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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이름으로 300번째 글을 띄웁니다. 우리 말에 마음을 쓰자면서 적바림해 온 '우리 말 다듬기'란 어떤 일이고, 이러한 일은 누구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적어 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발걸음을 이어서 500번째와 1000번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기자 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기쁘면 눈물까지 다 날까' 생각하는 한편으로, 왜 "기쁨 + 의" 꼴로 말을 하나 생각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기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기쁨이 대단해서, 북받쳐오르는 느낌을 어쩌지 못하면서요. 그러니까 "기쁨이 대단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기쁨이 북닫쳐올라" 눈물을 흘립니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기쁨에 겨우니" 눈물이 납니다. "기쁜 나머지" 눈물이 솟습니다. "기쁘다 못해" 눈물이 흐르고 "기쁨이 가득하며"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집니다.

 

하나하나 말 다듬기를 해 보는데, 문득, 이렇게 말 다듬기를 하는 일은, '말 고치기'를 넘어서 '말 살리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말 살리기가 되지 않고 말 고치기에 머물면, 저로서는 일하는 보람이 없고, 제가 애써 한 일을 받아들여 줄 사람 또한 없을지 모릅니다.

 

시를 좋아하여 늘 시를 읽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뭇사람들 시집을 읽습니다. 저도 시랍시고 깐죽거려 보지만 영 내키지 않고 못마땅해서 구겨 버립니다. 제가 쓴 시는 어줍잖고 다른 이들이 쓴 시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자기를 깎아내리는 일은 옳지 않다지만, 훌륭한 시를 써내는 분들 시를 읽으며 가슴을 촉촉히 적실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시쓰기가 아니랴 생각합니다.

 

 ┌ 경제 만능의 시기

 │

 │→ 돈이면 다 된다는 때

 │→ 돈이면 그만이라는 때

 │→ 돈만 중요하다는 때

 │→ 돈만 앞세우는 때

 └ …

 

하루에도 여러 열 번, 말 다듬기를 해 봅니다. 제가 읽는 책에서 보기글을 뽑습니다. 제가 읽는 책을 쓰신 분들은 당신들이 쓴 글을 누군가 말 다듬기를 하면서 고쳐 놓고 있음을 조금도 모르시리라 봅니다. 안다고 해도 그다지 눈길을 안 두리라 봅니다. 그러나 저는 말없이 열 몇 해에 걸쳐서 말 다듬기를 해 봅니다.

 

재미없거든요. 따분하거든요. 딱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과 아쉬운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경제 만능의 시기"라는 말은 얼마나 가난한 말씀씀이인가요. 우리들은 왜 이러한 말을 써야 할까요. 말 한 마디를 읊는다고 해도 우리 속내와 속뜻과 속생각을 고루 담아내는 말 한 마디로 영글어 볼 수 없는지요.

 

오늘날 세상은 "경제 만능의 시기"인가요? 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로는 "돈이면 죽어도 좋다"는 세상입니다. "돈이면 며느리 속옷도 내어주는" 판입니다. "돈만 준다면 사람 죽이기도 서슴지 않는" 노릇입니다.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 모두 시를 써요>라는 이름을 붙인 '어린이 글쓰기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시를 쓰자는 말, 참 따뜻하게 들립니다. 시를 쓰며 살아야지요.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눈길을 키우고, 세상을 깊이깊이 파헤칠 줄 아는 눈썰미를 기르며, 세상 구석구석 보듬을 줄 아는 눈매를 북돋우는 시마음을 가꾸어야지요.

 

시를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랴 싶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평화와 평등을 찾는 사람이 아니랴 싶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 삶과 이웃 삶을 고이 아끼며 일구어 가는 사람이 아니랴 싶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우리 삶터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신문기사를 쓰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는 마음으로 스승한테 즐거이 배우는 한편, 시를 쓰는 마음으로 내 재산을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가면 우리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요.

