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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경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큰 누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지난 3월 14일 처음 입원하던 날, "1개월 정도는 가족과 만나지 않는 게 환자에게 좋을 것 같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에 따라 면회를 못하다 지난달 내과 진료를 받아야 하겠기에 동행하고 두 번째 만났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처음 입원할 때와 달리 면회가 언제든지 가능해져서 다행입니다. 입원하기 전 통장을 분실해서 조금씩 들어오던 노인 연금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재발급 신청을 하러가면서도, 큰 누님과 데이트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통장도 새로 개설하고 점심도 먹으면서 근처 공원에서 하루를 즐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오후에 만났습니다.

 

병세가 조금이라도 좋아졌는지 더욱 악화됐는지 궁금증을 간직한 채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이용, 오후 2시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외출 절차를 밟는 동안 "지난 달보다 증세가 조금 더 심한 것 같다"는 간호사 말이 마음을 우울하게 했습니다.

 

간호사는 누님이 사물함을 찾지 못해 다른 환자들과 다투지 않도록 이름표를 붙여주었다면서 환자들과 다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젊은 환자들이 잘 따르면서 챙겨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어버이날을 전후해 어린이 대공원으로 야유회를 가서 걷기대회도 하고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아 주었다는 얘기는 눈 내리는 날 듣는 꽃소식처럼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누님의 병원 생활을 얘기하던 간호사는 "누님에게 동생분이 오신다고 전해드렸어요. 그랬더니 새벽부터 일어나 사무실을 오가며 '아직 오지 않았느냐?' '언제 오느냐?'라며 묻고 또 물으며 기뻐하시데요"라며 새벽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는데,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래도 40대 여성 '알콜의존증' 환자가 어머니 대하듯 한다는 말은 아픈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었으니까요. 정신질환 환자들 세계에도 인간애가 흐르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똑똑한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남을 괴롭히는 것과 비교되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누님과 두 번째 데이트

 

간호사실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큰 누님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 저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가락질을 해대더군요. 동생을 반갑게 대하는 일흔여섯의 노인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이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폭폭혀서 죽겄네, 어트케 혀서 알어가꼬 찾어왔어?"

"어떻게 알긴, 병원에서 먹는 것은 어때?"

"응~ 먹을만혀, 나도 옛날이는 검나게 영리혔었는디 인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가꼬 아무 것도 몰라. 근디, 내가 어디가 있는지 알어가꼬 이렇게 왔데?"

 

큰 누님은 병원에서 나오면서도 "지금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 "누가 어디 와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라며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조금 성가시더라도 친절하게 대답해야지 "듣기 싫으니 조용히 따라만 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라고 자꾸 묻는 걸 보니 지난달보다 병세가 악화된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에 만났을 때는 "나 지금 천원도 없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더니, 이번에 는 "나 지금 십 원도 없다. 참 못됐어 하여간"을 되풀이 했습니다. 천원에서 십 원 단위로 내려간 것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병원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외출증을 끊어 병원을 나와 손을 꼭 잡고 지하철도 타고 김밥도 사먹으면서 3시간 정도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지난번처럼 쟁반 자장을 사먹자고 했더니 이번에는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해서 깨끗하고 정갈하게 단장된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 삼인 분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맛이 영 아니기에 큰 누님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맛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다는 말보다 더 반갑게 들리더군요.  

 

4시쯤 농협에 가서 통장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매월 8만 원씩 입금되는 노인연금을 누가 빼갔는지 잔금이 1천 원도 남지 않았더라고요. 하지만, 현금을 찾고 싶지 않았습니다. 큰 누님과 함께 와서 재발급 받는 것만도 좋았으니까요.

 

농협에서 통장을 개설하면서 입·출금 증서에 액수와 주소 등을 적는 것을 본 큰 누님은 "왜 이렇게 잘 알어?:하는 감탄사를 농협에서 나올 때까지 되뇌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이 담긴 친절한 대답과 웃음뿐이겠지요.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표를 검색대에 넣고 빼고 할 때는 "하이고 나 때미 구찮게 혀서 미안헌디···"라면서 미안함을 표시했습니다. 또 걸어가면서는 "내가 있던디가 복지관여? 병원여? 내가 정신이 이렇게 없어서"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모두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편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분실한 통장을 재발급 받는 사정을 직원에게 설명하는데, 옆으로 오더니 "내가 정신이 이렇게 없어, 하이고 참 여러 사람 폭폭 허게 허지 말고 일찍 가야는디 이르케 힘들게 혀서 어치게 헌댜~"라고 하더라고요. 가슴 깊이 깔려 있는 죄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병원과 집, 복지관을 구별하지 못하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큰 누님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친구, 즉 대화 상대일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은 당연하지요. 병은 돈으로만 치료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정신과 환자는 가족의 보살핌과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기억력 상실로 화제가 바뀔 때마다 지금까지 했던 내용은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큰 누님.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도 큰손자와 사는 것으로 아는 큰 누님 손을 꼭 잡고 완쾌를 기도하며 실컷 울고 싶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진부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오래된 것들은 참 편안합니다. 또 사랑스럽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억이 쌓이는 만큼 낡아가면서도 그만큼 편안하게 다가오지요. 부부도 형제도 마찬가지일 터인데요, 비록 병원에 입원해있지만 저는 큰누님을 만나면 편안합니다. 또 사랑스럽습니다.


태그:#큰누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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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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