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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수제비 드셔 보셨나요?
▲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수제비 드셔 보셨나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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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를 잡기 좋은 철이 돌아왔다. 1급수 정도의 아주 맑은 민물에서만 살아가는 다슬기는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오뉴월에 잡히는 것이 가장 맛이 좋고 영양가도 뛰어나다. 특히 막 잡은 다슬기는 물만 붓고 포옥 삶아서 알갱이를 쏙쏙 빼 먹는 재미도 그만이지만 다슬기 삶은 푸른 물에 알갱이를 넣고 국을 끓여 먹는 게 특미 중의 특미다.

1960년대 중반. 나그네가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을 때 우리 마을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찌그러진 노오란 주전자 하나씩 들고 마을 앞 도랑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바닥이 훤히 비치는 도랑 돌멩이 틈 여기저기에 까맣게 붙어 있는 '고디'(다슬기를 부르는 창원 말)를 잡기 위해서였다.

우리 마을 앞 도랑에는 고디가 참 많았다. 마을 아이들이 거의 매일같이 도랑에 엎드려 고디를 잡아내도 다음 날이면 또다시 돌 틈 곳곳에 고디가 까맣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잡은 고디를 소금물에 넣어 1시간가량 두었다가 깨끗하게 씻은 뒤 솥에 넣어 물만 붓고 삶아 아이들에게 한 공기씩 퍼 주었다.

마을 아이들은 그 고디를 탱자나무 가시로 쏙쏙 빼 먹으며 놀았다. 하지만 고디 꼬리에 붙은 까만 부분은 먹지 않았다. 쫄깃쫄깃 쌉스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는 고디. 고디는 오뉴월 보릿고개 먹을 게 없었던 우리 마을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이자 고된 농사일에 지친 우리 마을 어른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명약 중의 명약이었다.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를 흐르는 섬진강
▲ 섬진강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를 흐르는 섬진강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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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
▲ 다슬기 1~2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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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술 마시는 사람에게 특효약

열병 걸려 죽어가던 옆집 순이
마을 앞 도랑에 까맣게 붙어있는
고디 한 주전자 잡아먹고 살아났네

술독에 빠진 뒷집 아재
비음산 개울에 꺼멓게 깔려있는
고디 한 가마니 옆에 끼고 또 술을 마시네

고디는 죽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만
사람은 죽어 죽어가는 아무것도 살리지 못하네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는 배불뚝이 삶이여

- 이소리, '고디로 살고 싶다' 모두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 선생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다슬기는 서늘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는 음식이다. 이와 함께 다슬기는 간장과 신장에 작용하며, 대소변을 잘나가게 하는 것은 물론 위통과 소화불량을 치료하며 열독과 갈증을 풀어준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도 다슬기에 대해 "열을 내리게 하며 술에 취한 것을 빨리 깨어나게 한다. 열독을 풀어주며 간기능 회복과 황달을 제거한다. 부종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한다. 우울증을 없애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며 골다공증을 예방한다"라고 쓰여 있다.

다슬기의 조리방법은 여러 가지다. 다슬기 삶은 물에 된장을 풀고 삶은 배추, 시래기, 송송 썬 대파, 빻은 마늘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송송 썬 부추를 얹어 먹는 다슬기국에서부터 다슬기무침, 다슬기부침 등이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다슬기가 간에 좋다고 하여 다슬기즙을 내 마시기도 한다. 

다슬기를 탱자가시로 쏘옥쏙 빼어먹는 맛도 재미있다
▲ 삶은 다슬기 다슬기를 탱자가시로 쏘옥쏙 빼어먹는 맛도 재미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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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수제비에 딸려나오는 밑반찬
▲ 밑반찬 다슬기 수제비에 딸려나오는 밑반찬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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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압록에 가면 건강이 보인다

"아, 왜 자꾸 사진을 찍어쌓소? 우리집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시오?"
"아…아닙니다. 이 집 다슬기 수제비가 맛이 하도 좋아 <오마이뉴스>에 소개를 좀 할까 해서요."
"오마이뉴스? 오연호가 하는 인터넷인가 하는 그 신문 말이오?"
"아니, 우리 오연호 대표기자님을 어떻게 아십니까?"
"오연호가 이 마을 출신이랑게."
"예에? 오 대표는 고향이 순천 아닙니까?"
"그 양반이 태어날 때부터 <말>인가 뭔가 하는 기자를 할 때까지 쭈욱 지켜보았제."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하늘빛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 그곳 섬진강가에 서면 저만치 티없이 맑은 강물에 엎드려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그곳 섬진강 둑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저만치 하늘빛과 진초록빛을 죄다 담아놓은 듯 푸르스럼한 다슬기 수제비를 끓이는 맛집이 하나 있다.    

