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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 임진왜란 당시 퇴각하던 왜군이 지었다
 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 임진왜란 당시 퇴각하던 왜군이 지었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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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왜군 병선 700여 척이 부산포에 상륙하면서 시작된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고도 불리는 1597년 제2차 침락 때 적장 가토 기요마사는 1만6000명의 병사를 동원해 40여일 만에 현재 울산시 학성동 일대에 울산성(현 울산왜성)을 축조했고, 이곳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5만여 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 왜군들은 식량이 없어 흙을 끓여 먹고 오줌을 마시며, 말을 잡아 먹으며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왜군이 워낙 튼튼하게 성을 지어 조명 연합군은 성을 함락하지 못하다 왜군 구원병이 오면서 철수했다고 한다.

당시 전투에서 조선군 1000여 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명나라군도 사망자가 4800여 명, 부상자가 6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왜군도 전투에서 6000여 명이 사망했다. 울산에서는 울산왜성이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하여 도산성이라고도 부른다.

5월 23일 공개된 '울산성전투도' 사진 출력물
 5월 23일 공개된 '울산성전투도' 사진 출력물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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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상황을 나타낸 그림인 '울산성 전투도'의 사진 출력물이 오는 2010년 문을 여는 울산시립박물관에 전시해 달라며 23일 기증됐다.

울산시립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울산에 박물관이 없어 타도시 박물관을 전전해야 하는 지역문화재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다.사업비 460억원을 들여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내에 3만3058㎡ 크기로 들어서며 울산시는 박물관에 전시 보관할 유물 등을 기증받고 있다.

이번 기증자는 울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임자(68)씨. 그는 병풍 형태 전체 3도 중 첫번 째 그림을 기증했다.

'울산성 전투도'의 사진 출력물은 가로 300㎝, 세로 150㎝(실물 가로 375㎝, 세로 173㎝) 규모며 그림 원본 병풍 3도는 일본에 있다 지난 2007년 국내 개인 수집가가 국내로 반입한 후, 현재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시 문화예술과는 23일 이 사진출력물을 공개하며 "울산성 전투도는 원본을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사진 촬영하기도 어려움이 있다"며 "기증자의 소중한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울산성 전투도는 임진왜란 뒤에 치열했던 울산성 전투(1597년 12월23일~1598년1월4일)의 참상을 회고하면서 전투에 참가한 왜군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에서 군인들의 설명을 종합해 병풍 3개에 나눠 그렸다.  

문화계에서는 이 그림이 임진왜란 전투도 가운데 강장 방대하고 세밀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울산성 전투도 제1도는 조명 연합군의 울산성 진격을, 제2도는 조명 연합군의 퇴각을, 제3도는 조명 연합군이 울산성을 포위한 모습과 왜군의 고립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성 전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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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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