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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희

 

기름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충남 태안군 일대 바닷가 굴 양식장 시설물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신두리 해변. 23일 이른 아침부터 바닷가엔 경운기와 포클레인, 덤프트럭 등 온갖 시끄러운 기계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지난 20일 철거 작업이 시작된 이후 어민들은 '바다를 살리자'가 적힌 안전모를 착용하고 경운기 짐칸에 몸을 실은 뒤, 검은 기름으로 이제는 굴 채취가 불가한 황폐한 삶의 터전으로 향한다.

 

어민의 한숨 굴 양식장 철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신두리 해변 시설물 철거 작업현장.
어민의 한숨굴 양식장 철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신두리 해변 시설물 철거 작업현장. ⓒ 정대희

"이걸로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먹고 살았는데…. 참으로 허망하구먼."

 

신두리 바닷가에서 3대에 걸쳐 굴 양식업을 해왔다는 연창곤(62·신두리)씨는 기름 범벅이 된 굴을 보면서 답답한 심정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연창곤씨 외에도 굴 양식장 철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은 대략 80명. 모두 굴 양식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굴 양식은 150cm 정도 크기의 목재와 철근 등을 갯벌에 일정한 간격으로 50cm 정도 깊이로 묻고, 노끈 등을 이용해 목재와 목재 혹은 철근과 철근 사이를 연결해 노끈에 굴이 달라붙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다. 충남 태안 의항리, 소근리, 신두리 등 이 지역부락 어민들에겐 오래전부터 주요 수입원이었다.

 

정환태(70·굴 양식자)씨는 "당해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여기 굴 양식장에서 한 달에 100~200만원 정도 벌어서 애들도 가르치고 생활비도 쓰고 했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게 됐어"라며 "이거 만든 게 불법이라고 보상도 안 준다고 하는데 옛날부터 관행처럼 이어온 일터이자 생계 터전을 불법이라니"라고 한숨을 내쉰다. 이어 정씨는 "조상들 때부터 몸을 부지런히 놀려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 곳인데 하루아침에 기름으로 범벅돼 답답한 심정인데 범죄자 취급까지 당하고 있어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있다"고 한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굴 양식장 철거 철거된 시설물을 경운기에 싣고 이동중인 피해어민 뒤편으로 향후 철거될 드넓은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굴 양식장 철거철거된 시설물을 경운기에 싣고 이동중인 피해어민 뒤편으로 향후 철거될 드넓은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 정대희

태안군에 따르면 금번 철거 대상 지역 면적은 약 172ha. 대충 크기를 비교해보면 여의도 면적의 약 5분의 1 크기이며 축구장 230여개를 합친 것과 같은 넓이다.

 

양식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면적을 갖추기까지 어민들은 손수 산이나 들판 등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목재를 주워오거나 혹은 철근을 구입해 일일이 갯벌에 파묻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반면 철거작업은 어민들이 공들인 시간에 비해 빠르고 손쉽게 진행되고 있었다.

 

신두리 해변에는 4척의 예인선과 10여개의 예인선들이 백사장에 위치해 있는데, 철거된 양식장 시설물을 폐기물업체가 수거해 가기 전 임시 보관하는 저장고로 어민들이 경운기를 이용해 제거한 목재, 철근, 등을 실어 나르면 분리해 보관하는 곳이다.

 

굴 양식장 철거 포클레인을 이용해 침식된 목재와 철근 등을 뽑아내는 등 시설물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굴 양식장 철거포클레인을 이용해 침식된 목재와 철근 등을 뽑아내는 등 시설물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정대희

포클레인을 이용해 양식장 시설물을 철거하는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갯벌에 일정한 높이로 파묻은 목재 및 철근 등이 서서히 침식돼 이젠 인력으로 뽑아낼 수 없게 된 것. 때문에 포클레인이 투입, 손쉽고 빠르게 철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중장비를 도와 철거 작업 현장에서 어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평생을 가꿔온 삶의 터전을 손수 제거해야 하는 일. 어민들은 굴이 주렁주렁 매달린 노끈을 낫을 이용해 자르는 작업, 포클레인으로 뽑은 목재나 철근을 경운기에 싣는 작업, 바닥에 떨어진 굴을 양동이에 담아내는 작업 등 쉴틈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제 몫을 한다.

 

평생 일궈 온 생계 터전을 스스로 없애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시설물을 철거하고 있는 어민들. 여름철이 되면서 기름 범벅이 된 굴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계수단이 없어져 수입이 없는 어민들로서는 철거작업 현장인력으로 배치돼 인건비를 벌어야 하기에 이마저도 감사하다.

 

굴 양식장 철거 시설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어김없이 노끈에 매달려 있던 굴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 어민들이 양동이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굴 양식장 철거시설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어김없이 노끈에 매달려 있던 굴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 어민들이 양동이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정대희

철거 인력은 피해 굴 양식업자에 한해서만 동원되는데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로 허리를 굽히는 일이 많은 작업에 통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도 많았다.

 

이경화(73·어민)씨는 "여기서 25년 이상 굴 양식업하면서 자식들 다 키웠지. 근데 이걸 거둬들이는 심정이야 말로 표현 못하지"라며 "여기 이 동네 진짜 못 살았어, 농사짓는다고 해야 식구들 먹을 정도밖에는 안 되고 굴 양식하면서 살림도 조금 나아지곤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다"라고 침통함 마음을 전했다.

 

철거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어민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준 삶의 일터를 철거해야만 하는 침통한 심정을 애써 감추며 힘겹게 철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자연정화가 가장 좋다고 하니 그냥 철거하지 않고 기다리면 안되냐?"라고 서운한 마음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허나 이어 "그래도 오염된다고 하니 거둬야지. 그래 거둬야지"라고 말한 후 이어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기름유출#굴양식장#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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