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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 나무를 심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오는 5월 1일부터 열리는 도민체전을 준비하고 있는 마산시는 종합운동장 들머리 교차로의 '안전지대'에 나무와 화분을 옮겨서 화단을 조성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은 군사독재 정부시절에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때는 대통령이 순시를 나가거나 하면 '각하'가 지나가는 길에 꽃을 옮겨다 심고, 지붕도 뜯어고치는 일이 흔히 있었다. 21세기에도 이런 전시행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교차로에 설치되는 안전지대는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나 통행하는 차마의 안전을 위하여" 설치한다. 그런데 여기에 원래 기능을 할 수 없도록 꽃과 나무를 옮겨 심어 놓은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안전지대가 아니라 마치 화단을 조성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를 통해 타 지역에서 도민체전에 참가하는 선수단에게 마산시장과 공무원들이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음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방문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산 시민 입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화단 조성을 실무를 맡고 있는 마산시 공무원은 "체전 기간에 행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라며 "양해해 달라"고 했다. 겨우 며칠 동안 도민체전을 치르기 위한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엔 "그런 측면이 있지만, 도민체전 준비를 위한 것이니 양해해 주면 좋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스팔트에 심어진 나무는 행사 기간이 지나면 철거될 것이 뻔하다. 도로교통법상 안전지대에 심어놓은 나무이기 때문에 교통안전을 위해 반드시 철거되어야 마땅하다. 게다가 아스팔트 위에 그냥 임시방편으로 옮겨 심었으니 그대로 두면 제대로 살아날 리도 없다. 여기서 철거되는 나무는 어떻게 될까? 담당 공무원은 예산낭비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체전이 끝나도 당분간 그대로 두고 관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특히,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안전지대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에게 꼭 필요한 보행안전지대다. 이곳 안전지대는 마산종합운동장으로 진입하는 자동차와 진출하는 자동차를 안전하게 분리하여 방향을 유도하는 공간이다. 또 진입도로의 횡단보도와 진출도로의 횡단보도를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보행자들이 이곳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반드시 도로 가운데에 있는 '안전지대'에서 진출입 차량을 확인하고 건너야 한다. 따라서 이곳은 보행자를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안전지대다.

 

이곳에 화단을 설치한 것이다. 대회 기간과 출퇴근 시간에 이곳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는 아스팔트 위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화단(보행장애물)을 피해서 진출입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길을 건널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 때는 도민체전 기간이기도 하지만 어린이날 연휴와 시민의 날 행사까지 예정되어 있다. 때문에 마산종합운동장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출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담당자는 "약간은 불편한 면이 있지만, 행사 분위기를 위해 꽃을 심어 놓았으니 조금 불편해도 이해해 주면 좋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도로교통안전공단 전문가에게 불법시설물 여부를 문의했더니 "교통법규에서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즘처럼 보행권 확보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에 비추어보면 법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마산시는 2007년 보행권 조례를 만든 바 있다. 이런 자치단체에서 법규를 떠나서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거듭된 지적에도 "도민체전 행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이라며 무조건 이해를 구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행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라면 보행자의 안전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인가. 끝내 보행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보행통로를 확보하겠다는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다. 도시의 특성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바다를 매립하고 공장을 유치하고 아파트를 지어 인구들 늘리는 것만이 도시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시장과 고위공직자들의 철학이 배어나오는 것이 바로 아스파트에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를 심는 것이 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일인지를 고민하는 공직자는 정녕 마산에 없을 걸까?


#전시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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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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