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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한창인 이팝나무 꽃.
 꽃이 한창인 이팝나무 꽃.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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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못 잊어 울던 '하동 아가씨'

80년대 초 내 무전여행의 기억 속에서 선암사에 머물던 며칠 동안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기억의 중심에는 곡차만 마시셨다 하면 일흔여섯이란 나이에도 자신을 버린 첫사랑을 잊지 못해 상처입은 거위처럼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던 남명 스님이 있다. 난 그곳에서 첫사랑의 상처, 그 깊고 우울한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또 한 사람을 만났다.

남명 스님은 사월 초파일 저녁, 순천 기생집으로 불려 나간 후 한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남명 스님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이, 늦은 봄날은 점점 푸르게 우거져 몇 아름의 적막으로 자라났다. 이따금 산새들의 소리만이 늙은 절의 귀에 와 닿을 뿐이었다. 경내의 어린 수목들이 신생의 기쁨으로 불타오를수록 나의 내면은 끝도 없이 가라앉아 갔다.

딱히 어디로 가야겠다는 계획 따윈 없었다. 그러나 나의 방랑 습벽은 평상시에는 음성적으로 잠복해 있다가도 자정이 넘으면 수면부족 현상이 되어 날 갈구어 댔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인제 그만 어딘가로 떠나야겠다. 내 마음은 숨결 가쁜 아지랑이처럼 먼 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명 스님은 왜 몇 날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걸까. 떠나더라도 남명 스님에게 인사는 하고 떠나야 했다. 그의 귀환을 기다리느라 무료한 시간이면 까닭 없이 절 여기저기를 서성거렸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든가. 선암사 경내를 수놓던 아홉 그루의 화사한 영산홍도 어느샌가 속절없이 이울어 버렸다. 봄의 마지막의 모습을 서둘러 인화하려는 사람들로 이 영산홍 나무 아래는 늘 소란스러웠다.

어느 날, 나이 든 아낙들과 더불러 놀러 와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대는 아가씨를 보았다. 아가씨는 마른 체구에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얼굴이었다. 특징이 있다면 광대뼈가 불끈 솟은 점이라고나 할까. 짐작건대 고집과 오기로 똘똘 뭉친 아가씨가 틀림 없었다.  

아아, 제 버릇 개주기가 얼마나 힘든 노릇인가. 난 개에게 던져주지 못한 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천부적 장난기를 활용하기에 이른다. 선암사에서 추억을 남길 절호의 찬스라고 판단한 나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이, 아가씨, 꽃만 말고 나도 사진 한 장 찍어주시오!"

아가씨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뭐 저런 개뼈다귀 같은 놈이 있지 싶었으리라. "내가 왜 댁의 사진을 찍어줘요?" 몇 마디 가시가 돋친 말이 오갔다. 그럴수록 나의 심중은 점점 오기로 들끓었으며 아가씨의 말대꾸도 점점 매서워 갔다.

마침내 난 아가씨에게 한가지 비상한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명 스님의 붓글씨 한 폭을 주는 대가로 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아가씨도 남명 스님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별안간 분위기는 장작불처럼 따사로워졌다.

사진을 찍고 나서 근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결국 난 이 하동에 사는 김미정이란 아가씨에게 점점 무거워져 가는 내 짐의 일부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예를 들면 불일암 법정 스님이 내게 준 송광사 방장을 지내시다 입적하신 구산 스님의 유고 문집인 <돌사자>를 포함한 각종 문집들, 스님들에게 받은 선물 따위였다. 그것은 내 다음 행선지가 하동으로 낙착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며칠 뒤 난 광양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탄치재 위에 있었다. 높이가 약 300m 쯤으로 기억되는 그리 높지 않은 재였다. 봄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고갯마루에 있는 무등암이란 절에 들러 물을 마셨다. 바위굴 속에 들어앉은 절집은 아늑했다. 몸이 아늑해지면 정신은 자꾸만 눕고 싶어하는 법이다. 더 늘어지기 전에 길을 재촉해야 한다.

두끼비강, 섬진의 면목이 눈 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 하동에 도착한 것이다. 김미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근처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몇 병인가 맥주를 나눠 마셨다. 취기가 둘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쑥스러움을 즐겁게 용납하기까지 그냥 마셨다. 적막이 김미정씨의 입가에 잠시 머물다가 술잔 위로 맥없이 내려앉았다. 그는 내게 앞으로의 행선지 등을 물었고 난 그냥 아무 대책이 없다고 했다.

