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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0일) 자운영 축제가 열리는 대전 중구 산서동에 다녀왔습니다. 나지막한 산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옆에 있는 그리 넓지 않은 들녘에는 자주색 자운영 꽃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는 자운영이 꽃물결을 만들고, 흔들리는 꽃 따라 바쁘게 날갯짓하는 꿀벌들은 로또에 당첨된 양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나선 축제장에서는 연신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리고, 여기저기에서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늘 빠지지 않는 소리도 꼭 있지요. "너 왜 이렇게 엄마 염장을 질러~~, 나 때문에 여기 왔어? 너 때문에 왔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자운영 꽃', 이름만 들어도 올해 팔순이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어머니는 마흔셋에 낳은 늦둥이인 저를 데리고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다니길 좋아하셨습니다.

 

위로 누나 셋, 그리고 그 밑으로 아들만 셋인 우리 형제는 제 바로 위 작은 형이 저와 일곱 살 차이니까 그 당시 어머니의 말 상대는 저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밭에 가서 풀도 메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논두렁에 콩도 심으셨습니다. 심지어 저를 윽박질러 대문 앞 길가에 화단을 만들고, 철마다 꽃을 심기도 하셨죠.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말대로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꽃' 심는 데에 어린 막내까지 동원시키셨으니 저희 어머니 꽃 사랑도 대단하시지요.

 

그 마음 지금도 변함없으셔서 시골 어머니 방에는 먼지 묻은 조화들이 가득합니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시니까 며느리들이 화분에 담긴 꽃을 여러 번 사다드렸는데, 금세 시드는 화분의 꽃은 그리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이 더 좋다"는 어머니 말씀에 딱 맞는 조화가 해를 거듭하면서 TV 주위를 가득 메우게 됐지요.

 

그렇게 꽃 사랑이 유별나신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나물 뜯으려고 들에 나가셨었는데, 유독 자운영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달래, 냉이, 씀바귀는 물론, 돌나물과 벌금자리, 쑥, 비름나물 등을 알려주시면서 "밑둥까지 잘 보고 뜯으랑께~!"라고 하셨고, 민들레와 질경이를 가리키시면서 "옛날에는 이런 것들도 다 먹었어"라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에는 논바닥에 가득 핀 보라색 꽃을 가리키시며 "너 이게 뭔지 아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친구들과 해야 할 공차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생각에 온통 뾰로통한 제가 그게 무슨 꽃인지 알게 뭡니까? 그냥 "몰러~"라고 답했죠.

 

듣는 둥 마는 둥 대답도 없이, 아무 풀이나 손으로 쥐어뜯고 있는 제게 어머니는 "자운영이여, 이게… 이것도 뜯어다 삶아서 무쳐 먹으면 월메나 맛있는디~~"라고 말하시고는 추억에 잠기셨습니다.

 

어머니가 풀어 놓은 자운영에 얽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어머니는 그야말로 먹을 게 없어 배곯이를 밥 먹듯이 하셨답니다. 자운영 꽃이 피어날 5월 초 쯤이면 더욱이 먹을 게 없어서 산과 들의 풀이랑 나무는 모조리 뜯어오셨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늘 배고픈 나날을 보내셨답니다.

 

그런 그 동네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이 집은 자신들의 논에 자운영을 가득심어 이를 소에게 먹이기도 하고, 거름으로 쓰기도 했답니다. 당연히 이웃들의 표적이 되었고, 호시탐탐 '자운영 서리'만을 노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사는 어머니 이모뻘 쯤 되는 분이 한밤중에 어머니를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나가보니 소쿠리에 자운영을 가득베어 담아서는 삶아서 같이 먹자고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들키면 어떡하느냐'면서 '안 된다'고 했지만, 그 분은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며 어머니를 꼬드겼답니다. 그래서 한 밤중에 불을 떼어 자운영을 삶아 나물로 무쳐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고, 남은 자운영은 장독에 숨겨 놓았답니다.

 

당연히 다음날 동네는 난리가 났고, 범인은 금세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공범인 어머니는 어린 나이였기에 놔두고, 그 이모뻘 되는 분은 자운영 주인의 손에 이끌려 읍네 일본인 순사 앞에 내동댕이쳐졌답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일본인 순사는 오히려 자운영 주인에게 "배고파서 풀 좀 뜯어 먹었다고 어떻게 한 동네에서 이럴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고, 그 분을 순순히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때 먹었던 자운영 나물의 맛과 잡혀갈까봐 덜덜 떨었던 기억을 80평생 동안 잊지 않고 계시다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가슴 아픈 추억을 듣고 자란 저도 왠지 자운영 꽃만 보면 항상 가슴이 아립니다. 자주색 물결이 가득한 축제장에서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이 넓은 자운영 꽃밭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분명 어머니는 "워메, 겁나게 많네…. 야 이 꽃 좀 봐라, 시상에 어쩜 이리도 곱다냐" 하셨을 겁니다. 금세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지금도 우리집 냉장고에는 며칠 전 뵙고 온 어머니가 싸주신 온갖 채소와 나물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연명하는 우리는 그 영양 많고 맛좋은 온갖 나물들을 천대하고 살고 있지요. 바보같이 말입니다. 오늘은 꼭 나물 무치는 비법을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태그:#자운영, #산서자운영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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