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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가 극성을 부리는 봄철이면 사무실이 텅 비는 시민단체가 하나 있다. 노란 모래폭풍의 발원지에서 사막화를 막는데 혼신을 노력을 쏟아야 하니 그렇다. 한반도를 뒤덮는 황사의 50%를 불어 올리는 몽골에서 그 재앙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입'이 아닌 '발'로 뛰다 보니 그들에겐 그 흔한 언론플레이용 전시(보여주기) 활동조차 할 겨를이 없다.

 

'푸른아시아'(시민정보미디어센터의 새 이름)가 바로 그 주인공.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250km 떨어진 대초원지역에 홀로 들어가 사막화 방지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 단체 활동가 한 명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현지에 파견돼 일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참담한지 아십니까? 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지구촌 기후변화의 책임을 몽땅 짊어져야 합니까? 농사도, 과수원도, 목축도 불가능해지고 있는데 뭘 먹고살라는 겁니까? 자동차에 냉·온방에 에너지를 펑펑 써대며 이들을 못살게 한 책임을 지려 하는 사람이 왜 없는 겁니까?"

 

"몸 팔아도 끼니조차 잇기 힘든 이들의 고통 나눠야죠"

 

 

푸른아시아가 사막화 방지 모델로 채택, 실험하고 있는 바양노르 조림장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이재권(46)씨는 기자의 물음에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수도권 주변으로 간 '사막난민'들의 삶은 또 얼마나 처참한지 아십니까? 자동차와 가전제품 팔아서 돈 벌고 에너지를 물 쓰듯 했던 우리는 치열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몸 팔고 발품 팔아도 끼니조차 잇기 힘든 이들의 고통을 나눠야죠."

 

푸른아시아는 한국과 몽골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한국에 8명, 몽골 사무실과 조림장에 10명의 직원이 있다. 올해 몽골 사막화 방지 조림사업이 시작된 지난 13일부터 한국 사무실엔 한두 명 남고 모두가 현지로 출동했다. 바양노르(초원형)와 바가노르(도시근교형)에서 조림모델 만들기 사업을 하는 데 수백 여명의 한국인 자원봉사자를 인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맘때면 24시간으로도 모자라"

 

이들이 1년 내내 바쁜 건 아니다. 서너 차례 나무심기 행사가 이어지는 한 달여가 그때.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이 한가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 사무실에 있는 이들은 1년 내내 사막화 방지 연구사업과 지원·후원자 조직화, 그리고 모금을 해야 한다. 민간단체에게 재정과 인력을 해결하는 건 언제나 최대 난제니까.

 

 

몽골 현지에 있는 이들은 좀 다르다. 바양노르와 바가노르에 있는 이들은 겨울이 오기까진 나무를 죽이지 않고 가꿔야 하기에 긴장의 연속이다. 현지 주민을 격려하고 교육하는 일도 바삐 해야 한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지부 사무실은 몽골과 한국 정부 간 협력을 조율하느라 늘 힘든 '민간외교'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윤경효 몽골지부 사무국장은 "조림 준비 때문에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정도"라며 "서쪽으로 250km, 동쪽으로 140여km 떨어진 두 곳의 상황을 점검하고 두 자치단체 및 중앙정부와 협력사업을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뿐 아니다. 그는 서울에 있는 푸른아시아 본부와도 24시간 소통을 해야 한다.

 

푸른아시아는 국제협력사업에 조직의 명운을 걸었다. 기후변화로 이웃 나라가 사막화 위기를 겪고, 그 때문에 우리는 '황사 재앙'에 빠져버렸으니 이보다 급한 일이 없기에 그렇다. 국제협력을 말하면서 이해 얽힌 국내 이슈만 수행하는 여느 민간단체와는 그래서 좀 다르다.

 

짱짱한 능력 뒤엔 진정성

 

양국 사무실에서 스무 명도 안 되는 직원이 매년 10억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해 사막화 방지사업을 펼치는 '짱짱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진정성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지원은 KOICA로부터 2명의 인건비를 받는 게 전부다.

 

이들이 작은 조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유엔 지구환경기금에 등록된 국내 유일의 환경단체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한 눈 한 번 팔지 않았고 지구촌 이웃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았던 게 주요했다. 개인이나 기업 회원이 믿고 지지·후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오기출 사무총장을 정점으로 제진수 차장, 그리고 윤전우·김영재 팀장은 모두 에너지와 정보화 전문가들. 산림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이덕수 박사(임학)를 상근팀장으로 두고 있다. 자원봉사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하남시 산림공무원인 김광석 팀장이나 작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자임하고 나선 변승우 감독(다큐전문)이 그에 해당한다.

 

발품을 파는 이들이 있다면 이를 지지·후원하는 회원들의 공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550명의 회원은 10년간 변치 않고 사막화 방지 일을 하는 지도부를 믿고 꼬박꼬박 회비를 낸다. '사막화 방지' 캠페인으로 '1구좌 갖기'에 참여한 후원회원 2천여 명도 큰 역할을 한다.

