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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찬바람이 불어올 때 광릉을 찾아가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광릉을 다시 찾아보았다.

 

다시 광릉에 찾아갔을 때 시간은 해가 산 중턱에 걸려있었다. 광릉 매표소에 도착을 하니 입장시간이 다되어 어렵게 입장하게 되었다. 내가 광릉을 그날 마지막으로 입장하였다.

 

광릉입구에는 야생화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다보니 숭례문 화재 때 방송을 듣던 때가 생각이 났다. 숭례문을 복원하려고 하니 기둥으로 사용하려는 목재가 없다는 보도를 들었다. 이곳에는 쭉쭉 벋은 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많이 서 있다.

 

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숭례문 복원에는 사용할 수 없다. 이곳이 사적지라 나무를 자를 수 없다. 나무를 자를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크고 굵게 자랐을 것이다.

 

묘에 오르는 길에는 나무 숲길로 길을 그늘이 짙어 더운 여름이라도 찬바람이 불어서 시원하게 광릉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자각이 보이는 곳에는 홍살문이 광릉을 찾아오는 관람객을 맞아주고 있다.

 

 

 

정자각은 5단 석축기단 위 목조 맞배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에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볼 수 있다. 정자각 옆에는 비각이 서있다. 비문에는 “조선국 세조대왕광릉 정희왕후부좌강”이라 씌어 있다.

 

정자각을 중심으로 세조와 정희왕후 묘는 두 젖가슴 꼭지에 있는 ‘유두혈’(乳頭穴)이라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정자각에서는 묘소가 잔디밭 위로 올려다볼 수가 있다. 정자각에서 왼쪽으로는 세조대왕능, 오른쪽으로는 정희왕후 묘이다. 묘에는 겨울철 산불 때문에 입산이 금지되어 있어 올라가 보지는 못하였다. 묘소에 배치된 아름다운 문인석, 망주석을 보고 싶었다.

 

 

 

정자각에서 바라다보이는 숲은 군인이 줄을 지어 보초를 서 있는 듯하게 보였다. 묘소로 오르는 잔디밭 옆의 수목도 잔디밭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연출하면서 군인들이 사열하는 듯하다.

 

세조는 호패법 재실시, 상평창제도 시행, 경국대전의 간행, 간경도감 신설, 동국통감, 역학계몽요해 등을 간행하였고, 규형, 인지의를 제작하여 토지측량을 쉽게 하고 북쪽 변방을 침범하는 만주족을 정벌하였다. 세조는 재위 14년 동안 많은 업적을 쌓아 중앙집권적 왕권강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7년 동안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조선시대 최초의 수렴청정을 한 왕후로 유명하다.

 

최근에 건축한 관리소도 전통건축으로 지어져 주위와 어울려 아름답다. 광릉 인근 관광지로는 국립수목원과 봉선사도 있다.

 

덧붙이는 글 | 광릉에는 5월 11일날 다녀왔습니다


태그:#광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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