 

 ┌ 간고를 이겨 내다

 │

 │→ 어려움을 이겨 내다

 │→ 괴로움을 이겨 내다

 │→ 가난과 어려움을 이겨 내다

 └ …

 

또다시 말 다듬기를 합니다. '간고(艱苦)'라는 낱말이 가여워 보여서 말 다듬기를 합니다. '간고'란 무엇일까요? '간난신고'란 또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이러한 말에 매여 있을까요? 지금 우리들은 돈살림만이 아니라 말살림이 가난한 채 살고 있지 않나요? 어디엔가 넋을 빼놓은 채, 어느 곳엔가 얼을 흘려놓은 채, 휘적휘적 장님 걸음을 하면서 전봇대에도 부딪히고 울타리에도 부딪히고 옆사람 발등도 밟으면서 멋대로 나뒹굴고 있지 않나요?

 

 ┌ 어미젖 (o)

 ├ 엄마젖 (o)

 ├ 어머니젖 (o)

 └ 모유 (x)

 

의사들은, 또 기자들은, 또 지식인들은, 또 교사들은 한결같이 '모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젖'을 말합니다. 어느 시골마을 사람은 '어무이젖'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고을에서는 '어매젖'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 장님 (o)

 └ 시각장애인 (x)

 

장님은 장님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아닙니다. 장님을 '시각장애인'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장님 삶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장님 대접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장님을 뱀눈으로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 사회 눈초리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교육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한결 나은 교육 문화가 자리잡을까요. 문화를 '업그레이드'한다고 우리들이 두루 즐기는 문화가 뿌리내릴까요. 글쎄요. 나라님들은 '개발'을 외치다가 '재개발'을 외쳤고, '신도시'를 외치다가 '뉴타운'을 외칩니다. 어느 낱말이든 똑같은 일을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밑바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낱말만 자꾸 커집니다. 아니, 낱말만 자꾸 헛바람이 들 뿐입니다.

 

 ┌ 고운말 ↔ 雅語化

 └ 한글만 쓰기 ↔ 한글專用

 

엊그제, 평론가 김우창님이 1977년에 쓴 <궁핍한 시대의 詩人>(민음사)이라는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론가 김우창님은, 사람들이 좀더 알맞고 손쉬운 말을 쓰자는 움직임을 '雅語化 운동'이라고 한자로 껍데기를 씌워서 비판을 하십디다. 생각해 보면 1970년대에만 이리하셨는지 모르지만, 2008년에 새로 쓰시는 글을 보았을 때, 당신 생각이나 삶은 1970년대 그때하고 요즈음하고 거의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한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글을 썼으나, 요즈음은 한자를 드러내어 글을 쓰지 않는 대목만 다를 뿐입니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우리 둘레에 넉넉하게 널려 있는 그 숱한 우리 말과 글을 왜 붙안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요. '고운말'이라는 낱말이 그렇게 듣기 싫어서 '雅語化'라는 낱말을 억지로 지어내야 했습니까. 여느 사람들은 '가난'이지만, 평론을 하는 당신 김우창님은 '窮乏'이십니까.

 

사람들은 가난하다 못해 쪼들립니다. 똥구멍이 찢어집니다. 옆구리가 튿어지고 가랑이도 찢어집니다. 밥먹기를 밥굶기처럼 합니다. 가난에 허덕입니다.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이하여, 우리네 지식인 님들은 '가난'은 모르고 '궁핍'만 찾으시나요. 사람들은 어려운 틈을 겨우 내어 '시'를 읽는데, 어이하여 시쓰기로 문학과 예술을 펼친다고 하는 분들은 '시' 아닌 '詩'만 써내고 있으시나요.

 

'詩'를 쓰는 마음이 아닌, '시'를 쓰는 마음이기를 빕니다. '詩人'이 아닌 '시꾼'이 '시쟁이'가 '시사람'이 '시즐김이'가 '시몸'이 '시마음'이 '시얼'이 '시넋'이 '시꿈'이 '시길'이 '시날'이 '시사랑'이 '시삶'이 되어 주기를 빕니다.

 

시 한 줄 읊어낸 분들은 틀림없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를 읊어내셨을 텐데, 시를 읊어낸 분들 가슴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있는가요. 시를 읊어낸 자리 옆에는 누가 있는가요. 시를 읊어낸 자리는 어디인가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우리말#우리 말#글쓰기#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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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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