'남도음식축제 수상의 집'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는 집. 섬진강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이 집에 들어서서 다슬기 수제비(5천원)를 한 그릇 시키면 삶은 다슬기와 뾰쪽한 이쑤시개가 먼저 나온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섬진강에서 잡은 삶은 다슬기를 까먹으며 느긋이 기다리고 있으라는 투다.

쫄깃쫄깃 쌉쓰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는 다슬기를 까먹으며 섬진강을 바라본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어릴 때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는 섬진강. 오 대표도 어릴 때 저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미래의 꿈을 키웠다는 생각이 들자 압록리를 끼고 흐르는 저 섬진강이 새삼 새롭게 다가선다.   

이 세상의 초록빛과 하늘빛을 죄다 끌어모아 풀어놓은 듯한 다슬기 수제비
▲ 다슬기 수제비 이 세상의 초록빛과 하늘빛을 죄다 끌어모아 풀어놓은 듯한 다슬기 수제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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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수제비는 반죽을 할 때 뽕잎가루를 섞어 연초록빛을 띠고 있다
▲ 다슬기 수제비 이 집 수제비는 반죽을 할 때 뽕잎가루를 섞어 연초록빛을 띠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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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알갱이가 '저요! 저요!' 마구 떠오른다

"저희 집은 저 섬진강에서 잡은 다슬기만 쓰기 때문에 중국산 다슬기를 쓰는 다른 집과는 맛이 아예 다르당게."
"다슬기 국물에 넣은 수제비 색깔도 초록빛이네요?"
"우리 집은 수제비 반죽을 할 때 뽕잎을 볶아 만든 뽕잎가루를 쓰기 때문에 맛이 훨씬 좋당게. 오뉴월 보약이 따로 없은게." 

이 집 다슬기 수제비는 온통 푸르딩딩하다. 국물은 하늘빛과 진초록빛을 풀어놓은 듯하고, 수제비는 이곳 섬진강을 에워싸고 있는 산빛을 죄다 끌어모아 반죽을 해 놓은 듯 부드러운 초록빛이다. 이윽고 다슬기 수제비 국물 맛을 보기 위해 숟가락으로 슬쩍 휘젓자 그릇 바닥에 빼곡히 가라앉아 있는 다슬기 알갱이가 '저요! 저요!' 하듯 마구 떠오른다.   

상 위에 놓인 가지나물과 콩나물무침, 묵은지, 단무지무침, 도토리묵, 부추김치 등 밑반찬도 깔끔하다. 다슬기 수제비를 입에 후루룩 떠 넣고 씹는 맛! 쫄깃쫄깃 달착지근하게 혀끝에 착착 감기는 맛이 기막히다. 다슬기 수제비 위에 새콤한 묵은지나 단무지무침을 올려놓고 먹는 맛도 일품이다.

다슬기 수제비를 후룩 후루룩 먹으며 가끔 떠먹는 하늘빛 다슬기 알갱이의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맛도 끝내준다. 특히 부추와 애호박, 세송이버섯, 풋고추, 송송 썬 대파, 양파, 다진 마늘을 넣고 만든 다슬기 수제비의 하늘빛 국물맛은 속이 시원하다 못해 몇 년 앞에 먹은 술독까지 모두 다 땀으로 쏘옥 쏘옥 빠져나오는 듯하다.      

이 집 다슬기 수제비가 입 속에서 아주 매끄럽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수제비 반죽을 아주 얇게 뜯어 넣는다는 데 있단다. 그렇게 감칠맛이 계속 맴도는 다슬기 수제비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워내고 나자 세상 시름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하다. 더불어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로 꽤 무거웠던 몸이 다슬기 수제비 한 그릇으로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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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반죽이 아주 얇다
▲ 다슬기 수제비 수제비 반죽이 아주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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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의 고향에 앉아 하늘빛을 닮은 섬진강을 지그시 바라보며 후룩 후루룩 떠먹는 다슬기 수제비의 기막힌 맛! 어머니의 손맛이란 게 이런 맛일까. <오마이뉴스> 신화를 만든 오 대표도 고향에서 만드는 다슬기 수제비의 이 기막힌 맛을 가끔 떠올리고 있을까.


태그:#다슬기수제비, #수제비,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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