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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콩나물을 집에서 길러보겠다고 빨간 소쿠리에다 까만 천을 덮어서 기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상하는 콩이 많아서 그거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5만원인가를 주고 콩나물재배기를 샀습니다. 전기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재배기도 있었지만, 저는 전기도 필요 없고 별로 크지도 않은 그런 재배기를 그때, 2년 전에 샀습니다. 그때 콩나물콩과 무순을 같이 주문했고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콩나물재배기를 사면 매일 콩나물을 길러서 먹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요구르트 제조기를 사면 매일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과 같겠네요.

여하튼, 콩나물 재배기를 사서 한두 번 길러먹고, 어떤 때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안 되겠다는 핑계를, 또 어떤 때는 날씨가 너무 추워 안 되겠다는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재배기를 손이 잘 가지 않는 곳에다 넣어두었습니다. 가끔 재배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한 번 쳐다보고는, 눈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렇게 벌써 2년이 지나고, 동생이 월남쌈이 먹고 싶다고 어느 날 말했습니다. '월남쌈이 먹고 싶다고? 월남쌈에는 무순이 들어가야 하는 거겠지?'

그래서 드디어 콩나물재배기가 아주 오랜만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핑계거리를 동생이 먹고 싶다는 음식이 한 번에 날려버렸습니다.

무순씨앗
 무순씨앗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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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쯤 물에 불린 무순씨앗을 이렇게 고르게 펼쳐줍니다.

뚜껑 닫기
 뚜껑 닫기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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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 재배기는 이렇게 뚜껑이 있어서, 이 뚜껑을 덮고 3일간 그냥 놔둡니다.

무순 싹
 무순 싹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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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3일쯤 지나 뚜껑을 열어보면, 이렇게 무순이 자라있답니다.
엽록소가 만들어지도록 이제부터 뚜껑을 열어둡니다.

잘 자라고 있는 무순
 잘 자라고 있는 무순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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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곧 빛을 받은 무순이 이렇게 진짜 무순 색깔로 바뀝니다.
씨앗을 조금 촘촘이 놓았더니, 무순들이 조금 힘들어보입니다.
욕심이 조금 과했나 봅니다.

월남쌈 상차림
 월남쌈 상차림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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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을 기른지 5일만에 드디어 월남쌈을 해 먹습니다. 오이도 썰고, 깻잎도 썰고, 방울 토마토도 자릅니다. 냉동실에 있던 버섯도 녹여서 볶고, 역시나 냉동실에 있던 파인애플도 잘라서 놓습니다. 땅콩버터로 땅콩소스도 만들고, 월남쌈 소스도 작은 그릇에 붓습니다. 물도 팔팔 끓여 그릇에 붓고 접시도 가져다 놓고 먹을 준비를 합니다.

잘라서 씻어놓은 무순을 보고 "이게 대체 얼마치나 될까" 하고 얘기합니다. 월남쌈을 싸서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채소가 많아서 그런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금방 배가 부릅니다. 이거 완전히 다이어트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은 채소들은 싸서 따로 놔두기로 합니다.

월남쌈 담기
 월남쌈 담기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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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잘 싸서 그릇에 담아 둡니다.

월남쌈 부쳐먹기
 월남쌈 부쳐먹기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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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금세 또 배가 고파옵니다. 그래서 잘 싸두었던 월남쌈을 다시 꺼내 달걀물을 묻혀서 굽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싸서 먹을 때와는 또 다릅니다.

무순이 자라는데 든 내 노력은 사실 무순 씨앗을 불리고, 가지런히 놓아준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풍성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 월남쌈을 먹으면서 사람이, 아니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귀찮아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요구르트 제조기를 꺼내 요구르트도 좀 만들어 보고,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도 정리해서 출력도 할 일입니다. '귀찮아' 병을 빨리 벗어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태그:#월남쌈, #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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