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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더 성장하려면 더 많이 꾸짖고, 일깨워주고, 반성을 촉구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들의 의무이자 희망의 작업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10월 29일 삼성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첫번째 양심고백에 나섰던 함세웅 신부. 그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제2의 민주화운동'을 시작하는 사제로 주목받았다.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함 신부가 20년이 지난 2007년 다시 '경제민주화운동'의 횃불을 들었다고 언론은 평가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간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도 생겼고, 특검법에 따라 99일간 특검수사도 진행됐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6개월간 고뇌와 고민 속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진실고백을 이어나갔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검찰과 특검의 수사, 삼성쇄신안 발표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함 신부는 어떤 것을 느끼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함세웅 신부를 만났다.

 

다음은 함 신부와 함께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특검수사는 '과락' 수준... 삼성 쇄신에 왜 회개는 없나"

 

- 지난 17일 삼성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모든 게 상식에 기초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특검이 수사주체였지만 수사에 적극적 의지가 없었다. 그 부분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공안검사 출신 조준웅 특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했던 분들이 모두 삼성의 변호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검은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에서 기초 수사해놓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어서 형식적으로 보안하는 수준에서 끝냈다. 북만 요란하게 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다소 심한 표현이지만 '연극'에 불과했다. 정의에 기초해야 할 국가공권력이 범죄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특검수사결과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학생들도 기본 60점은 돼야 낙제를 면할 수 있다. 보통 40점이면 과락으로 정한다. 점수는 그분들 스스로 더 잘 알 텐데 사실 '과락'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법조인으로서 뜻을 세웠을 때 지녔던 순수한 마음, 사법연수원 시절에 다짐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다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지난해 10월 29일 첫번째 양심고백 기자회견이 있었다. 벌써 6개월이다. 그간 사제단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7년간 본인이 삼성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저질렀던 잘못된 내용을 사제들에게 고백했다. 그는 본인도 잘못했지만, 본인을 불의한 일에 동참시킨 삼성이라는 조직, 삼성의 경영진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사제단과 참여연대·민변 등은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늘 고민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의견개진의 순서나 시기 등을 놓고 토론은 했지만 김 변호사 자체에 대한 신의 여부를 두고 토론하지는 않았다.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 "삼성 전략기획실은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와 같다"고 비판했다. 삼성은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했다. 이번 삼성 쇄신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쇄신'은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회개를 통해서 이뤄진다. 회개는 근원적 변화를 뜻한다. 내적 변화를 전제로 하는 건대, 삼성의 이번 변화는 옷만 바꿔입은 거다. 김용철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들은 이건희 회장의 자택 압수수색도 '쇼'라고 했다. 그 해석에 놀란 일이 있다. 옷을 바꿔입는 것도 나름의 뜻이 있겠지만, 내적 지향이 바뀌어야 진짜 성찰이다. 쇄신안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있지만 옷을 바꿔입을 수밖에 없었던 내면적 동기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어야 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면 곤란하다. 그 점이 안타깝다."

 

- 진정 삼성의 쇄신안에 담겨야 할 것은 무엇이었나.

"진실된 고백이다.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작고한 이병철씨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돌아가신 분을 욕되게 하는 거다. 자기 아버지, 조상에 대한 모욕이다. 그런 방법까지 동원했다는 것이 삼성의 한계다. 내면적인 성찰과 함께 진정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 고백해야 힘이 있고,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쇄신안은 핵심에 다가서지 못했다. 삼성은 이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당사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삼성불법행위규명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  삼성은 쇄신안의 후속조처로 "2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등 여러 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돈으로 국민들을 또 현혹하려드는 게 아니냐"고 비판한다.

"삼성은 돈의 노예다. 성서에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다음에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금송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숭배했는데, 늘 그게 의문이었다. 왜 그렇게 미련했을까 말이다. 이 얘기는 바로 돈에 무릎을 꿇는 황금만능주의를 우상으로 지적한 것이다. 삼성이 황금만능주의에서 해방돼야 건실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경영학의 원리로만 크는 게 아니다.

 

삼성이 쇄신안 내놔도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삼성이 깨달아야 한다. 링컨의 얘기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그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 모두가 감동할 수는 없지만, 수긍할 수 있는 쇄신안·고백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꿈을 갖는다."

