창고에서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지 않는 고려청자 100점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문화재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나 이집트가 그때 당시에나 힘이 없어서 문화재를 빼앗겼다지만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 그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할 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리라는 증거도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원래의 소유국이 문화재를 관리할 형편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가 나설 일이지 영국이 배포를 부릴 일은 아니지 않나. 일본이 커다란 박물관을 지어서 이름을 욱일승천대박물관 비슷한 식으로 붙여놓고, 그 안에 고려청자나 신라금관 같은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면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닐 것만은 확실하다.

박물관 외부 중앙홀의 매점
 박물관 외부 중앙홀의 매점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디카 하나 잃어버려도 기분이 확 상하는데...

문화재라는 것은 단순히 '값 비싼 보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근본이고 뿌리이며, 우리가 뭘 먹고 커온 사람들인지 알게 해 주는 역사의 증거물이다. 여행 중에 20만 원짜리 디지털 카메라만 잃어 버려도 기분이 꽤 오랫동안 상한다. 하물며 돈 주고도 살 수 없고 다시 만들 수도 없는 이런 민족 혼을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문화재의 반환은 또한, 우리 다음 세대와도 직결된다. 지금 우리가 조상에게 물려 받은 '자연'뿐만이 아니라, 조상의 삶이 녹아 있는 '문화재'의 올바른 보존과 관리를 위해 노력해 왔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또 마땅히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렇게 보존하고, 알아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 찾아본 내용이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전쟁통에 서로 훔쳐간 문화재를 반환하자는 합의가 있기는 했다. 그것도 바로 대영박물관이 있는 런던에서. 다만 식민지들을 제외한 유럽 내부 국가들만의 합의여서 결국은 강대국끼리의 원상복구에 불과했다는 게 문제다.

유네스코나 유니드로처럼, 도난된 문화재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기구나 조약도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라는 것도 결국은 강대국, 다시 말해 문화재를 점유한 국가들이 보다 큰 발언권을 가진 경우가 많고, 기껏 공정하다 싶은 협의가 있어도 강제력이라는 게 별로 없어서 그다지 효과는 없다.

결국 해결할 구석은 각각의 나라가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교섭을 통해 반납 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윤리라는 잣대가 통할 여지란 단 한 톨도 없이 온갖 집단 이기주의가 횡행하는 것이 국가간의 이해관계다. 그러니 '남의 물건을 함부러 가져간 건 나쁜 일이니 돌려줘라'는 유치원생들에게나 가르쳐야 할 말이 외무고시도 합격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결국 알력 싸움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사람이 죽고 나서도 영혼이 나중에 육신을 필요로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미라를 만들었댄다.
 고대 이집트에는, 사람이 죽고 나서도 영혼이 나중에 육신을 필요로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미라를 만들었댄다.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KTX와 외규장각 도서

대영박물관의 일은 아니지만 KTX와 외규장각 도서라는, 다시는 생기지 말아야 할 좋은 전례가 있다. 우리가 과거에 KTX 노선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자, 프랑스는 열차기종으로 자신들의 고속철도인 떼제베를 채택하면 기술 이전은 물론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 흘러 와서 루브르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도서들을 반납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책 한 권을 직접 돌려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작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며 떼제베를 들여오니, 프랑스 측에서는 서책의 반환을 고사해 버리고 한국의 다른 문화재와 교환을 하자는 뻔뻔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

게다가 이런 내용을 알게 된 루브르박물관의 담당 사서가 "고귀한 문화재를 아시아의 미개한 나라에 넘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울며 불며 사표를 썼다는데, 그 미개한 나라가 만든 게 그 책이라는 걸 과연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이 관용의 나라 프랑스는 여기에 개인의 뜻을 국가가 어찌 할 수 없다라는 핑계를 대면서 기어이 책들을 '먹어' 버렸다.

거기에 KTX의 기술지원이라는 것도 불성실하기 그지 없었고, 불평등 계약이 체결되어 매년 엄청난 액수의 세금이 프랑스에 지불되고 있단다. 한국 정부가 멋지게 사기를 당한 꼴이다.

모르긴 해도 그리스나 이집트도, 영국 쪽에 유물들의 반납을 주장했다가, 비슷한 방법으로 사기도 당하고 무안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이집트나 우리나, 후손으로서 잘 간직하기 위해 물려 받은 유산을 깡패들에게 빼앗겨서 되찾지 못하고 있으니 조상님 뵐 면목이 없는 입장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어느 대갓집 복 같은 고양이 새끼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집트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던 여러 동물들 가운데는 고양이도 포함되어 있어서 죽은 지 몇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
▲ 고양이 미라 어느 대갓집 복 같은 고양이 새끼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집트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던 여러 동물들 가운데는 고양이도 포함되어 있어서 죽은 지 몇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나라가 힘이 없어서 그렇다. 만일 우리가 일본처럼 돈이 많았다면, 아니면 중국처럼 머릿수라도 많았다면, 그래서 '자꾸 까불면 재미 없다. 국교 단절하고 싶냐. 시범 케이스로 월드컵 때 지단 다리가 날아가는 수가 있다'하는 식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과연 프랑스가 감히 외규장각도서를 꿀꺽할 수 있었을까.

힘 있는자의 횡포에 '저 나쁜놈들'하고 이만 갈아 봐야 그다지 이득 될 일이 없다. 조상과 후손들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도리를 다 하려면 강해져야 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동차 수입할 테니 고려청자 돌려주세요" 하고 구차하게 구는 장면 보다는, 상대방과 대등한 국력을 바탕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쪽이 훨씬 보기 좋을 듯싶다.

그렇게 힘을 길러야 할 필요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하지만 어떻게 힘을 길러야 할지를 고민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 섰다.

영국박물관 내부의 또 다른 상징, 영국도서관
 영국박물관 내부의 또 다른 상징, 영국도서관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lrclub, 쁘리띠님의 떠나볼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은 지난 2006년 6월~8월에 다녀왔습니다.



태그:#가짜시인, #유럽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