 

 

이들 뒤엔 기업회원도 있다. 대한항공은 매년 2~3만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자원봉사자 200여 명을 참여시킨다. (주)테라그린(대표 김영남)은 건조지역에 나무 심을 때 필요한 보습제의 50%를 후원한다. 한 달간 비가 안 와도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첨가제다. 생존율 95% 기적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몽골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지켜줄 책임, 우리에게 있다"

 

섬유사를 운영하는 홍훈기 회원의 경우는 좀 특별나다. 직원 1명이 채용될 때마다 10만원씩 매월 후원금을 추가한다. 개인적으로 명암에 '푸른아시아' 로고를 새겨 홍보에 열성이다. (주)배움닷컴 대표인 유문선 회원의 경우도 개인적 열성을 보여준다.

 

KOICA 봉사단원으로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에 1년간 파견돼 일하고 있는 박은희 간사는 이렇게 말한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 양국 시민이 연대해 지구촌 공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 기대됩니다. 바가노르에서 만난 몽골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미소를 지켜줘야 하는 책임이 나와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이들의 노력이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몽골인들겐 큰 신뢰를 주고 있다. 민간외교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기자가 현지를 돌며 만난 델게르 촉트 환경부 차관 등 중앙·자치단체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푸른아시아와 한국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몽골정부는 지난 14일 오기출 사무총장에게 외국인에겐 처음으로 '자연환경보호 지도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제 푸른아시아에 남은 가장 큰일은 10년간 연구개발해 온 토착형 사막화방지 모델을 최대로 확산하는 것이다. 몽골인들이 얼마나 많이, 적극적으로 사막화 방지사업에 참여하느냐가 남은 최대 과제. 이를 위해 한·몽 양국정부의 협력이 절실하다. 부족한 재원을 후원할 기업과 개인회원 참여도 긴요하다.

 

오 총장은 이에 대해 "아무도 사막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부터 회원들의 개인 주머니를 털어 이 일을 해왔는데, 이렇게 희망으로 싹트고 있다"며 "모두가  힘을 합쳐 황사공포뿐 아니라 기후변화 책임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제협력을 통해 토지황폐화를 저지하고 현지인들이 앞장서도록(생존문제도 해결) 하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인류평화 꿈 이렇게 실현 하나 봅니다"

[인터뷰] 곽온 푸른아시아 이사

매년 이맘때면 몽골 사막화 방지사업을 위해 몽골에 들어가는 이가 있다. 곽온(50·여) 푸른아시아 이사(비상임)가 그 주인공. 전신인 '시민정보미디어센테(CIC)' 시절 '사막화 방지 추진단' 단장을 맡았던 인연 때문이다. 그녀는 경기도 광명시립 소하어린이집 시설장이면서 휴가를 내고 개인 돈을 들여 이 일을 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와 일문일답.

 

- 참여하게 된 동기는?

"2003년부터 대한항공이 몽골에 조성하는 숲 가꾸기 사업 추진단장을 맡아 참여자의 교육과 현지 안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광명YWCA 사무총장 출신인데, 임창렬 경기도지사 시절 '푸른광명21'에 이어 '푸른경기21' 운영위원장을 맡았다가 인연이 됐죠. CIC가 기후변화에 따른 몽골 사막화 저지 사업을 벌이는 데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 환경운동가 출신인가요?

"광명시립 소하 어린이집 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기관이 아니죠. 그래서 몽골 사막화 방지사업 단장 일도 개인 휴가를 내 참여하는 겁니다.

제 분야에서도 몽골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숲'이 있는 바가노르구의 유치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학용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몽골 이야기를 하면 참여하는 이들이 꽤 됩니다. 현물 후원이 늘고 있어 어린이집을 2~3개 더 지원할 예정입니다."

 

- 몽골 사막화 정도와 한국인의 반응은?

"이 정도로는 조족지혈이죠. 하지만 희망을 일구고 있으니 천만다행이죠. 몽골 사막화 저지에 한국인들이 앞장서는 건 자랑스럽습니다. 전 3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한테 돈 내놓으라고 윽박질러 투어에 참여했습니다. 단장이니 꼭 가야하는데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죠. 더 그럴 수가 없어 돈벌이를 시작했습니다. 첫해 참여하고 난 뒤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평소 '인류 평화'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는데, 그 꿈을 이렇게 실현할 수 있겠다고 느꼈죠."

 

- 몽골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처음엔 나무심기에 무관심했죠. 선물에만 눈독 들이는 것이라고 착각했으니까요. 지금 바가노르 분위기가 어떤 줄 아십니까? 아이가 한 명 탄생하면 기념식수를 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몽골인들은 한국인들을 '솔롱고스(무지개가 뜨는 나라)'인이라 칭하는데 유대관계가 더 좋아진 듯해 뿌듯합니다."

 

- 대한항공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촌 최대의 문제인 기후변화에 전 사원들이 적극 나서는 건 참 보기 좋습니다. 첫해 심은 나무가 죽은 적이 있는데, 이젠 후속 관리를 잘해 나무들이 잘살고 있습니다. 바가노르의 황무지에 '희망'이 잘 커가고 있답니다."

 

-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는?

"산림청에서 한 명의 공무원이 몽골에 와 있습니다. 저희 단체 현지사무소에 자주 들른다고 합니다. 사막에서 나무를 심고 살리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부가 사막화 방지에 더 열심을 내길 바랍니다."


태그:#몽골, #황사기획, #사막화, #푸른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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