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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국제출판협회 서울총회 참가차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다.
 2006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국제출판협회 서울총회 참가차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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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소설가 오르한 파묵(터키)이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IPA) 서울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내 이름은 빨강>을 비롯해 <하얀 성> <검은 책>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파묵은 12일 IPA 총회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강연을 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방문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찾은 파묵을 만나보자.

-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소감이 어떤가.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서 기쁘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IPA 총회 참석과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이스탄불>이라는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 6년 동안 작업한 신작소설을 끝마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 지난 7일 한국에서 출간된 <이스탄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스탄불>은 22살까지의 내 삶을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7살 때부터 22살까지의 내 꿈은 작가가 아니라 화가였다. 청소년기에는 이스탄불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그래서 이 책은 이스탄불 도시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이스탄불의 사원이 어디 있고, 관광지가 어디라고 말하는 관광책자는 아니다. 풍경의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 감정을 담은 책이다. 더불어 작가가 되기 전의 내가 젊은 시절에 품었던 분노와 고민, 도시에 대한 상념들이 담겨 있다."  

- 작품이 세계 56개 언어로 번역돼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각 나라의 문화를 넘나들고 소통할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터키가 아닌 다른 나라에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하얀 성>(1985) 때부터다. 서른 살이 됐을 때 처음으로 내 작품이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각 나라마다 잘 읽히는 책이 다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눈>이, 중국과 한국에서는 <내 이름은 빨강>이, 이탈리아·스페인에서는 <이스탄불>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국과 유럽은 정치적 이슬람주의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 것 같고, 스페인은 이스탄불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이름은 빨강>이 중국과 한국에서 읽히는 것은 확실치는 않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인 것 같다." 

- 오늘 IPA 개막연설에서 '안과 밖'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내 안의 금기, 경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금기는 안과 밖에 모두 존재하는데, 밖이라고 하면 사회적인 것, 법적인 것, 정치적인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내 안의 금기이다. 우리 안의 금기. 그것은 행동방식이 될 수 있고, 생각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또한 모두가 무감각한 것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바로 그처럼, 우리 인간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문제, 그 경계에 대해 말하고, 그것들을 허물고자 글을 쓰는 것이다."

- 2005년 한국 방문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스스로 변화를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우선 집 문 앞에 경찰들이 더 많아졌다.(웃음) 터키의 비민주적인 역사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 때문에 테러위협을 받고 있는데 3년 사이에 극심해졌다. (* 오르한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 직전 "터키가 아르메니아인 100만 명을 학살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발표해 터키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또 많은 책들이 외국어로 번역됐고 노벨상도 받았다. 보통 노벨상을 받으면 은퇴하는 분위기가 되는데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매년 가을 학기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내가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행복을 얻는 것은 독자가 그렇게 내 덫에 걸려들어서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내가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행복을 얻는 것은 독자가 그렇게 내 덫에 걸려들어서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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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위협과 관련해 사회적 금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듣고 싶다.

"작가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작가로서 내가 생각한 바를 썼던 것이고, 그것은 '언론 자유의 문제'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과거 잘못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는데 그러한 사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금기시하는 것에 화가 났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와 폭력에 대해 말하고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6년 동안 작업한 작품을 막 탈고했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인가.
"<순수박물관>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나에게는 꽤 방대한 작업이었다. 소설은 1975년부터 현재까지 파노라마식으로 연결되는데 상류사회의 한 남성이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주 골격이다. 이스탄불의 상류층과 중류층 사회를 다루었고 특히 이들이 얼마나 서구화되기를 원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 <이스탄불>에서 나와 있듯이 작가의 꿈은 화가였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아마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토끼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봤을 때처럼 놀란다. 왜냐하면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을 쓰면서 그 질문에 대해 많이 곱씹어 보게 됐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싫어졌고, 대신 글을 쓰는 기쁨이 생겼다. 근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난 자연스럽게 가족에게 화가가 아니라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나의 모든 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알기는 힘들 것이다.(웃음)"

- 글을 쓸 때 습관이나 특별한 태도가 있다면?
"작품을 쓸 때 충동적으로 쓰는 편이다. 이번 <순수박물관>을 탈고하고도 3달 동안 에디터, 조교와 동거동락하며 퇴고작업을 거쳤다. 에디터와 조교는 나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데 가령 이런 것이다. '30쪽에 있는 사물이 570쪽에 다시 나오는데 독자들이 이걸 어떻게 기억하나요?'라는 것이다. 그러면 난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대답한다. 내 책은 삶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누군가를 만나듯 내 책속에서 독자들은 잊고 있던 어떤 것을 다시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다."

- 소재나 이야기들이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읽다보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읽을수록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굉장히 통찰력 있는 말이다. 내 책은 처음에는 독자를 손님으로 맞이해서 응접실로 앉히고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그렇게 독자는 내가 쳐놓은 덫에 걸린다. 내가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행복을 얻는 것은 독자가 그렇게 내 덫에 걸려들어서 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한 번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읽히면서 새로운 것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 앞으로 작품 계획은?
"이번 신작을 탈고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제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라고 소리치자 바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뭔가를 쓸 껄!'. 뭔가를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밝히지는 않겠다. 근접한 출간 계획은 하버드 대학에서 '소설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했던 강의록이 곧 나올 예정이다."

12일 오후 4시부터 강남 교보빌딩 23층 문화이벤트홀에서 진행된 '오르한 파묵과 황석영의 대담한 대담' 모습
 12일 오후 4시부터 강남 교보빌딩 23층 문화이벤트홀에서 진행된 '오르한 파묵과 황석영의 대담한 대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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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르한 파묵은 이날 기자간담회 이후 오후 4시부터 강남 교보빌딩 문화이벤트홀에서 소설가 황석영과 '경계와 조화'라는 주제로 공개대담을 가졌다. 200명의 독자들과 함께한 대담에서 파묵은 "작가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경계를 발견하고 깨는 것"이라고 말했고, 황석영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서구문학이 주입한 화법과 문법이 아닌 자기만의 목소리로 세계의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에 대한 물음에 대해 파묵은 "작가로서 35년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면서 "양분화에 대해 믿지 않으며 마음 속에 우러나오는 것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황석영 역시 "작가는 국적, 민족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면서 "베를린 망명자로 살면서 나는 세계시민이 되겠다고 말한 바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태그:#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황석영, #이스탄불,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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