 

- 삼성불법행위규명운동을 제2의 경제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독재 때는 기업이 상납하면서 제재를 받았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후로는 기업이 정치권에 상납하는 구조에서 해방됐다. 오히려 기업이 금력으로 정치권을 움직이게 됐다. 결국 재벌천국이 됐다. 기업은 정직과 정의에 기초해 법과 질서를 따라야 하는데 과거 관행에 따라 공권력과 정치권을 부패시키는 당사자가 됐다. 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아픔이다.

 

집안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악마가 자기 친구 일곱을 더 데려온다는 성서귀절이 있다.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된다는 얘기인데, 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어설픈 상태에서 재벌을 통한 황금의 악마가 우리를 지배하게 된 거다. 물리적 억압은 외적 상처를 주지만, 자본은 정신과 마음을 썩게 한다. 이 부분이 가슴아프다."

 

- 돈이면 다인 세상이 됐다. 점차 더 노골화되는 분위기다. 사제로서 어떤가.

"나는 87년 6월항쟁의 미완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 노동자들의 운동도 있었지만, 가치관의 변화 없이 이룩된 사회변화가 전체를 병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의 변화속도는 너무 빠르다. 모두 기성세대 탓일 게다. 그 가운데 언론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정보를 줘야 국민들이 정확히 판단하는데, 조중동을 통해 굴절되고 왜곡된 소식과 정보가 전해지니까 국민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마비돼 이런 병에 걸린 거다."

 

- 우리 국민 대다수는 법보다 권력이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잘못을 처단해야 할 검찰이 직무를 유기하는데 어떻게 그 사회의 법질서가 제대로 설 수 있겠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회피하고, 또 그런 검찰 권력을 감시하고 채찍질해야 하는 영역이 언론인데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회피한다. 언론이 정말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권력화 되고, 소명감보다 직업인으로서 안주하는 태도 정말 그 문제를 깊이 반성해봐야 한다."

 

"사제단의 단식은 회개와 성찰"

 

- 사제단은 물신풍조에 적극 대항하지 못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희생을 돌보지 못한 게으름을 참회하는 뜻으로 3일간 단식했다.

"단식은 상징적인 거다. 기도의 한 방법이고, 회개의 강한 표현이다. 그리고 인간은 먹어야 사는데 먹는 걸 끊는다는 건 자기부정의 한 방법이다. 이같은 자기부정은 더 큰 긍정을 위한 부정의 성격이 강하다. 사제들은 기도와 회개와 성찰의 방법으로 단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시대의 모든 아픔과 부족을 껴안고 기도하는 방법일 게다. 성서를 보면, 예언자들도 단식했다. 예수님도 큰 일에 앞서 단식했다. 그런 의미로 이해해 달라."

 

- 사제단의 단식이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을까.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역사의 물줄기는 의식있는 분들이 깨어있으면 된다. 불의한 자본과 독선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면 누구나, 종교인은 특히 직무상 해야 하는 일이다. 당연한 해야 할 사명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거다. 예언자적 소명의 실현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 김용철 변호사도 단식에 동참한다고 들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다른 영역의 삶으로 옮겨온 셈이다. 과거의 삶과 단절하고 새로운 유형의 삶으로 변신해야 한다. 지난 1월 20일은 인권변호사 황인철 변호사의 15주기였다. 그때 김용철 변호사를 초청했다. 그날 묘 앞에는 눈이 많았다. 미사 끝나고 황 변호사의 가족들에게 김 변호사를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눈밭에서 돗자리도 없이 두번 반, 황 변호사에게 절을 올렸다.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보였다."

 

- 삼성특검에서 보듯 진실규명에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들의 상식적 판단을 특검도 듣고, 언론도 듣고, 정부도 들어야 한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다. 완성이 없고, 성숙이 없다.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성장도 없다. 유아적인 거짓 상태에 머무를 뿐이다.

 

삼성특검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감추고 싶고, 은폐하고 싶은 게 있는 법이니까. 다만, 6개월 전 우리는 비록 현상적으로라도 이렇게 삼성이 변화하게 되리라도 예측하지 못했다. 삼성이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한 단계 성장하려면 더 많이 꾸짖고 일깨워주고, 반성을 촉구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그게 우리들의 의무이자 희망의 작업이 아닐까 싶다."

 


태그:#함세웅 신부, #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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