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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도보 출발합니다.
 울트라 도보 출발합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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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한강변을 따라 40㎞를 걸었습니다. 50㎞ 걷기에 도전했는데 중간에 포기한 것이지요. 꼭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걸었다면 '완보'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양쪽 무릎관절에 무리가 가 그만 걷기로 했던 거지요.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더니 사실입니다. 40㎞를 걸을 때까지는 그래도 보폭이 일정했는데, '그만 걸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다리의 힘이 스르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양재천을 빠져나와 지하철 역 앞까지 갔는데 한 걸음도 더 떼놓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지요.  그렇다고 귀가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거의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지요.

하필이면 왜 50㎞ 걷기인가 궁금하실 겁니다. 사실은 걷기 모임인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에서 한강변 울트라 도보를 주최했기에 참석했습니다. 종목은 100㎞와 50㎞ 이렇게 두 가지였습니다. 100㎞는 25시간 안에, 50㎞는 12시간 안에 걸으면 완보입니다.

100㎞는 20명이, 50㎞는 100명이 참석했는데 100㎞는 10명, 50㎞는 49명이 완보했다고 합니다. 100㎞를 가장 빨리 걸은 분의 기록은 16시간 35분. 이 분은 거의 경보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뒤에 처져서 걷느라고 이 분이 걷는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나중에 휙휙 바람처럼 날았다고 하는 '전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가끔은 엉뚱한 짓을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이번 울트라 도보가 그랬습니다. 50㎞, 한번 걸어봐? 사람이 하는 짓인데 못할 거 없지 않겠어? 이랬던 것이지요. 아무것도 모를 때는 쉽게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난번에 35㎞를 걸어보니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쉽지 않더군요.

울트라 도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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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탓인지 울트라 도보하는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 부근이 영 불편했습니다. 이러다가 채 10㎞도 못 걷는 것 아냐, 불안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시작도 안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 걷기 시작하고 두 시간쯤 지나자 괜찮아졌습니다.

울트라 도보의 출발지는 구일역입니다. 가벼운 준비운동을 하고, 11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한강변을 따라 계속 걷다가 청담대교 아래서 양재천을 돌아 광진교까지 가면 50㎞를 걷는 것이지요.

날씨는 약간 흐립니다. 햇빛이 쨍쨍한 것보다는 흐린 날이 걷기에 더 좋지요. 그래도 햇볕에 탈 것에 대비, 선크림을 얼굴에 듬뿍 발랐답니다. 흐린 날에 더 많이 탄다면서요?

한강변에는 유채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날 서래섬에서는 유채꽃 축제가 열렸지요. 아마 지금도 유채꽃이 많이 피어 있을 겁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한강변은 사람들로 넘쳐 났습니다. 무리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나물을 뜯으러 나온 사람들도 보입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들, 족구를 하는 사람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 때 어디선가 풍물소리가 신나게 들려 왔습니다. 찾아보니 풍물패 동아리로 보이는 학생 여러 명이 풍물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습 장소를 참 잘 잡았네요. 너른 한강변에서야 아무리 시끄럽게 꽹과리를 두드려대도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겠지요.

12시 50분쯤 성산대교 아래를 지납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합니다. 아직까지는 걷기가 즐겁지요. 한강변을 둘러보면서 경치 구경하고, 길 가의 들꽃을 보고, 사람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 하지요.

1시 56분, 한강변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그들 뒤에는 자전가 두 대가 풀밭에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나 봅니다. 말없이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그런지 연 날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오렌지 빛 문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람을 타면서 날고 있습니다. 스텔스기 연도 있습니다. 색다른 모양의 연은 눈길을 끌기 마련이지요. 아이가 어렸을 때 한강변에 나와 연을 날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참 좋아했지요.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네요.

문어 연이 바람에 날립니다.
 문어 연이 바람에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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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 자전거가 달려갑니다.
 외발 자전거가 달려갑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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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한강에서 연을 날리자

나비가 전시되어 있는 게 보입니다. '세계 희귀 곤충전'이라고 하네요. 걷는 중이지만 잠깐 구경하고 갑니다. 나중에 다시 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지요.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보니 울트라 도보가 우선인지, 구경이 우선인지 헷갈리긴 합니다. 이러니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겠지요?

우와, 외발 자전거다! 커다란 외발 자전거가 지나갑니다. 구경하느라 사진을 찍을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바퀴가 흔들리면서 위태로워 보이는데도 잘 굴러갑니다. 페달이 위쪽에 있어 내릴 때 누군가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합니다.

