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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폭력에 맞서 행동하기

 

세계여성기금 창립 대표 앤 퍼스 머레이가 지은 책이다. 주로 세계여성기금이 만들어진 배경과 경영철학, 경영방식에 대한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만나는 세계 곳곳의 여성단체들, 여성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계 인구의 51%를 차지하지만 여성은 무보수 가사노동을 거의 전담한다. 조직화된 의료 서비스들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보건 활동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보건 서비스에 접근할 균등한 기회조차 없다. 세계 식량의 반 이상을 생산하지만 세계 토지의 1%만을 소유한다. 세계 임금 노동의 1/3을 차지하지만 최저 임금 직종에 집중되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자 아이들의 수가 여자 아이들의 수보다 800만 명이 많다. 입법 기관에서 차지하는 여성 의석수는 10%를 넘지 않는다. " (요약 발췌)

 

많은 여성학 서적들이 피해를 강조하는 까닭에 가끔 읽기 싫을 때가 있다. 물론 여성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 역시 여성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작가 자신도 "너무 많이 배우면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뒤늦게야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들을 모아 시작한 '세계여성기금'은 저자에게 여성들을 조직하는 법, 단체를 만들고 경영하는 법, 모금하고 그것을 다시 기부하는 법 등에 대한 기회를 주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암담한 현실과 사악한 여성 폭력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위한 낙관적인 책이다.

 

비전과 절차, 구조를 조화시키기

 

재무제표와 경영 스케쥴 같은 아주 실무적인 사안들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성들의 합의를 거치는' 비효율적 시스템도, '완전히 폐쇄적인 엄격한 위계질서'의 효율적인 시스템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 '열린 패러다임'으로 NGO에 기업 경영 방식을 채용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휴렛 재단에서 일하던 당시의 고민부터 세계여성기금 탄생 9주년 해에 퇴임하기까지 저자 자신의 고민이 녹아 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과 상아탑에서 연구하고 글깨나 쓰는 사람들 사이에는 늘 틈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유별나게 상상력이 풍부한 몇몇 여성단체들이 이런 종류의 통합과 협조를 시도한 사례들을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 위치한 '행동과연구를위한여성연합(AWARE)'이라는 단체는 연구자, 정책 입안자, 서비스 제공자를 연결시킨다. 이들 모두가 가정폭력과 관련된 이슈에 매달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109쪽)

 

저자의 고민은 효율적인 경영방식과 '여성 임파워먼트'라는 다소 이상적인 목표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로 집약된다. 비전과 일치하는 절차 및 구조를 유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이 책의 줄기다.

 

기금을 설립하고 서너 해 지났을 때, 직원들 가운데에는 라틴계 여성 한 명, 남아시아 출신 여성 한 명, 미국 국적이 아닌 백인 여성 두 명, 레즈비언 한 명, 양성애자 한 명, 미국 백인 여성 한 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사회에도 미국계와 비미국계가 반반이었다. 우월성, 지배, 최고가 아니라 서로를 지지하고 가치를 인정하며 책임과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리더십이 중요했다.

 

분리보다는 통합을 위한 조직력

 

세계여성기금으로부터 지원받은 각국의 여성 단체들이 어떤 활동들을 펼치는지도 소개한다. 체코, 말라위, 브라질, 이스라엘,카메룬 등 각 지역의 여성들이 서로 네트워크하고 '여성들이 모은 돈'으로 '여성평등을 위한 활동'을 지원한다. 여성 단체에는 가끔 서로간의 차이에 의한 반목이 생겨난다. 그럴 때 '싸우고 쫑나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논의하고 발전가능한' 여성 조직력이 절실하다. 바로 그 순간들을 위해 <아주 작은 시작이란 없다>는 한결같이 용기를 불어넣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기억하라'는 제목으로 각 장마다 삽입된 지침들이 특히 힘있다. 그 중 한 목록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은 사회 변화의 강력한 힘이다. / 제외시키기보다는 포괄해라. / 다양성을 존중해라. /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라./ 분리시키기보다는 연결시켜라. 분열보다는 통합을 선택해라. / 후하게 아낌없이 주라. 탄력적인 포괄 지원을 제공하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 블로그 부표(浮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계여성 금, #여성 임파워먼트, #NGO경영, #앤 퍼스 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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