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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 글ㆍ사진 : 조나단 콕스

- 옮긴이 : 김문호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8.4.15.)

- 책값 : 17000원

 

 

 (1)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사진

 

.. 이제 문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다 ..  (14쪽)

 

 몇 해 앞서,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아서 찍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제는 내가 굳이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헌책방 사진찍기’는 잠깐 반짝하고는 수그러들었습니다.

 

헌책방에 와서 책은 안 보고 사진만 찍던 그 많던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조용히 책을 즐기는 사람만 헌책방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헌책방 사진찍기'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듯, 어디에서나 사진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부터 늘 사진기를 어깨에 걸쳐메고 다니기는 합니다만, 길을 걸어가는 데에도 사진기를 들이대고 전철에 서서 책을 읽는 데에도 사진기 불꽃을 터뜨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 젊은이들이 자기 사진기에 담는 이 엄청난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할까?' 궁금했습니다.

 

제 차림새가 뭔가 도드라져 보여서 사진 세례를 받는가 싶기도 했으나, 사진이란 '어딘가 눈에 뜨이는 모습을 담는 일'이 아닌데, 이 젊은이들은 기계는 대단히 좋은 녀석을 장만하면서도, 정작 이 기계를 왜 다루고 어떻게 다루고 언제 다루어야 하는가는 까막눈이구나 싶었습니다.

 

.. 나는 피사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미지가 실물 크기의 몇 배로 나타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피사체를 가장 좋은 빛에서 포착하려 하고, 적정한 노출과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얻고자 할 뿐이다 … 나는 얼마나 고배율의 이미지를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 접사사진을 촬영하려면 먼저 당신이 사용하는 장비에 통달하고, 뛰어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 장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  (18쪽)

 

 요즈음도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는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납니다. 사진 모임도 제법 많고, 공원이나 옛 궁궐에 ‘출사’ 나가는 사람도 많으며, 골목길 모습을 찍는다며 출사를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는 분들이 출사를 다녀왔다고 이야기를 건네면, 그분 인터넷방이나 블로그를 찾아가보고 무슨 사진을 어떻게 찍었나 들여다보곤 합니다.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참 부지런히 많이도 찍던데, 정작 올려놓는 사진은 몇 장 안 되기도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이이는 뭘 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 찍기 좋다는 곳’에 가서 무얼 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출사는 핑계고, 그냥 술 마시는 모임을 한 셈인지? 출사랍시고 모여서 빈둥빈둥 수다만 떨지는 않았는지? 출사를 했으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사진을 헤아려 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텐데, 당구장에서 공치기 놀이나 하고 있지는 않으셨는지?

 

..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촬영하는 사진이 카메라를 망가뜨려도 좋을 만큼 대단한 사진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두라! ..  (43쪽)

 

 곰곰이 헤아리면, 사진 모임에 나가고 출사에도 나가는 분들이 늘 보아 온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은, ‘퍽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멋지구나 싶은 모습’이곤 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스스로 자기 삶을 알뜰히 담고, 사진에 찍힌 사람 삶이 사뿐히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있다고 하는 모습’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을까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읽었어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는 못 읽었으니, <태백산맥>은 읽었어도 <광주 전남 현대사>는 모르고 있으니, <외딴방>은 읽었어도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건드려 보지도 않으니, 어찌할 길 없는 노릇일까요.

 

 신락균을 알든, 임응식을 모르든, 강운구를 읊든, 한정식을 따르든, 최민식 이름 석 자를 되뇌든, 김기찬 이름 석 자를 새기든, 육명심 강의를 들었든, 이명동 말고 저 명동도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든, 먼저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들이고 품을 들여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고 되새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림 좋은 사진을 바라든, 뜻이 있는 사진을 바라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 찍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가슴에 새기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내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눌러대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뒤돌아보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2) 사진기를 들기 앞서 생각하기

 

.. 빛을 연구하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피사체의 모습이 빛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해 보라 ..  (62쪽)

 

 훌륭한 사진쟁이든 훌륭하지 않은 사진쟁이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담을 대상하고 가까워진 다음에 사진기를 들자. 그렇게 해도 늦지 않다’고.

 

백두산에 오른 기쁨과 벅참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서 여기저기 막 찍는다고 하여, 내 가슴으로 다가온 기쁨과 벅참이 사진에 담기지 않습니다.

 

모르지요. 헐레벌떡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헐레벌떡 사진이 가장 뜻있는지도.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대충대충 사진이 가장 재미있는지도.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그냥저냥 사진이 가장 값진지도. 겉치레와 겉멋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겉치레 사진이나 겉멋 들린 사진이 가장 알맞는지도.

 

.. 카메라가 내 팔의 연장이라고 느껴질 때면 시간을 벗어난 것 같은 초월의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의 일부가 된다 … 사진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볼 때 현실을 떠나 다른 장소로 가는 느낌을 주고 싶어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가가 사진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기에 그들의 창조적인 측면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 렌즈의 선택을 제한하면 피사체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  (85∼86쪽)

 

 제 사진감인 ‘헌책방’과 ‘골목길’, 여기에 ‘자전거’까지 해서 사진에 담을 때마다 늘 혼자말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모습을 담을지가 머리에 떠오르거나 마음에서 샘솟기 앞서까지는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한쪽 어깨에 언제나 사진기가 걸려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찍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면 섣불리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사진기 구멍으로 ‘찍을 대상’을 요모조모 살피지 말고, 두 눈으로 먼저, ‘찍을 대상’을 살피자고.

