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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전망 바뀌었다. 1~4월 물가 움직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왔다. 올해 물가 상승률에 대한 작년 12월 전망치 3.3%보다 높을 것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8일 오전 기준금리 5.0% 유지 결정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말이다.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도 크지만 물가 상승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동결을 결정한 직후 오전 11시 20분께 기자들과 만나 다시 한 번 물가 안정 의지를 보였다. 그는 또한 물가 안정보다 경제 성장에 집착하는 정부를 조심스럽게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40분 동안 진행된 회견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4.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 역시 강하게 나타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경제 상황 여건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견해도 밝혔지만, "5월 동결됐다고 해서, 6월에도 동결된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말해 금리 인하에 대한 여지는 남겼다.

 

원유 상승에 환율 급등까지... 소비자 물가 '빨간 불'에 금리 동결

 

먼저 이성태 총재는 한국은행이 내놓았던 올해 여러 경제 전망치들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모두 안 좋은 쪽으로의 수정이다. 공식적인 수정 전망치 발표는 7월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올해 물가상승률은 3.3%, GDP 성장률은 4.7%, 경상수지 적자는 30억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성태 총장은 "물가는 3.3%보다 높고 GDP 성장은 4.5%도 안 될 것이고, 경상수지 적자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금리 동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물가 상승의 심각성을 털어놓았다.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목표인 2.5~3.5%를 계속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1% 상승했다. 이는 3월(3.9%)보다 높은 것으로 물가 상승률이 상승 추세에 있음을 나타낸다.

 

부동산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4월 중 아파트 매매가격이 3월보다 1.0% 상승했다. 3월에 0.6%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의 확대가 눈에 띈다.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 역시 3월 0.5%에서 4월 0.6%로 오르는 등 오름세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성태 총재는 "국제 유가의 상승이 주요 원인이지만, 원화 약세 역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8일 원화는 전날보다 23.5원 폭등해 1달러 당 1049.6원으로 마감됐다. 연초 930~40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3개월 새 100원 가까이 올랐다.

 

이성태 총재는 "원화 약세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우리의 수입규모가 4000억 달러로 우리나라 GDP 1조 달러의 40% 이상 차지하는 상황에서 환율 변동의 파괴력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원화 약세가 수입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날 금리 동결 결정에는 유동성 증가도 한몫을 차지했다. 시중에 풀리는 돈이 많아짐에 따라 물가 상승의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통화와 유동성지표 동향 보고서'에서 "2년 이하 정기 예·적금 등이 포함된 광의통화(M2)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9%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2002년 12월(14.1%)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4월엔 14%대 중반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중유동성의 급증은 기업과 가계 부문의 대출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 금리 인하 여지도 내보여... 정부 압력에 굴복?

 

 

이날 이성태 총재는 정부의 경제 성장 중심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통화당국이나 경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쪽은 성장률 하나만 가지고 경제정책을 잘했다, 잘못했다고 볼 수 없다, 몇 가지를 가지고 적절한 정책이었느냐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 성장뿐 아니라 물가 안정 역시 중요한 경제 정책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경우 내수 진작 효과가 상황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0.25%포인트를 낮추는 것에 대한 효과가 작게 보인다고 해서 작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계량 분석 결과, 과거 평균적인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 GDP 성장률을 0.1%도 올리지 못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금리 인하의 여지도 열어뒀다. "경제 상황에 변함이 없으면, 금리 유지 기조를 계속 가져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번 달 동결했다고 해서, 6월 이후에도 동결한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성태 총재의 이런 발언은 경기 하강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장률은 하반기로 가면 더 떨어질 것 같은데, 물가는 연말에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행법 제1조가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유일한 목적이 물가 안정이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 압박을 하는 것은 위법한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고, 그것을 교사하는 행동은 나쁜 것"이라고 전했다.


태그:#금리, #금리 동결, #물가상승, #물가,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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