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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 김효근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택에서 색소폰을 연주 중이다. 색소폰을 불때면 색소폰도 생명이 있음을 느낀다고 할아버지는 말해주었다.
색소폰 연주김효근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택에서 색소폰을 연주 중이다. 색소폰을 불때면 색소폰도 생명이 있음을 느낀다고 할아버지는 말해주었다. ⓒ 송상호

김효근(71) 할아버지을 알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며칠 전 안성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트럼펫을 옆에 두고 식사하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한 번 만나보면 뭔가 좋은 인생사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묘한 느낌이 스쳐갔다. 초면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인사한 후 명함을 건네면서 조만간 한 번 찾아 뵐 거라는 막연한 약속이 우리의 인연을 만들었던 것.

약속대로 며칠 뒤 안성의 한 아파트에 있는 할아버지의 자택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한 건 거실 한쪽 벽면을 다 채운 책들이었다. 그러면서 난 애당초 들었던 예감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촘촘히 꽂힌 노동운동 서적, 사회과학 서적, 인문학 서적, 종교 서적 등을 통해 그동안 옹이 살아온 정신세계를 살짝 엿 볼 수 있었다.  

무작정 찾아오겠다는 생면부지의 인생 후배를 마다하지 않고 반가이 맞아주는, 칠순의 여유가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또 아들 같은 기자에게 깍듯이 "선생님"이라 불러가며 자리에 앉기를 권하는 겸손함은, 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이 트럼펫을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동안 한 3년 넘게 색소폰을 불었지요. 지나간 세월 내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빌고, 고마운 것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색소폰을 불었죠. 나의 칠순 잔치에서도 초대한 자녀들과 친구와 아내를 위해 색소폰을 연주하여 주변에 대한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달했지요. 색소폰은 그저 악기가 아니라 나의 친한 친구입니다. 색소폰 더러 항상 '나와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곤 하지요. 요즘도 가끔 색소폰을 붑니다."

할아버지는 3년 전 색소폰을 통해 음악을 접했고, 최근엔 트럼펫을 만나 악기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할아버지에겐 쇳덩어리에 불과한 트럼펫이 사람의 영혼과 기를 만나서 내는 악기 소리는 단순한 악기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소리로 들렸던 것. 악기를 불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와 여유와 안정이 와 그저 신기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황혼이 돼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다면 황혼의 맛이 더 해질 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책 거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는 많고 다양한 책들이 할아버지의 인생 여정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거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는 많고 다양한 책들이 할아버지의 인생 여정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 송상호

원래 안성이 고향이었던 할아버지는 그동안 타향인 서울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 '대학교수' 등의 고급 직종부터 연탄장수, 자동차 운전수 등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한 때는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신부 수업'에 정진하기도 했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할 만큼 인생, 철학, 종교 등 사회의 각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단다.

심지어 52세의 나이에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 전공과목의 심화과정을 위해 중국의 길림대학까지 유학을 가는 열정을 발산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교수로서 '공산당사(주 : 공산주의 역사)' 강의까지 했다는 것을 들으면서 한 사람 속에서 저렇게 다양한 경험이 녹아날 수도 있음에 새삼 감탄했다.

"요즘 우리 시대는 겸허하지 않은 게 제일 문제예요. 다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요. 대통령으로부터 아이들에게 이르기 까지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만사 불통'이잖아요. 자신의 소리만 말하고 남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니 그럴 수밖에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제일 부족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그렇게 사회를 진단했다. 칠순이 넘도록 성현의 정신을 계승하여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다양한 인생의 길을 찾아 순례의 길을 헤맸던 그지만, 이젠 자신의 자택에서 앉아 평온하게 색소폰을 불며 지난 날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누구든지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면 나름 멋있는 황혼을 꿈꾸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집안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 있고, 적어도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고, 찾아온 인생의 후배에게 '는 이렇게 살았었노라, 너희들은 이렇게 살면 좋겠노라' 메시지 하나 정도는 던져줄 게 있는 그런 황혼 말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문전 배웅'이라는 아름다운 습관이 있었다며 한사코 아파트단지 입구까지 따라 나와 공손한 절과 함께 따스한 악수를 건네는 할아버지를 만난 건 내겐 분명 좋은 인연이었다.

회상  담배를 피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김효근 할아버지.
회상 담배를 피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김효근 할아버지. ⓒ 송상호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1일 김효근 할아버지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김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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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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