 

 그러고 나서, 내가 꼭 찍어야 하는지, 나 아니면 찍을 사람이 없는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찍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합니다.

 

 돈 떨어질 걱정이 없는 디지털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저장장치에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는 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으면 어차피 다 지워야 합니다. 게다가, 쓰레기 사진을 치우느라 소중한 시간이 빼앗깁니다.

 

엉뚱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시간이 버려지고, 엉뚱한 사진을 지우느라 또 시간이 버려집니다. 또한, 엉뚱한 사진을 찍는다고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정작 제가 즐겨야 할 헌책방이나 골목길이나 자전거하고 함께하는 시간마저 줄어들어요.

 

..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보는 방법’을 배우고, 환경적 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 접사 이미지를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임을 나는 거듭 깨닫고 있다. 또, 피사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잘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거듭 놀란다. 사실 피사체가 자리를 뜨기 전에 내가 먼저 뜨는 경우가 더 많다 ..  (91,108쪽)

 

 사진을 찍어서 한 가지 모습을 종이나 파일로 남긴 뒤부터는,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부대끼던 삶터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모습이, 오늘 다르고 어제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지겠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 누구나 보는 모습이 아닌, 내 나름대로 뜻과 값을 두면서 바라보는 모습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사진 한 장에 이야기 한 자락이 생기고, 사진 두 장에 삶 한 자락이 새겨집니다. 사진 석 장에 눈물 한 방울 담기고, 사진 넉 장에 웃음 소담스레 묻어납니다.

 

 찍고 나서 두 번 거듭 보고, 찍었기 때문에 세 번 다시 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찍은 뒤에 다시 찾아오고 또 찾아갈 곳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찍은 그날부터 사랑하게 되거나 애틋하게 바라보는 무엇인가를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알아갑니다.

 

 (3)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가까이 찍기’를 말하는 ‘접사’는 제 사진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나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바꿉니다. 사진은 모두 똑같은 사진이구나. 다만, 모두 똑같은 사진을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을 뿐이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모두 똑같은 사진이라고 말할 수 없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으니, 다른 사람들 사진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 사진책을 장만하면서 즐기는 맛이 있구나.

 

.. 하루가 끝나고 유리상자 안에 갇혀 죽어 있는 수집물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피사체를 관찰하는 일은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  (7쪽)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쓴 조나단 콕스 님은 말합니다. 디지털파일을 RAW파일로 남겨 놓으라고. “JPEG포맷이 아닌 RAW 포맷을 사용하면 디지털 메모리 용량을 더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할 수 있는 이미지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촬영속도는 느리게 하고 촬영 이미지 수는 줄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메모리 저장 공간을 아끼기 위해서 좋은 피사체들을 보고도 충분히 촬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139쪽)”라고 말합니다.

 

 저는 어떤 파일로 사진을 남겨 두고 있었나 살펴봅니다. JPEG로 남기고 있었군요. 그랬나? RAW 파일로 형식을 바꿉니다. 그랬더니, 저장 장치에 담을 수 있는 사진 장수가 1/3로 줄어듭니다. 헉! RAW 파일은 원본파일이고, 이 원본파일을 쓸 수 있도록 줄이거나 만지려면 새 프로그램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헉헉!! 시험 삼아 RAW 파일로 사진을 담은 뒤 새 프로그램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애써 찍은 사진 1/2을 날렸습니다. 헉헉헉!!!

 

 파일 형식을 바꾸고 나서 보니, 예전 JPEG 형식이었을 때보다 빛느낌이 한결 살아납니다. 그렇구나. 이러한 파일 형식을 쓰는 까닭이 있었구나. 그러나 예전에 찍은 사진은 그 사진들대로 좋습니다. 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비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제가 담아야 할 사진감을 제 깜냥껏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가운데 담아낸 사진이었다고 한다면, 좀더 나은 파일 형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쁘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는 한결 나은 파일 형식으로 쓰면 되고, 또, 여태껏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지나쳤던 대목을 다시금 찬찬히 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한 자리에 머무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고여 있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용두질하며 즐기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 이미지를 보는 사람과 당신의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사체의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것이다. 거북이나 두꺼비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피사체의 시점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을 보는 사람은 피사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까지도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  (110쪽)

 

 사진책 오천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알아보는 눈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 만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찍는 손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몇 권 읽었느냐는 껍데기입니다. 예전에 읽은 권수가 아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읽는 책을 덮은 다음, 새로운 책을 읽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멋들어진 작품 하나 빚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멋들어진 작품은 일찌감치 이루어 놓은 하나로 그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를 처음으로 삼아 두 번째를 이루고 세 번째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열 며칠 동안 책상맡에 놓고 있던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마무르고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곧 책방 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조나단 콕스 글.사진, 김문호 옮김, 청어람미디어(2008)


태그:#사진, #사진책, #접사, #책읽기, #조나단 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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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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