두 번째로 만난 외발 자전거는 제 앞을 지나간 뒤에야 겨우 뒷모습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울트라 도보에 도전했던 분이 "세상의 자전거란 자전거는 죄다 구경했노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자전거들이 한강변에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많은 자전거가 출현하고 있으니 자전거 충돌사고가 날 만도 하겠지요? 자전거 충돌사고를 두 건이나 목격했습니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적도 있고, 넘어지는 사람들도 봤지만 충돌사고는 이날 처음 보았습니다.

첫 번째 충돌사고는 한 사람이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도로를 가로지르다가 달려오는 자전거가 부딪혀 일어났습니다. 달려오는 자전거를 보지 못한 채 조심성 없이 도로를 가로지른 사람이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별다른 문제없이 두 자전거는 제 갈 길을 갔지요.

그런데 두 번째 사고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앞서 가던 자전거를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자전거가 들이받은 것이지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고, 자전거 두 대가 쓰러졌지요. 헬멧을 안 쓴 앞 자전거 운전자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은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뒤 자전거 운전자가 그 옆에 앉아 걱정스럽다는 듯이 손을 내밉니다.

사고 경위를 둘러싸고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보니 걱정이 되더군요. 누구의 잘못인지 얼른 가늠이 되지 않았거든요. 두 사람은 한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강변의 자전거도로 곳곳에 '사고가 많은 곳 속도를 줄이시오'라고 쓴 빨간 표지판이 여럿 있더군요. 그만큼 사고가 많이 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자전거 사고 조십합시다.
 자전거 사고 조십합시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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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충돌사고 조심합시다

커다란 현수막을 앞세운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큰 소리를 내면서 달려옵니다.

"세금폭탄 대운하 반대."
"2주일 동안 자전거 타고 왔어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대운하 반대 캠페인을 자전거 타면서 하는 중인가 봅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온 거라고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휙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행이 제법 많네요. 대신 손만 흔들어 주었습니다. 대운하는 저도 반대거든요. 힘내세요!

오전 11시에 시작된 걷기는 오후 6시에도 계속 됩니다. 종아리가 무거워진 것은 당연하고, 허벅지도 뻐근합니다. 강물은 흐르지 않고 가만히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늘빛이 조금씩 달라질 즈음 양재천으로 접어듭니다. 양재천생태공원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입니다. 양재천 주변은 잘 꾸며놓았습니다. 징검다리도 있고, 쉼터도 있네요. 양재천변 역시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0㎞를 걸었더니 다리는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졌습니다. 터덜터덜 걷는데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옵니다. 양재천 가운데에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 위에서 한 남자가 색소폰을 붑니다. 남자 뒤로 '한강 색소폰 동호회 정기공연'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색소폰 소리는 양재천의 물을 따라 흐르고, 바람을 따라 날아갑니다.

색소폰 연주는 어두워진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양재천에 울려 퍼진 은은한 색소폰 소리는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마음은 촉촉이 젖어드는데 다리는 여전히 무겁네요.

35㎞ 지점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해는 이미 졌습니다. 어두운 양재천변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 참 맛있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때문이겠지요.

신발 안에 작은 모래알갱이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편했는데 양말을 벗고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집이 생기려는 건가 싶더군요. 오른쪽 발뒤꿈치에 통증이 느껴져 살펴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이 없는데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니 아프네요. 양말을 다시 신는데 꽤 아픕니다. 탈이 난 것 같습니다.

대운하 반대합니다.
 대운하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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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무지개 다리
 양재천 무지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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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가 남았는데 어떻게 하나...

앞으로 15㎞를 더 가야 완보를 합니다. 식사를 하고 났더니 긴장이 풀립니다. 그만 걷고 싶다, 아우성이 마음 속에서 들려옵니다. 그래도 걸어야지, 일어납니다. 해는 졌으나 양재천은 가로등 불빛 덕분에 어둡지는 않습니다.

한 십 분쯤 걸으니 양쪽 무릎관절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계속 걸어야 할지, 이쯤에서 그만 포기를 해야 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걷자, 그만 두자, 걷자, 그만 두자.

35㎞가 나의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계속 걸어보자, 이러면서 속도를 조금 높입니다. 주변이 어두우니 둘러볼 것도 없지요.

결국 40㎞ 지점에서 그만 걷기로 합니다. 이 정도 걸었으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지요? 그 때 시간이 9시. 10시간을 걸었네요. 점심, 저녁 식사시간과 잠깐의 휴식 시간을 빼면 9시간이 조금 넘게 걸었습니다. 끝까지 걷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는 울트라 도보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 번쯤 경험삼아 걸어보는 거지 무모하게 걷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찬찬히 울트라 도보를 되새겨보니 기회가 닿으면 또 걷겠다고 나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걷기가 은근히 중독성이 강하거든요.


태그:#도보여행, #한강, #울트라도보,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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