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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락동 OO상회죠, 건강보험직원인데요."

"아… 예!"

"토요일 아침 10시반경에 가지러 갈께요. 잡어 10만원어치하고 매운탕거리, 초장 와사비..알죠? 아이스박스에 넣고요, 저번처럼 시간 어기면 안 됨더, 예?"

"예 알았심더."

 

오늘(26일)은 고향 경로당에 우리 엄마가 한 턱 쏘는 날이다. 미리 전화해 놓으면 알아서 다 해주니, 이래서 단골집이 좋은가 보다. 주문한 것을 찾아왔다. 잡어회에 매운탕 거리에다, 한 스무명은 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다. 고향 경로당으로 나서는 엄마는 좀 들뜬, 아니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이다.

 

"음, 점심시간에 맞추면 딱 되겠다. 갑장계나 모임 갈 때 마다 경노당서 우째 잘해주는지…."

"아 예! 당연히 갚아야죠!"

 

토요일이라 30여 분만에 마을경로당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누고? 용기 아이가?"

"예, 잘 지냈습니까?"

"그래, 용기 니가 정말 잘한데이!"

"무슨요...!"

 

 

아이스박스를 턱 푸니 잡어회가 가득하다. 다를 "와!"하면서 시선을 모은다.

 

"아이고! 헐은 아나고나 사오지, 비싼 잡어뿐이네?"

"우리 아들이 비싼 것만 사왔데이!"

 

단돈 10만원에 이렇게 고향 어른들이 기분 좋아하는데, 난 여태 뭘 했을까. 순간 몹시 부끄러운 마음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다들 상추에 싸서, "아이고 맛있다!"하면서 잘 드신다.

 

근데, 아무리 열심히 살펴봐도 우리 엄마가 제일 곱고 예쁘다.

 

"가만 보니,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네예? 가끔씩 고집 부리고 싸우기도 하지만요…."

"(다들)그래! 너거 엄마 누가 팔십이라 하겠노? 니가 잘 챙기는 갑다."

"(하하)아임더!"

"너거 엄마는 낙천적이고 활동적이고, 그래서 저래 건강하다."

"야! 용기가 복이 많죠?"

"그래. 말이다!"

 

 

소주 두 잔에 회 몇 점을 상추에 싸서 먹곤 자리를 일어서면서 말했다.

 

"앞으론 1년에 두 번은 꼭 챙길께요!"

"아이고 그래, 말만 들어도 고맙데이."

"그럼 이만 갑니더!"

 

참 예쁜 동네였는데, 마을 위로 길이 나면서부터 공교롭게도 교통사고가 끝이질 않아서

남자들은 거의 다 죽고 과부들만 모여 산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건너편엔 원자력병원이 한창 건설 중이고, 옛날 우리집(499번지)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지 오래다. 또 여름마다 멱을 감았던 냇가는 이젠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정도. 다들 문명의 이기에 찌든 볼품없는 모습들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근데, 원자력병원이 다 들어서면 우리 마을 자체가 아예 없어진다고 한다. 휴우! 이 서러운 마음도 어른들에게 베풀었다는 뿌듯함으로 잠시나마 행복하다. 그래, 오늘의 이 초심을 잃지 말고 살자!

 

잘 생긴 리키 마틴의 경쾌하고 섹시한 라틴음악에 몸을 던지고 왕복 2시간에 걸친 용기의 짧은 고향 나들이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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