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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받쳐든 채 조삼조심 어머니를 모시고 걸어가는 모녀(신원사).
 우산을 받쳐든 채 조삼조심 어머니를 모시고 걸어가는 모녀(신원사).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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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오랜 불화를 회상하며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말이 좋아서 어버이날이지 실상은 어머니날이나 마찬가지다. 행여라도 아버지들이 소외를 느낄까 봐 살짝 '끼워넣기'한 것이라는 걸 잘 안다. 우리 아버지들이 한 게 뭐 있다고 대우를 바랄 것인가.

내 또래 나이의 사람들에게 있어 아버지란 결코 유쾌한 존재가 아니다. 어릴 적에 내 눈이 목격한 아버지란 존재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아무런 벌이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잔뜩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서 툭, 하면 작대기로 때리거나 노란 양은 주전자를 던져주며 돈도 주지 않고 술 사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나 기물이나 부수는 아버지도 허다했다.

오죽하면 이성복이 80년대 벽두에 낸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속에 든 한 시편에서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해"(시 '어떤 싸움의 기록' 일부)라고 일갈했겠는가.

내 또래의 사람들이 아버지에 품었던 반감은 결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왕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였다는 이야기로부터 비롯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는 적어도 우리 세대에겐 "해당 없음"이다. 어머니의 살집을 뜯어먹고 사는 못난 존재에 대한 반감이었다고나 할까. 어릴 적 가난이 싫어 소 판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했다는 왕회장 정주영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난이 싫"었다는 건 가난을 천형으로 짊어지게 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감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해는 마시라. 우리나라 아버지들 전부가 다 그랬다는 건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 같은 분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효자셨다. 나이 쉰을 넘어서도 할아버지 말씀을 들을 적엔 항상 무릎을 꿇고 들을 정도였다. 사는 데도 아주 성실하셨다.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사셨으며 남에게 줄 단돈 십 원 한 장조차도 꼼꼼하게 기록할 만큼 정직하신 분이셨다. 소시민으로서 아버지의 삶은 자식인 내게 마땅히 존경받고도 남는 삶이었다. 그러나 난 아버지와 길고 오랜 세월 동안 불화를 겪어야 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아버지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따위를 느낄 이유도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사춘기 이후, 내겐 어느새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싹텄다. "난 결코 아버지처럼 현실에 붙들려 이상 없는 삶을 살지 않겠다." 아버지 또한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채 세상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이 어찌 마음에 들겠는가. 못마땅함은 꾸지람으로 되돌아왔고 그만큼 아버지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세상의 자식들이 다 경험하는 오해를 나 역시 경험한 것이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먼저 앞세우는 존재다. 지금은 시절이 달라져 '친구 같은 아버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겉으로는 된통 꾸지람을 할지라도 속으로는 자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네에 나가면 기꺼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며 팔불출을 자청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세상의 많은 자식들은 이 점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발견하는 내 안에 숨겨진 부모의 모습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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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오랜 불화를 청산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 처음 맞는 아버지 생일 때였다. 아버지 생일을 맞아서 집에 들른 나는 아버지는 함께 할아버지 묘소에 들렀다. 묘소를 참배한 후 아버지와 함께 음복을 했다. 아버지와 처음으로 함께 마시는 술이었다. 그 계기를 빌어 "그동안 아버지께 죄송했습니다"라고 사죄했다.

이전의 난 아버지에게조차 오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버지보다 배움이 훨씬 많은데 왜 아버지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하곤 했으니까. 그러나 차츰 나이 들어가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자식은 아버지란 존재에겐 말보다 행동으로써 믿음을 주는 게 옳다는 것을.

마음이 풀리신 아버지도 "너를 많이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뤄진 화해는 단 5일밖에 가지 못했다. 5일 후에 일어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 짧은 화해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내 마음이 어쩔 뻔했는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 동생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라고. 나 자신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도 말이다. 내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의 성실함을 흉내나 낼 수 있겠는가.

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그렇게는 살지 않으리라 나, 꼭꼭 다짐했건만
살아가기 결코 녹록치 않았네
결혼해서 남편과 또 피 터지게 싸워가면서
내 아이들에겐 또 말 못할 상처를 입혀가면서

세상살이에 무능했던 내 부모님을 한때 부끄러워했지만
살아가면서 내 안에 숨겨진 그들의 핏줄을 나 이제
깊이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하듯
언젠가 내 아이들도 제 못난 아비 어미를 또
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할 것을 굳게 굳게 믿으며

- 양정자 시 '삶' 전문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양정자 시인은 1990년 첫 시집 <아내일기>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분이다.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그동안 낸 시집으로 <아이들의 풀잎노래>, <아내 일기>, <가장 쓸쓸한 일>, <내가 읽은 삶> 등이 있다.

이전에 펴낸 시집에서 생활 현장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던 양정자 시인은 2004년에 낸 이 시집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화려한 수사 대신 쉬운 일상 언어를 그대로 살려 쓴 게 그의 시가 가진 힘이다. 이 '삶'이란 시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에 들어 있다. 시집 맨 끝장에.

"세상살이에 무능했던 내 부모님을 한때 부끄러워했"던 시인은 이젠 "내 안에 숨겨진 그들의 핏줄"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어쩌면 이해와 용서라는 덕목은 무정한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무이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렸을 적엔 부모가 가진 한계를 엿보며 부모와는 다른 삶을 꿈꾸지만 나이 들면 결국 부모와 똑같아진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한 것인지 모른다. 시 '삶'은 너저분한 설명 따위 없이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시다.

차라리 옛날처럼 지긋지긋한 아버지였으면

이 시집 속에는 이 시 말고도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일련번호를 매긴 시가 6편이나 더 들어 있다. 여기서 글을 접기엔 마음이 너무 애잔하다. 지루함을 참고 아버지에 대한 시 한 편을 더 읽어 보기로 하자.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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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 최승자 시 '귀여운 아버지' 전문  

계간 <문학과 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나온 최승자 시인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인이다.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즐겨 존재의 무력감과 절망을 노래한다. 그가 쓰는 시는 자신을 겨냥한 비수다. 자신을 처형함으로써 세상을 처형하는 것. 그것이 그가 세상을 노래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시 '귀여운 아버지'는 1993년에 상자한 시집 <내 무덤, 푸르고>에 들어 있는 시다. 시인의 아버지는 "(전직 대통령) 박씨보다 무섭고, (전직 대통령)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넘어 제왕 같은 아버지인 모양이다. 그렇게 서슬 퍼렇던 아버지건만 이젠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처지가 됐다. 시인은 그렇게 '종이호랑이'로 변해버린 늙은 아버지가 귀엽다고 이죽거린다.

그러나 이 이죽거림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극대화하려는 시적 장치다. 그 시적 장치가 "오, 가여운 내 자식"이라는 마지막 구절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아버지=자식이 돼버리는 전도된 관계의 등식이 시를 읽는 이를 아련한 슬픔에 젖게 한다. 무지막지한 아버지일수록 늘그막에 이르면 더 '귀여운 아버지'가 되고 더 '가여운 내 자식'이 되는 생의 아이러니.

삶에는 어려운 단어가 참 많다. 그 대표적인 단어 가운데 하나가 '부모'라는 단어다. 현미경 같은 눈으로 자식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때문에 늘 걱정거리가 많은 어머니라는 존재, 망원경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조금은 느긋하게 자식을 지켜보는 아버지라는 존재. 뜻풀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 의미에 완벽하게 도달하는 데는 숱한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지.

아아, 망원경을 사용하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아버지에게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을 좀 더 많이 배워야 했던 것을….


태그:#아버지 , #양정자 ,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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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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