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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으뜸가는 한 마디가 시위대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거기에는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 하는 대한민국의 주인들이 있었다. 아저씨들은 '광야에서'를, 아이들은 '애국가'와 '헌법1조'를 노래했다. 부르는 노래는 저마다 다르지만 광장에 모인 이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순정으로 모였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진영과 조중동은 모두 오판했다. 국민이 느끼는 문제는 단순히 광우병 공포 때문이 아니요, 대운하 때문이 아니요, 경제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소중한 민주주의의 위협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독재정권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80년대의 낭만으로 치부될 모습이 아니다. 국민들이 현 정권을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독재정권이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구호가 마냥 과장된 것만은 않아 보인다. '쇠고기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흐리멍텅한 모습은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온 국민의 넋을 빼놓았다.
 
정부는 국민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고, 마침내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무반응의 차원을 훌쩍 넘어, 촛불집회를 두고 "반정부 세력과 좌익세력의 괴담선동"을 운운하고 "배후세력을 밝혀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1만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발언했다는 소식은 과연 CEO 출신 대통령이라는 서글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분노가 극에 다다른 민심을 따지기 전에 촛불 1만 개의 자금 출처부터 확인하라니, 역시 경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인 듯싶다.

 

약 3개월 전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꼭 살리겠다" 약속했고 국민은 "경제를 꼭 살려라" 화답했다. 그리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경제 살리라는 뜻이 민주주의를 죽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늘날에 '불도저 정신'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불도저를 폐차시키자"는 험한 농담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로 스스로를 지칭하지만 국민은 '직원'이 아니라 '주인'이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강아무개(42)씨는 "온 가족을 다 데리고 나왔다. 지켜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나왔다.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전혀 안 듣고 있다. 대선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탄식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념의 시대를 넘자고 했지만 실용주의와 시장주의 역시 하나의 이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무엇보다 국익을 우선한다고 했다. 그 '국익'은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 미국 순방 뒤 "효과적, 실용적, 성공적 경제외교 했다"고 자평하는 모습을 보니 '국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공인가 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을 위한 '국익'은 아닌 것만 같다. 비단 외교뿐만 아니라 최근 내놓는 일련의 시장주의 정책들은 서민들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들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국익'이란 '그들만의 국익'이다.

 

정부가 말하길 다 잘됐다는데, 국민들은 무엇이 잘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국민들은 '국익'이며 '경제'며 '실용'이며 하는 뻔지르르한 허울을 꿰뚫어보고 있다. 더 이상 국익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억누를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이제 정부는 국민에게 방패와 진압봉, 물대포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진압은 불씨를 더 키울 뿐, 결코 꺼뜨리지 못한다. 지금 정부의 억압적 대응은 국민들의 소양과 의식을 무시하는 행사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피눈물 어린 항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배우고 기억한 이들이다. 더 이상 국민들은 속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세종로 사거리를 중고생들이 행진했다. 기나긴 행렬에 입이 헤 벌어질 지경이다. 옛날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다. 그 당당한 모습에 어른들이 부끄럽다.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떳떳한 국민이다. 촛불을 든 아이들은 주권을 행사하러 나왔으니 더없이 온당하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단속'할 자격이 없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민주주의를 스스로 배우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아이들의 촛불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다.

 

이번 촛불시위는 '민주주의의 행진'이다. 이를 폭력시위, 불법시위라 비난하고 강제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진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외형을 핑계대어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다. 국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연대한 이번 촛불시위는 온전하게 민주적이다.

 

여기에는 좌익도 우익도 배후세력도 운동권도 없다. 오직 대한민국의 주인들이 있을 뿐이다. 소녀가 든 촛불이 국민의 뜻이다. 국민을 저버리는 나라는 이미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누가 촛불을 가로막는가. 누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가.


태그:#촛불시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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