사실 기쁨도 눈물도 없이 막막한 때에 젊다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함정인가. 난 진작부터 내가 그 함정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술자리는 서서히 달아올랐으며 가슴 밑바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잡초처럼 자욱하게 우거지고 있었다.

술이 슬슬 달아오른 김미정씨가 그의 생애에서 결코 은총이 되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한 남자와 장장 7년을 사귀었다. 그러나 어쩌다 그가 폐병에 걸리자 남자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딴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이젠 페병도 다 나았다. 김미정씨는 아직도 "그 남자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다. 남자가 결혼한 지 벌써 5년이었으며 집안의 결혼 강요도 점차 집요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김미정의 비길 데 없는 순정에 비해 뉘우침 없는 세월은 앞으로도 저 섬진의 물결처럼 무덤덤하게 흘러갈 뿐인 것을….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점점 사랑을 믿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아니 젊은 여우들은 제 나름으로는 늑대를 감별할 줄 아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아마 저 늑대는 착할 거야. 아니, 착해야돼! 그 환상은 너무도 지독해서 도끼가 제 발등을 내려찍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난 김미정씨를 위로했다. 재수 없어서 일찍이 "늑대의 발톱"을 경험한 것뿐이라고.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위로한답시고 뇌까려야 하는 사람의 꼬락서니라니!

나는 김미정씨를 달래어 집에 데려다 주고 근처 여관으로 갔다.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글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불가사리는 창자까지 나눠가며 사랑을 한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창자까지도 빼먹어가며 사랑을 한다? 섣부른 일반화는 아니지만, 살면서 난 보아왔다. 배움이 많아질수록 헌신이라는 덕목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다음 날 일찍 김미정씨가 왔다. 허름한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고 우린 걸어서 설천면 노량리 남해대교까지 걸어갔다. 길가에 선 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왜 저 꽃은 저렇게 갈가리 갈라져서 피는 걸까. 어쩌면 이팝나무 꽃이 김미정의 마음을 닮았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힐끔 여자의 얼굴을 훔쳐봤다. 유난히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이다. 저 광대뼈가 사랑의 추억을 지치지 않게 끌고 가는 힘인가.

길이 660m의 현수교를 건너 우린 죽은 불가사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갯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우린 남해 바다의 노을이 몇 마장의 파도를 자신의 오랜 불면증으로 간직하는 순간을 물끄러미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의 향기는 상처가 축적한 깊이에서 오는 것

다시 이팝나무 꽃이 피는 5월이 왔다. 꽃은 벌써 25~6년이 넘게 아득히 흘러버린 기억을 되살려낸다. 꽃 향기나는 기억 하나가 이팝나무 가로숫길을 걸어오고 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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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 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 복효근 시 '상처에 대하여' 전문

복효근은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는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등이 있으며  편운문학상 신인상 · 시와시학상 · 젊은 시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주변에 널린 사물에 빗대고,  친화력 있는 어법으로 삶을 사근사근 이야기한다. 밑바탕에 사랑를 깔고난 뒤 비로소 삶에 대한 거짓됨과 이중성을 반성한다.

시 '상처에 대하여'는 2006년 8월에 낸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란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시인에겐 '누이'가 있다. 그 누이가 몇 살인지, 왜 상처를 입었는지, 상처의 내용이 무엇인지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는 누이를 통해서 상처가 어떻게 변용돼 가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 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인은 마침내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라는 인식의 지평에 닿는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더욱 짙은) 꽃향기가 괸다"라는 것을 안다. 그 향기는 상처가 축적한 깊이에서 오는 것이다.

상처에서 깊이를 축적하지 못하면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깊이를 축적한 사람은 선물로 향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라고 결론짓는다. 상처에서 꽃 향기가 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을 단련해야 했을까. 그러므로 상처에서 나는 꽃 향기는 얼마나 안쓰러운 향기인가.

'하동 아가씨' 김미정은 아직도 첫사랑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적절한 시점에서 첫사랑의 흉터를 성형한 뒤 딴 남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잘살고 있을까. 어쨌거나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적어도 첫사랑이 안겨주는 쓰라린 환멸 따윈 맛보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상처를 승화시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를 지녔으니까.


태그:#복효근 ,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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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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