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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화백 삽화 '삽질의 달인'
 김용민 화백 삽화 '삽질의 달인'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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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수상하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때부터 조짐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래도 나라를 이렇게까지 도륙낼 줄을 몰랐다.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그들의 손에 들린 촛불은 새로운 '희망찾기'와 다르지 않다.

작가 22명이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주부, 아저씨,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다 나섰다.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은 이명박 정부 사람들 밖에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이다.

취임 100일째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 대박이려니 했던 그의 지지율은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쪽박을 찼다. 100일 잔치를 거하게 하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왕 준비된 잔치,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게 것 같아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는 것이다.

잔치상에 사람들이 좋아할 이런 저런 메뉴를 올려 놓으라고 지시했지만, 그 메뉴를 접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이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작가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100일 잔치상에 올려 놓을 책 하나를 만들었다.

작가 22명이 석달 전부터 준비한 선물은 책 <초중딩도 뿔났다>(화남 펴냄). 이 책은 22명의 작가들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진 일들을 촌철살인의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 정치 풍자 콩트집이다.

김용민 화백 삽화 '실용이 별건가?'
 김용민 화백 삽화 '실용이 별건가?'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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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암울한 시기엔 어김없이 등장한 정치 풍자 콩트집. 대한민국에선 1988년 전두환 정권을 일갈한 이후 무려 20년만의 일이다. 작가들이 다시 정권의 심장을 향해 펜을 겨눈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방증.

해학과 촌철살인의 필치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풍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지나가는 개의 입에서까지 나오는 세상이고 보니 이 땅의 작가들이라고 무신경하게 살아갈 수만은 없었다. 시인 작가들은 학생들이 촛불을 들기 훨씬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뜰 수 있는 일을 착착 해왔다.

그 결과물이 203명의 시인이 참여해 얼마 전 펴낸 대운하 반대 시집 <그냥 놔두라, 쓰라린 백년 소원 이것이다>(화남 펴냄)와 작가 22명이 참여한 정치 풍자 콩트집 <초중딩도 뿔났다>(화남 펴냄)이다.

초중딩도 뿔났다!
▲ 책 표지 초중딩도 뿔났다!
ⓒ 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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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하고는 한쪽 눈을 감았다 뜬다. 작은아이가 눈치 빠르게 이 기자 옷소매를 붙잡는다. 아내는 마지못한 듯 따라 나온다.

가까이에서 장구와 꽹과리 소리가 들려온다. 큰길에 나가보니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는 가운데 머리에 띠를 두른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수막이 너덜거리고 걸개그림에는 성난 황소가 콧김을 뿜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 광우병이 웬 말이냐, 국민건강 무너진다
 ― 한우 농가 다 죽으면 식량자주 무너진다

현수막에 쓰인 글귀가 선명하다. 이 기자는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어딘가 통화를 한다.

 "일 터졌어, 김 기자, 카메라 갖고 나와."
 "접수했어,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이 기자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행렬을 따라간다. 그때 성조기를 본 작은 아이가 손뼉을 치며 소리친다.

 "미국놈 만세."

 아내가 급하게 작은아이 입을 틀어막는 것을 뒤돌아보며 이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미국놈 만세다.'

- 유시연 '미국놈 만세다'중에서

많은 문학인들이 현 정부를 질타하기 위해 펜을 드는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번에 펴낸 콩트집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100일 동안 국민을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콩트 문학의 장점은 배꼽을 잡게 만드는 해학과 풍자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폐부를 깊게 찌르는 촌철살인의 필치에 있다. 작가들이 본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어떻게 풍자되고 희화화 되었는지는 경향신문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는 김용민 화백이 그린 삽화와 글의 행간에 다 숨어 있다.

작가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선물 준비

역시 빼대있는 집안은 달라
 역시 빼대있는 집안은 달라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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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22편의 콩트는 대체로 국토 훼절과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한반도 대운하 비판과 국민 식생활 교란 및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경고, 1% 부자 내각의 추악한 비리 고발, 강부자 고소영 소망교회 인맥 등으로 구성된 측근 정치에 대한 비판 등을 해학적인 문체와 날카로운 풍자의 필치로 그려냈다.

빠른 속도감과 기가 막힌 반전의 묘미가 있는 책 <초중딩도 뿔났다>를 기획한 시인 박선욱씨는 "작가들이 권력과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안이 중대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정성 들여 만들었으니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잔치상에 오르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기실 생각보면 이 책 한 권이면 다른 메뉴는 필요 없을 듯하다. 100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새삼 지난 100일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저희들끼리 영상을 돌려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번 콩트집에 참여한 문인은 작가 김성동, 이남희, 공선옥, 한창훈, 임영태, 안재성, 윤동수, 김현영, 김곰치, 조헌용, 최용탁, 이시백, 김종성, 유영갑, 박숙희, 유응오, 김상영, 박구홍, 강기희, 유시연, 시인 박선욱, 정용국 등 총 22명이다.

소설가 김씨가 급하게 화학주 담긴 잔만 뒤집고 있는데, 아는 보살이 왔다.
"오렌지라고 발음하면 오렌지를 안 판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오륀쥐라고 해야 된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오륀쥐 발음이 나게 혀를 끊어내는 수술을 한다고 난리여요, 시방."
"농담이 심하시네요. 썰렁하게."
"정말이라니까요. 오륀쥐라고 하지 않으면 오렌지를 팔지 말라는 대통령 특별명령이란 게 떨어졌다니까요, 시방."
하도 어이가 없어 김씨가 잔만 뒤집는데, 보살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김씨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소설도 영어로만 써야 된다는데…… 어떡하지요?"
- 김성동 '굿모닝, 오륀지' 중에서

김용민 화백 삽화 '어? 사진이...'
 김용민 화백 삽화 '어? 사진이...'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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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값 확인하는 과장급 대통령에게 이 책을 바친다

10만 개의 촛불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지난 주말.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 촛불 값이 대체 얼마냐?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저런데 돈을 쓰면 되나? 저 돈 어디에서 났는지 확인해 보고 하시오."

대통령의 말에 한 비서관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풀어주기 위해 나섰다.

"각하, 연일 이어지는 촛불 행진으로 인해 도심의 거리가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시민들이 가로등이 없어도 거리를 걷는데 지장 없다고 합니다. 이 참에 가로등을 꺼 그렇게 절약되는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려 주심이 어떠할지…."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돈 싫다는 사람 없으니 적극 추진해봐욧. 캬캬캬."

국민성공시대를 열겠다던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절망시대를 살고 있다. 치솟는 물가로 인해 국민들의 주머니는 쪽박 수준을 넘어 빈털털이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어른들을 대신해 촛불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일도 많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잔치 날에 청와대 어느 비서관이 한 대목을 낭송하면 어떨까 싶다. 내용을 곰곰히 듣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도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이의 어깨를 치며 박장대소 하다가 끝내는 포복졸도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대목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잔치상에 올릴 선물로 이 책을 바친다.

김용민 화백 삽화 '뭘 잃어버렸다고 하지?'
▲ 잃어버린 10년. 김용민 화백 삽화 '뭘 잃어버렸다고 하지?'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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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명박풍자, #콩트, #촛불, #초중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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